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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607

묻지 않은 질문에 [답]하다 -잠시 딴 소리부터- 15년 전쯤에 다니던 회사에서 알던 음악감독이 있다. 처음 만났던 때의 기억은 없고, 언제 친해졌는지 기억도 없다. 5년, 6년마다 한 번씩, 띄엄띄엄, 자주 만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나의 삶과 생각을 좋아한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은 흔치 않기에 자존감이 떨어지면 그런 사람의 말이 마중물처럼 필요하다 신기하게도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사람이 떠오른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 그랬다. -잠시 딴 소리 끝- 신감독과 통화를 했다. 거의 한달만에 한 통화다. 그는 묻지 않았으나 나는 답했다. 이러면 돼? 그는 분명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돼! 였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질문으로 생각했고, 한 달 뒤 대답을 했다. 마음이 좋았다. 그 말을 했더니 그도 좋다고 했다... 2022. 10. 5.
[흉] 보고 싶다 대나무숲이다. 흉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 괜찮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이 떠오르는지 써보고 싶다. [흉]보고 싶다 한 달 전쯤부터 1인 1단체 가입을 하라는 공지를 미사 공지에서, 강론에서 말했다. 생각도 않은 일이지만, 미사만 달랑 보고 평화를 얻는 것이 마음에 걸려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다. 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해본다. 지난 주에 성당 홈페이지를 관리한다는 단체에 가입신청서를 냈다. 그리고, 카톡으로 반갑다는 인사를 받았다. 낯선 사람들이지만 반겨주는 인사만으로도 '우리' 혹은 '함께'가 되는 마음이라 좋았다. 그 중 한 분과 통화를 했다. 어떤 일인지, 역할인지 설명해줬는데, 그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일이 들쭉날쭉하고, 그에 따라 시간도.. 2022. 10. 4.
[기억]을 지우세요 순하디 순한 동환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마치 유행하는 독감처럼 누군가는 독하게 누군가는 슬쩍 그걸 앓게 된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아이들은 그 터널을 지나며 어른이 된다. 동환이는 여러 개의 자신의 안에서 균등한 힘을 가지고 각자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대체 애는 누구지 할 정도로 시시때때 다른 동환이가 된다. 동환이의 엄마인 지연이는 그런 동환이 때문에 매시간 괴롭다.. 지연이 이모를 안부를 묻는 성진이에게 이모는 동환이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근데 내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엄마, 내 기억을 지우세요." 성진이는 어쩌면 동환이보다 더 지독한 사춘기를 보냈다. 학교를 나오고, 며칠씩 어딘가로 사라지고, 눈동자는 허공에 있고, 손은 험했다. 성진이는 .. 2022. 9. 29.
[잘 한 것 같다] 방명록과 댓글 정리 댓글 2303개 방명록 919개 삶의 미련인지, 보관하고 싶어 종일 캡쳐를 받았다. 주인장이 까칠했던 것을 감안해도 많은 댓글과 방명록이다. 다음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중단하다고 짐 싸서 티스토리로 가라고 하는데, 방명록과 댓글은 버리고 가라고 했다. 마치, 낙서 가득한 일기장인듯, 그림 잔뜩 그려놓은 연습장인듯 방구석에 앉아 한장 한장 넘기다 하루 낮과 밤을 옴팡 썼다. 20년은 안 되었지만,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잊거나 잃어버린 사람 투성이다. 나를 지켜주었던 김상.얼마나 나에 대해 노심초사했는지 지금 보니 알겠다. 수없이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동안 늘 안부를 걱정하고, 늘 얼른 돌아오라는 말을 남겨놓았다. 지금은 볼 수 있으면서도 자주 보지 않게 된, 코로나때문에 안 만나게 된 것이 습관처럼, 자.. 2022. 9. 2.
[소환 & RE] 하얀 꽃 까만 꽃 2006. 12. 22. 무려 16년전 주절거림에 쓴 글을 다시 소환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내게, 그때 그 아이에게 https://blog.daum.net/binaida01/10509397 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난 하얀 꽃이 불쌍해!" 왜? "하얀 꽃은 색이 없는 거니까." 아이가 하얀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스케치북에다 몇 겹을 칠해 하얀꽃을 그립니다. .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다 멈춥니다. "난 까만 꽃도 불쌍해!" 왜? "까만 색은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그 아이는 까만 크레파스를 들고 하얀 스케치북에다 얇게 까만 색을 칠해 까만꽃을 그립니다. 예쁘니? "안 이뻐, 하얀색꽃이 안 보여. 까만색꽃이 그림을 더럽게 만들었어." 그럼 이제 안 불쌍해? "아니 불쌍해! 근데 하얀꽃이랑 .. 2022. 8. 3.
[진심] 싱겁고도 강한 맛 토마토퓨레를 잔뜩 넣은 새우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이 음식도 레시피가 없는 그냥 토마토맛이 잔뜩 나는 가난한 혹은 초라한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 아점으로 별 느낌없이 먹고, 또 자고, 일어나 식어서 불은 스파게티에 소금도 넣지 않은 감자를 한 켠에 넣어 전자렌지에 데웠다. 이건 나의 개취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저녁에 해 둔 스파게티를 다음날 아침 출발 전에 먹으면 좋았다. 불었지만 양념이 푹 베인 스파게티) 별 생각없이 괜찮네 하는 마음으로 역시 나는 이런 게 좀 좋아. 하면서 한 입 먹고, 감자를 한 조각 먹었는데, 강한 향이 나는 토마토 소스와는 정반대 맛, 아린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딱 감자맛. 감자의 순수한 맛이다. 그때 드는 단어, 진심 진심: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 2022. 7. 16.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50년 전, 40년 전, 10년 전, 작년, 올해, 내년, 10년 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그런게 많지.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면, 아닌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이상한 거지. 인연이 오래된 사람, 너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새삼스럽게 지금 '나는 이렇다' 라고 강조해서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너는, 그땐 안 그랬는데, 지금은 왜 그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부정교합처럼 어긋난다고 불편해 한다. 나는 현재 상태로 너를 마주하고 싶은데, 너는 이미 잊어버린 과거의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 오래되었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아 기억에서 지워진 과거의 사실이 너에게서 낱낱이 파헤쳐지기도 한다. 너가 소환한 과거가 모두 사실이라고 해도,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보면 마치 내가 아닌 듯 .. 2022. 6. 20.
[일기] 밝은 옷이 입고 싶어 지난 2,3년은 옷을 사지 않았다. 귀촌프로젝트를 위해 옷 만드는 법을 배우고, 옷을 만들면서 옷을 사지 않다가..계속 옷을 사지 않았다. 옷을 사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없앴다. 회사 출퇴근, 미팅할 때 입었던 옷, 강의할 때 입었던 옷...암튼 더는 회사에 출근할 일이 없는 삶을 살 듯 하여, 옷을 입는 것이 삶의 낙이기도 하고, 그래서 옷을 만들고 싶었을 정도로 옷을 좋아했던 내가 의지를 다지기 위해 꽤 많은 옷들을 정리했다. 주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녔고, 불편하지 않았을 뿐더러 편하기까지 해 만족스러웠다. 옷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옷이 성가시기도 했다. 그런데, 봄이 되고, 여름이 시작되고 두문불출 칩거를 멈추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합정동도 나가고, 강남도 나가고, 거리의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바.. 2022. 6. 8.
수영 - 현재를 사는 존재가 되기 위해 수영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수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서 있기를 즐긴다. 물속에서는 늘 현재이며, 존재가 된다. -스포츠로서의 수영이 아니라 바다 혹은 강이 없으므로 수영장에 가는거다. 수영장 가장 낮은 레인, 할머니들 사이에서 걷기도 잠깐 하고, 수영도 잠깐 하고, 잠영도 잠깐하고, 그 잠깐 사이에 나는 그보다 더할 수 없이 현재에 존재한다. 만약 수영에 능하다면, 나는 현재에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잠시 딴 소리- 현재는 말그대로 이 시간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존재는 살아있는 것이다. 현재는 시간의 의미가 강하고, 존재는 생명의 의미가 강하다. 현은 나타남, 현상에 가깝고, 재는 실존에 가깝다. 존은 생명에 가깝고, 재는 실존이다. 현은 움직임을 담보로 하고, 존은 생명체를 담보로 한다... 2022.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