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2303개
방명록 919개
삶의 미련인지, 보관하고 싶어 종일 캡쳐를 받았다.
주인장이 까칠했던 것을 감안해도 많은 댓글과 방명록이다.
다음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중단하다고 짐 싸서 티스토리로 가라고 하는데, 방명록과 댓글은 버리고 가라고 했다.
마치, 낙서 가득한 일기장인듯, 그림 잔뜩 그려놓은 연습장인듯
방구석에 앉아 한장 한장 넘기다 하루 낮과 밤을 옴팡 썼다.
20년은 안 되었지만, 20년 가까이 되다보니, 잊거나 잃어버린 사람 투성이다.
나를 지켜주었던 김상.얼마나 나에 대해 노심초사했는지 지금 보니 알겠다.
수없이 떠나고 돌아오고 하는 동안 늘 안부를 걱정하고, 늘 얼른 돌아오라는 말을 남겨놓았다.
지금은 볼 수 있으면서도 자주 보지 않게 된, 코로나때문에 안 만나게 된 것이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어째 이런가 했다.
나의 첫 친구 찰칵님, 칭찬대왕이시다.
제본소를 다닌다고 설정한 첫 포스팅에 그런 줄 안 여러분 중 한 분이셨다.
대견하다 생각했단다. 열악한 곳에서 일하면서 시를 읽고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한다고.실체를 고백하는 데 한 두달도 걸리지 않았다. 제본소 여자와 별다를 것 없는 출판사 여자였지만 말이다.
몇 년 전 태평양의 끝이라는 분이 오랜만이라며, 무사히 잘 지내시니 다행이라는 댓글을 다셨는데, 나는 누구세요? 그랬다.
정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청정구역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이상한 댓글은 가차없이 삭제하거나 차단시켰는데)
오랜 시간 전의 댓글과 방명록을 보다보니, 태평양의 끝님은 대학로 이음서점의 작은 님이셨다.
시를 쓰시고, 책을 추천해주시고, 영화에 대해 색다른 관점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분이신데, 그걸 까맣게 잊어버리고, 누구세요? 하였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미안한데 찾을 길이 없다. 본명을 몰라서 ㅠㅠㅠ
김상 말대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또 문제다. 이름이 뭐예요 했어야지.
들국화 팬카페 동문인 미니님! 제주도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낯선 인사부터 친구까지 댓글과 방명록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을 땐 이 블로그에 아버지 근황을 실시간으로 텍스트 중계를 하면 미국에 살던 동생은 안심했다.
한 번 두 번 입원을 시작으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고스란히 이곳에 있다.
인도로 파키스탄으로 인터넷도 여의치 않을 때 길 떠난 딸의 안부를 이곳에다 물으셨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수일 선생님은 정말이지 곳곳에 마음을 남기셨다.
그분과 나누는 영화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분이 많이 그리운 것은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영화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다.
아무도 모르는 멋진 이야기를 만날 때의 기쁨.
귀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영화 속에서 만날 때의 벅참.
호들갑스럽지 않게 조용히 기쁨과 벅참을 나눌 때의 평화가 그리울 때 이수일 선생님도 그리워한다. 기도한다.죄송하다.
신미식 사진작가님도 방명록에서 댓글에서 찾았다.
못 뵌 지 10년은 된 듯 한데...
그 분의 남미 사진을 보고, 남미 땅을 밟고 싶었다. 사진 속의 아이와 여자들을 보고 싶었다.
신작가님의 사진을 보며 여행을 더 먼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또 신작가님의 사진을 보며 시를 쓰기도 하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 분의 두물머리 작업실 2층의 빔을 빌려 6시간이 넘는 러시아판 <전쟁과 평화>를 보기도 했다.
내게는 더없이 멋진 시간을 가지게 해 준 감사한 배려였다.
지연이는 아이를 뱃속에 두고 힘들어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댓글과 방명록의 글을 남겼다.
어제 캡쳐를 지연이에게 하나하나 보냈다. 일에 대한 고민, 아이에 대한 고민 이런저런 지연이의 역사도 이 블로그에서 꿰어진다.
뱃속에 있던 지연이의 아이는 고등학생이다. 맙소사. 시간이 그런거다.
고등학교 은사님도 다녀가셨고,
필이 꽂힌 시에 소개한 시를 쓰신 시인들이 남긴 댓글들은 영광이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향한 나의 솔직한 마음도 이곳에 고스란히 있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없는, 사랑의 마음. 벅찬 마음. 아픈 마음. 사랑을 완성하고자 애쓴 마음.
그때의 나는, 약하기도 했고, 미흡하기도 했고, 당차기도 했기에 그 흔적들이 뿌듯하다.
빛나리님, 김짱님, 사노라면님, 들꽃님.... 제대리.
지금은 모두들 블로그를 떠나신 듯 하다. 트위터 페북에 계시겠지만 이름을 모른다.
그때 그 시간의 나를 지탱하게 해 주신 분들일지도 모른다. 충분한 응원을 받았으니까.
늙은이처럼 과거와 과거의 시간이 뭐 대단한 거라고 그 곳에서 질척거리나 싶겠지만,
나는 내 시간에 쿨할 수 없다.
지금은 더더욱 그런 때인 것 같다.
삶의 굵은 한 마디가 지나고 생경한 다음 마디를 살고 있기에...
과거의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의 시간을 쌓으며 살았는지, 무엇을 잘 하는 사람이고 무엇은 못하는지 여실히 보이는 곳이다.
마치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처럼, 내 전생과 전전생이 모두 이곳에 있는 듯 한다.
언제나 그렇듯, 있을 때 잘 하지.
먹고 산다고, 무슨 일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 내 마음을 내놓은 이 곳을 몇달씩, 어느 몇해는 통째로 비우고,
그저 남의 시간을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나의 생을 살았다면, 2010년대의 나도 있어야 하는데, 그 때의 나는 보이지 않는다.
윤후명선생님께서 문을 나서는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의 뒤 닦는 일은 그만하고 니 삶을 살아."
완전히 타인을 위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분명 어정쩡했다 생각하며 후회하였는데.
방명록과 댓글과 그때의 나를 보며 그때 내 생각들이 귀하다 생각한다.
과거의 내가 말라버린 현재의 나에게 마중물이 된다.
어느 작가의 글이 아니라, 내가 쓴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읽으며 나 자신을 마중물로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애가 넘치네. 재수없어도 할 수 없다. 여긴 내 오래된 집이니까. 난 집에서만 힘이 센 구들장군이니까.
최대한 잘 옮겨야겠다.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방명록과 댓글을 온힘을 다해 캡쳐하느라 진이 빠졌지만,
두서 없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무르익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더욱 더 아무 말이나 긁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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