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하디 순한 동환이가 어른이 되기 위해 사춘기라는 터널을 지나고 있다.
마치 유행하는 독감처럼
누군가는 독하게
누군가는 슬쩍
그걸 앓게 된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아이들은 그 터널을 지나며 어른이 된다.
동환이는 여러 개의 자신의 안에서 균등한 힘을 가지고 각자의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대체 애는 누구지 할 정도로 시시때때 다른 동환이가 된다.
동환이의 엄마인 지연이는 그런 동환이 때문에 매시간 괴롭다..
지연이 이모를 안부를 묻는 성진이에게
이모는 동환이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근데 내가 위로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엄마, 내 기억을 지우세요."
성진이는 어쩌면 동환이보다 더 지독한 사춘기를 보냈다.
학교를 나오고, 며칠씩 어딘가로 사라지고, 눈동자는 허공에 있고, 손은 험했다.
성진이는 동환이 이야기를 할 때 늘 자신의 일이 비교하며 말한다는 거다.
나는 성진이는 이렇게 사춘기를 지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으니 걱정마라는 것이었는데,
성진이는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자기는 자기고, 동환이는 동환이라는 거다.
엄마가 겪은 일은 엄마의 일이고, 이모가 겪고 있는 고통은 별개의 것이라는 거다.
엮지 말라고, 엮지 않으려면 자신의 일을 기억에서 지우라는 것이다.
놀랄만큼 맞는 말이다.
"....... 그러네."
"잊어요."
"너무 큰데."
"그래도 잊어요."
"어."
이것 뿐일까?
기억에서 지울 일이.
기억이 만든 현재들.
기억들을 지우면, 현재의 삶은 어떤 색일까?
밑그림이나 사진 위에 그림을 그린다고, 핫핑크로 그림을 그린다고 화사한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
무슨 색으로 칠해도 현재의 붓칠로 그린 그림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거였다.
기억은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사적인 영역에서 내 기억이, 경험이 좋은 결과를 만든 일은 거의 없다.
기억이나 경험은 감정이 아닌 이성 혹은 기계적인 경험이 대부분인 '일'의 영역에서만 좋은 힘을 쓰는 것이다.
대부분 감정을 써야 하는 사적 영역에서의 기억은 대부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어느새 어른이 된 성진이가 내게 적절한 충고를 했다.
-순응
나는 순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기억이 쌓이면 쌓일수록 어리석은 어른이 되고 말 나는 지금부터 '순응'하기로 했다.
내가 아닌 수많은 '너'의 말들에 순응키로 한다.
내게 남긴 수많는 '너'들의 기억은 지우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처럼 맑은 눈으로 '너'들을 대하고 싶다.
기도해야겠다.
내 기억들을 지울 수 있도록, 현재의 강한 힘을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내가 그렇게 성진이의 말을 존중하고 순응하면
성진이는 자신의 말에 무게를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땡큐
지연이에게 동환이에게 내 기억이 작동하지 않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렵다.
며칠전에 읽은 헤세의 [위안]이라는 시를 다시 소환한다.
이 말인가 싶다.
위안
헤르만 헤세
살아온 그 많은 날들이
이젠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았다
지니고 있을 아무 것도
즐거워 할 그 무엇도 없다
수많은 모습들을 어떤 흐름이
나에게로 실려 왔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붙들어 둘 수 없었고
아무 것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내게서 빠져나가도
내 마음은 이상하게
모든 시간을 뛰어넘어 삶의 정열을 짙게 느낀다
정열이란 어떤 의미도 목표도 없는 멀고 가까운 모두를 알며
뛰노는 어린 아이처럼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기억 [memory] : 사람이나 동물 등의 생활체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며 신체적 습관·컴퓨터 등 기계적 기억도 넓은 의미에서의 기억에 포함된다. 기억의 과정은 기명, 보유, 재생, 재인의 4가지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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