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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진심] 싱겁고도 강한 맛

by 발비(發飛) 2022. 7. 16.

토마토퓨레를 잔뜩 넣은 새우 스파게티를 해 먹었다. 

이 음식도 레시피가 없는 그냥 토마토맛이 잔뜩 나는 가난한 혹은 초라한 스파게티가 먹고 싶었다. 

아점으로 별 느낌없이 먹고, 

또 자고, 

일어나 식어서 불은 스파게티에 소금도 넣지 않은 감자를 한 켠에 넣어 전자렌지에 데웠다. 

이건 나의 개취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을 때, 저녁에 해 둔 스파게티를 다음날 아침 출발 전에 먹으면 좋았다. 불었지만 양념이 푹 베인 스파게티)

 

별 생각없이 괜찮네 하는 마음으로 역시 나는 이런 게 좀 좋아. 하면서 한 입 먹고, 

감자를 한 조각 먹었는데, 강한 향이 나는 토마토 소스와는 정반대 맛, 아린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딱 감자맛. 

감자의 순수한 맛이다. 

 

그때 드는 단어, 진심

진심: 참되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本體).

 

변하지 않은 감자의 맛, 처음 감자를 먹고, 사는 내내 먹었던 그 감자 맛, 감자 원래 맛. 

진심.

 

모든 것이 변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일은 없다.'

 

모든 것들은 늘 바뀌고, 변하고, 사라진다. 그때 그대로는 없는 것이다. 

나도, 너도, 기억도, 뭣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항심'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항심(恒心):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감자를 먹으며 그 맛이 너무나 처음 맛이라 깜짝 놀랐고, 진심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던 것, 무슨 연유인지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나에게 진심은 있는가? 

혹은 진심으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때는 시에 진심이었고, 어느 때는 소설을 쓰는 것에 진심이었고, 어느 때는 영화를 보는 것에 진심이었고, 또 어느 때는 일을 하는 것에 진심이었다. 그 외에는...., 사람에게 진심이었던 적은? 가족에게 진심이었던 적은? 나 자신에게 진심이었던 적은? 

 

딱 감자의 맛처럼

여러 향신료나 양념에 따라 맛이 변하고 모양이 변하고 자유로운 감자, 

 

아무 짓도 안하고 물로만 삶았을 때 만나게 되는 진짜 감자.

 

그 진짜 맛의 반가움. 

싱겁고도 강한 맛

그 맛이 맛있어는 아니지만, 반가워, 너구나 하며 아는 척하게 되는 그 거. 진심.

맞지 않는 말인지는 알겠는데, 난 감자의 진심 같다. 

 

나의 진심이 싱겁고도 강한 거라면,

그러고보면, 진심은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건가? 진심은 '향한'이라는 것이 있어야 성립이 되는 건가?

현상으로서의 진심은 없나. 

 

상대가 없이 고립된 영혼에게는 진심이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건가? 아닌 듯.

진심은 그대로도 존재할 수 있다. 

진심은 존재하는 자신에게 향할 수도 있다는 거지.

 

진심이 멀어졌다.

내게 진심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되었던 거네. 

찾아온거네. 진심이라는 단어가. 

 

강물이 흘러 흘러 지구 한 바퀴를 돌았나. 

뭣도 아닌 흔하디 흔한, 혼자서는 뭐가 아니라는 감자에게서 본 진심.

 

토마토스파게티 곁에 있는 간 안 된 감자만 골라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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