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우우탄탄(吁吁歎歎)하다 아침부터 내 머릿속에 등장한 단어가 탄식이라니, 그 자체로도 탄식이다. 이 단어가 마음에 안 들어, 탄식을 부정하고, 내 마음을 드러내는 더 정확한 단어가 있을 거라며 단어들을 탐색했다. 내 안에 있는 단어가 부족한가 싶어 사전을 들춰보았다. 탄식歎息: 한탄하여 한숨을 쉼. 또는 그 한숨. 역시 별로다. 나는 내가 한탄하여 한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부정적이고 청승맞다. 유의어들을 찾아보았지만 '탄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어로는 groan 고통으로 신음소리를 내다.sigh out 탄식하며 말하다. 갈수록 태산이다. 난 그 정도가 아니다. 그저 눈도 뜨기 전에 탄식이라는 단어가 내 머릿속에 두둥하고 떠서 사라지지 않은 것 뿐이다. 아침부터 나를 이런 단어 안에 가두고 싶지 않다.단어.. 2026.10.08
- 가을 텃밭의 안부 어느새 풀들이 기운을 잃었다. 지난 달 9월초에 봄에 심어 여름까지 키우고 거두었던 토마토와 오이를 걷어낸 자리에 배추모종과 무씨를 심었더랬다.하얀 한랭사를 덮은 배추는 무사히 잘 자라고 있고,한냉사 없이 그냥 심고 뿌린 배추모종과 무싹들은 무사한 것도 있고 , 간간이 벌레들의 공격을 받은 것도 있다. 벌레받이.벌레가 먹을 것이 충분하도록 그 배추, 그 무는 그냥 그대로 둔다. 사실 김장배추가 많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처음부터 쌈배추와 무잎을 요량으로 넉넉히 심었었다. 무잎은 완전 싹이 아니고, 완전 자란 것도 아닌 상추만큼 자란 무잎을 뿌리째 뽑아 쌈 싸먹기도 하고, 겉절이도 한다. 사람들은 무잎을 어떻게 먹냐고 하지만 무잎의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이번 추석에는 고기를 구우면서 그 옆에 버터를 .. 2026.10.05
- [체호프] 인간이라서, 인간인 걸. 9월에는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의 단편들을 읽었다.체호프의 단편이 현대단편의 시작이라고 한다.나는 이번에 처음 읽었다.그 사실을 요즘 알았다. 체홉의 희곡과 희곡집을 좋아한 내게 체홉은 극작가의 이미지가 컸다. 다를 것이 없겠지만, 희곡에서 보이는 번뜩이는 유머와 위트가 단편들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것이 느껴진다. 체호프가 만들어낸 꽤 많은 인물들을 만났다. 이번에 읽은 단편선을 기준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을 꼽자면, 퍼뜩 세 인물이 생각난다. 에 나오는 의사남편 오시프 그리고 그의 아내인 올가.올가, 그럴 수가 있어. 그런 올가를 두고 보는 남편도 그럴 수 있지. 화가, 좀 그렇지만 그럴 수 있지. 표트르 주교님.어릴 적 만났던 보좌신부님이 .. 2026.10.01
- 강아지 양치를 시키다 신뢰를 생각했다 요즘 하루에 두번 이상 감자양을 앉혀놓고 양치를 시킨다. 오늘 아침 양치를 시키다가 '신뢰'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는 나를 신뢰하고 있구나. 나는 너늘 신뢰하고 있구나. 감자양은 11월 20일이면 네살이 되는 강아지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되면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아들이 내게 선물을 한 강아지다. 내가 키우지 못한 아들은 왜 내게 감자양을 데려다 놓았는지,감자양을 가끔 물끄러미 보면서 아마 너가 없었다면 먼 곳으로 떠나 긴 여행을 하고 있을런지도 몰랐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감자양은 뿌리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게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존재 말이다. 어느 날, 저녁 아마 술 한잔을 한 듯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일년에 한 두번 올까말까한 아들이 다녀간 바로 다음주였다. '감자.. 2026.09.24
- 새벽에 깬 날 캄캄한데 잠이 깼다. 꿈에서도 도배장판과 냉장고와 세탁기를 고민한 것 같다. 꿈이 기억이 난다. 생각을 그만하자고 꿈 속에서도 생각했다. 괜히 화장실을 가 불까지 켜고 입을 헹궜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방으로 돌아와 보니, 캄캄한 것은 암막커튼때문이긴 하다.암막커튼 틈사이로 제법 환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아직 자고 있는 감자때문에 커튼을 열지는 않고, 침대 끝에 앉았다. 불면때문에 일년이 넘게 커피를 끊었지만,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새벽이니까 괜찮을거야, 커피가 있을리가 없다. 뒤적거렸더니 베트남 G7가 있었다. 탈모예방으로 두피에 커피마사지를 할까 싶어 사둔 커피인데, 뜨거운 정수기 물을 받아 베트남 G7을 타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이 감자는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 눈으로 나를 본다. .. 2026.09.23
-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 자료실, 누군가의 책상 옆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누구인지를 보기 위해서다.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누군가의 책상 위에는 뒤집어놓은 책의 표4,'연금투자야말로 평범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확실한 방법'처음 눈이 간 곳은 여기다.연금.요즘 내가 꽤 많이 생각하고 있는 말이다.그 옆에 읽은 곳을 가리마 삼아 거꾸로 뒤집혀 있다. 그래서 제목이 있는 표1이 내쪽에서 잘 보인다.이런 책이 있나보다. 안동 어디에서 근무하는 지방직 공무원인 모양이다. 88년생은 몇 살이지?2026-1988=?아니, 나보다 스물한 살 어리면?서른여덟, 아홉 즈음이겠네.그런데 벌써 연금투자로 부자가 되는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거네. 대체 나는 그 나이에 뭘 한거지? 아니, 난 그때 인생의 가장 큰 산을 만신창이로 넘고.. 2026.09.20
- 억압 지난 열흘은 부산스러웠다. 집이 팔렸으니, 새로운 집을 찾아야 했다. 애초에 서울집을 판 목적이 3년간의 엄마집 생활을 청산하고 독립하는 것이었다. 서울집을 팔았다고 하면 뭔가 부자일 것 같지만,누구의 도움도 없이 긴 시간동안 대출과 이사를 반복하며 얻은 아주 작은 주공아파트일 뿐이다. 남들에겐 그럴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30년 가까운 긴 시간이 이 작은 아파트 하나로 응축되었다가 그것이 사라진 느낌이다.서울살이 30년이 곧 집이었고, 이제 내 집이 아니다. 안동에서 집을 구하는 건 참 애매한 일이다. 지방소멸..., 그런데 집값은 내게 여전히 부담이다. 서울집처럼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는 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지금 이 순간밖에 없는 것처럼, 신축이면서, 원래 보려고 했던 집보다 더 큰 집.. 2026.09.19
- 괴테가 아니었다. 니체였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괴테 이 문장을 책상 앞 벽에 붙여놓고 매일 보았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오늘 아침 이 문장이 다른 날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와, 시간을 한참 멈췄다. 괴테가 이렇게 말한 앞뒤 상황이 궁금해졌다. 괴테는 어떤 일에 이런 말을 했을까? 챗gpt에게 괴테가 이 말을 하게 된 앞뒤 상황을 찾아봐 달라고 했더니, 괴테가 아니라 니체라고 했다. 니체, 니체가 했을 법한 말이었다. 니체가 어울린다. 그리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것이다.'고통'이 아니라 '것' 내가 느끼는 고통이 아니라 대상이고 상황인 '것'이었다. 이 말은 니체가 아프기 직전에 썼다는 이라는 책의 「잠언과 화살」8번이란다. 앞뒤의 말은 이렇다. 6.. 2026.09.10
- 말은 많아지고 톤은 높아졌다 말은 많아지고 톤은 높아졌다.이걸 막아야 한다. 온 힘을 다해 이걸 막아야 한다. 내가 가장 대하기 힘든 사람은 말이 많고, 톤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 앞에 있으면 내 영혼은 안드로메다 행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말만 그런 것이 아니라 표정도 굳어있다. 결연한 것과는 묘하게 다른 표정, 세상의 중심이 본인이어야 한다는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동의를 구한다. 사실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것이 맞지만, 반드시 동의를 얻을 수는 없다. 동의는 상대방이 하는 것이지 자신의 소관이 아니니까 애초에 타인을 설득하는 일은 세상 무엇보다 어렵다. 설득은 어렵고 섬세한 일이다. 이성과 감정, 이 둘이 다 맞아떨어져야 '동의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의 여행에서 전보다 말이 많아졌음을,.. 2026.09.08
- 불국사에서 부처님께 절을 했다 친구들과 2박3일 여행을 했다. 내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고등학교 2학년때 친구들이다. 그때는 한 교실에 있었지만, 지금은 각자 다른 자리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모든 상황이 달라졌지만,시간이 만들어준 각자의 단단함과 관계의 단단함은 새로운 공통점이 되었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과 안동에서 만나 영덕에 있는 친구의 세컨하우스에 짐을 풀었다.바다가 보이는 소박한 카페에 앉아 흰구름과 먹구름이 낮게 깔린 바다를 본다. 지난 몇달간 있었던 일들을 나눈다.이 친구들은 이상하리만치 통화를 하지 않는다. 그냥 '모이자' 한다.그리고 만나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과 생각들을 털어놓는다.바다를 보며 각자의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 씨줄과 날줄로 엮는 시간, 이번 여름 내가 아닌 우리는 이런 모양이 되었.. 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