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거림606

끝 여름 말랐다고 해야하나 여물었다고 해야하나 꽃 피우고 꽃잎 진 마른 자리에 씨가 잔뜩 들어앉아있다. 손가락을 종지모양으로 말아 꽃대부터 훑었더니 손바닥에 무게도 없는 것들이 가득했다. 무게도 없는 것들이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꽃씨들은 각각의 꽃진 꽃대에 잘 싸여있다. 나는 두 손바닥을 쫙 펴고 빙글빙글, 좀 더 작게, 좀 더 단단하게 말았다. 집에 갈 때까지 하나라도 이탈, 떨어지지 않도록 할 속셈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동안 아마 내 삶에서 가장 많은 꽃들을 보았던 것 같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 집으로 달려 들어가기 바빴고, 약속장소로 뛰기 바빴던 와중에도 꽃들이 있었다. 바쁜 걸음을 걸었던 뒤통수에도, 지금도 알록달록한 갖가지 모양들이 잔영으로 남아있다. 그 사이 꽃씨를 움켜잡았는.. 2024. 9. 5.
두통 생각을 멈추는 일이 잘 되지 않았다.깨어있는 시간 동안 생각이 나는 것을 통제할 수 없다. 머리를 흔드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잠을 자야 생각이 멈춘다. 지금 잠이 필요한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이 멈추는 시간, 잠.의식이 멈추는 시간, 잠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잠뿐인 듯 하다.  어제는 두통이 너무 심했고, 병원에 갔다. 감정통제가 되지 않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지 며칠이다.그냥 내달리기만 하는 생각과 감정, 어제부터는 두통이 시작되었다. 몸까지 합세한 거다.생각과 감정, 몸. 이것들이 '삶'을 건드리는 느낌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내 것들을 그냥 아슬하게 힘이 빠져 멈추기를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단어가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길 매 순간 기도하고,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이.. 2024. 7. 13.
거슬리는 것들에 대한 태도 거슬리다: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짢은 느낌이 들며 기분이 상하다.(네이버사전) 오늘 아침 눈을 뜨기도 전에 떠오른 단어는 '거슬리다' 였다. 첫번째는 새벽에 많이 내린 비때문인지, 사이렌 같은 소리가 핸펀에서 울렸다. 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무슨 일인가하고 깜짝 놀라 이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몇 분간은 쫄았다. 잠에서 깨지도 못하고, 안 깨지도 못하고 놀란 가슴을 주저 앉히고 다시 잠 들었다.  두번째는 빗소리는 들리는데, 너무 더웠다. 엄마는 이번 여름을 위해 에어컨을 샀지만 딱 한 번 틀고는 틀지 않는다. 한 번 틀었을 때, 긴 옷을 꺼내입고, 안방 창문과 방문을 닫고 나오지도 않고, 춥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했다. 진짜 추운 건지 에어컨이 돌아가는 것에 대한 강박인건지, 그 모습.. 2024. 7. 8.
[고잉그레이2] 갈등이 시작되었다 2달째이다.흰머리라고 하지말고, 있어보이게 '그레이'라고 하자. 그레이가 3센티정도가 되자, 이제 얼굴에 비치기 시작했다. 갈색머리가 얼굴과 나린히 할 때와 그레이가 얼굴에 나란히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너무 낯설고 두렵기 시작했다.  -잠시 딴 소리-다들 이런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고들 한다. 서너번의 고비가 오는데 첫번째 고비인듯 하다.-잠시 딴 소리 끝- 낯선 것 중에 가장 먼저는 얼굴의 모든 것이 너무 잘 보인다. 짙은 머리카락 덕분에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의 잡티, 주름 같은 것들이 너무 잘 보인다는 거다. 한마디로 늙었다는 것, 그래서 늙어보인다는 것.말하고보니, '늙어보인다 것'  참 이상한 말이긴 하네. 보이는 것에 .... 2024. 4. 28.
'쾌활' -쇼펜하우어 우연히 듣게 된 '쾌활'이라는 단어, 마치 대바늘에 찔린 듯이 멈칫했다. 쾌활이라는 말이 내 입으로 말한 적이 없는 듯 하고, 들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책에 나오는 단어도 아니다. 대체 쾌활이라는 단어는 어디에 존재했던 것인지, 나는 언제 어떻게 그 단어를 알았는지. 쾌활이라는 단어는 쇼펜하우어가 행복이라는 것을 규정하면서 사용한 단어라고 한다.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쾌활이라는 단어를 선택하였겠지만, 쾌활이라는 단어를 다른 어떤 단어로 교체할 수 있었겠나 싶었다. 쇼펜하우어는 "그가 쾌활하다면 그는 젊든 늙었든, 몸이 곧았든 꼽추이든, 가난하든 부자든, 상관없이 행복하다." "최상의 보물은 명랑한 표정과 쾌활한 마음이다." 명랑함이나 쾌활함이 현관 앞으로 오고 있다면 얼른 나가서 맞으라고도 .. 2024. 4. 16.
[고잉그레이] 노염색, 탈염색! 진행 중 서울에서 안동으로 귀향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앗,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안 하고 싶은 것이 염색이다. 지금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하고 있다. 그리고 어제 처음으로 흰머리가 보이는 앞머리를 까고 감자 산책을 나갔다. 괜찮았다. 솔직히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은 공감하실텐데, 쫄리는 일이다 늘 염색을 하던 사람이 얼룩덜룩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난 용기를 낸거지. 별일 아니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뭐...., 익숙해지겠지. 모두들 알겠지만 염색을 그만두는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은 흰머리와 검은 머리의 웃기는 경계선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선을 지우기 위해 지난 달에는 염색약을 반만 섞어.. 2024. 4. 10.
산책 중 [감사]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하는 마음은 금방 노쇠해버린다고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아니 뜨기 전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새기기로 했다. 아마 사흘에 한 번쯤 실행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감사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상에 감사가 배어 있지 않아서 그런 듯 싶다. 매주 일요일 엄마를 성당에 모셔다 드리면 나는 감자양과 함께 안동댐 월영교 주차장으로 간다. 거기서 다리를 건널지, 물길을 따라 올라갈지, 다리를 건너서 석빙고로 갈지, 아님 용상동으로 가는 물길 곁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갈지, 아니면 민속박물관쪽 공원으로 갈지, 예전 민속촌이었던 구름에리조트로 올라갈지, ... 물길공원으로 올라갈지 그때 마음 가는 곳에 따라 움직인다. 때로는 감자양이 리드줄을 이끄는대로 따라 간다. 그 길.. 2024. 3. 4.
[무엇인가]를 함으로써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똑똑한 사람과 행동하는 사람 중 성공할 확률이 높은 쪽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공'이라는 말이 이상하다. 다른 말로 대체를 한다면 'GOAL IN' 다시 말하면, 'GOAL IN'할 확률이 높다. 목표를 만들고 그 목표에 맞는 프로세스를 구성하기 위해, 서치를 하고, 서치한 자료 중 벤치마킹을 설정하고, 벤치마킹한 대상을 분석해서 나의 프로세스를 구성하고, 또 완성된 프로세스 중 각 단계별로 나에게 적합한 것인지 검증하고...., 그러다가 목표에 적합한 프로세스인가? 의심하고, 혹은 목표의 성공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프로세스인가 궁리하는 등의 일련의 행위들로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이분법적 사고의 폐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세상이 어떻게 성공 아니면 실패인가? .. 2024. 1. 28.
[니체]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그대가 값진 삶을 살고 싶다면 날마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단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 -프리드리히 니체 '책장 파먹기' 중 하나로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라는 필사책 옆에 두고, 하루에 한 편씩 필사를 하고 있다. 순서대로 필사하는 것은 아니고, 그날 그날 스르륵 읽다가 맘에 꽂히는 시나 글이 있으면 그 장을 필사하고 있다. 안 꽂히면 지나가고. '오늘은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좋으니. 누군가 기뻐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이렇게 소망하는 것. 꽂히는 말이고, 하고 싶은 일이고, 원하는 마음이다. 이렇게 해야지, 하며, 그런 아침을 생각하는데 보탰으면 하는 마음 하나가 더 생긴다. -잠.. 2024.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