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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비(發飛) 전체보기2208

[쟝 그르니에] 섬 동물에 대한 글 중 마음 속 1등은 쟝 그르니에의 [섬]에 등장하는 고양이 물루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쟝 그르니에의 글 중에서도 물루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너무 좋다. 고양이 '물루'때문에 오래된 청하출판사 버전인 이 책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동물과의 밀접한 동거를 시작하며, 물루가 생각났다. 나는 '감자'를 관찰하고, '감자'는 나를 관찰한다. 동물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동물들이 잠자듯 엎드려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그들이 그렇게 엎드려 있을 때. 대자연과 다시 만나고 그들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키워주는 정기를 받는다. 우리가 노동에 열중하듯이 그들은 휴식에 그렇게 열중한다. 우리가 첫사랑에 빠지듯이 그들은 깊은 신뢰로 잠 속에 빠져든다. -쟝 그르니에.. 2023. 1. 12.
[닫힌 문]과 [열린 문]이 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이에게 오늘을 살 틈은 없다. 닫힌 문을 보느라 열린 문을 놓치지는 마시길 -홍정욱 [50] 중에서 속수무책(束手無策) :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 함 2주 내내 감자가 새벽 5시에 일어나 낑낑대며 밥을 달라는 바람에 그렇게 살았다. 오늘은 감자가 다섯시를 지나 여섯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 다섯시에 깨었던 거다. -잠시 딴 소리- '감자'는 '쿠쿠'다. 쿠쿠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어도 계속 쿠쿠라고 불렀는데, 앞뒤없이, 뜬금없이 '감자'라고 불렀더니. ('감자'가 감자처럼 생겨서, 색깔도 생김도) 휙 쳐다봤다. 그래서 이름이 '감자'로 바꼈다. 모두들 '쿠쿠'보다 '감자'가 어울린단다. 누구보다 '감자'가 '감자'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잠시.. 2023. 1. 11.
[심약]이 뭐야 심약하다. 마음이 여리고 약하다 심하게 비약하면 사상누각. 아직 1월인데, 설날이 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뭔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자(쿠쿠의 개명)와 함께 하면서 느낀다. -잠시 딴 소리 시작- 감자가 온 지 20일 가까이 되어 오는데 쿠쿠라는 이름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앉아 엎드려에는 반응을 하는데, 이름을 부르는 것에 보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한다. 그러다 문득 진짜 문득 감자가 생각났다. 색깔도 생긴 모습도 감자와 닮아서였을까. 감자! 하고 불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헉. 감자인가 보다. 그래서 감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강형욱훈련사가 강아지개명 괜찮다고 했다) -잠시 딴 소리 끝- 강아지는 어떤 생명체인지 모르는 나는 감자가 어.. 2023. 1. 9.
마음과 말 사람들이 모두 다른 것에 비해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말, 언어뿐만 아니라 목소리와 말투는 모두 다르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나와 같기가 어렵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음을 듣는다는 것은 나와 같기가 쉬울 것이다. 말이 아니라 마음을 받는 일.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통하는 일. 그 소중한 일에 연습이 필요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말을 듣게 된다. 말이 나오게 한 마음까지 살피지 못해 오해가 생기고, 섭섭하고 소원해진다. 마음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지 못해서 그렇다. 후광이 비치는 사람들, 풍기는 아우라때문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사람들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한 템포 쉰다. 말이 느리다. 그건 마음을 읽는 중이었기.. 2023. 1. 6.
[감자] 아침형 인간이 되고 있다 감자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되고 있다. 늦은 밤까지 넷플릭스 드라마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어린 강아지에게는 무지한 소음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감자가 오고나서 넷플릭스를 보지 않게 되었다. 해가 지면 작은 불 하나만 켜두고 그냥 밤이구나 한다. 여덟시 아홉시인데 한밤중이 된다. 감자는 많이 자야 하니까... 강아지 잠 재우는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주면 잔다. 나는 감자가 깰까봐 조용히 있다. 대개 열시쯤 자고 새벽이면 감자가 깬다. 그제만해도 일어나면 낑낑거리며 내게 왔는데, 어제 오늘은 깨우지도 않고, 내가 부스럭하면 그제서야 부리나케 온다. 주체 못하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이 터질 것 같이 반긴다. 때로는 핥고 때로는 깨물고(깨무는 것은 진짜 고민이다) 감자는 아침밥을 먹고, 나는.. 2023. 1. 3.
2023년의 나는 이랬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10년 전쯤의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처럼 차분했으면 좋겠다. 늘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그때처럼 시 한 편으로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좋은 그림과 연극도 봤으면 좋겠다. 그때의 나는 일밖에 없었지만, 일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기획했고, 내가 궁금한 것을 기획서에 썼고,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작가로 모셨다. 내 삶에서 자연스레 나온 질문을 책으로 만드는 일은 즐거웠다. 이미 나온 책들에서 답을 얻는 일도 좋았다. 그렇게 사색과 탐색을 하며 나의 삶을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아니다. 언제일까 생각해보면, 흔히 이야기하는 무릎이 꺾인다는 그때, 그때는 아마 산티아고를 가기 바로 전이었던 것 같다. 산티아고 길에서 회복을 위.. 2023. 1. 3.
[쿠쿠]가 왔다 쿠쿠가 책상과 마주한 담요 위에서 네 다리를 뻗고 잔다. 강아지 힐링 음악을 틀어주면 잔다. 강아지 힐링 음악이라지만, 쿠쿠가 오기전 아침에 듣던 음악과 다르지 않다. 쿠쿠와 내가 힐링되는 음악이 비슷한거다. 강아지와 사람이 힐링되는 음악은 비슷한 거지. 쿠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왔다. 반려식물에 이어 반려견을 들인거지. 늘 생각하고 하고 싶다하였지만 용기가 부족했었는데...., 선물로 툭 하고 온 거다. 옅은 갈색의 말티푸, 말티즈와 푸들의 하이브리드종이다. 욕심을 내서 커라, 좀 많이 커라라고 주문을 왼다. 개인적으로는 시바나 진도나 테리어종을 좋아하는데, 이런 종들은 작은 아파트에서 키우기 힘들 뿐더러 그 아이들도 힘들 거 같아... 말티푸로, 그야말로 인형이다. 애교에 함께 하자고 끊임없이 구애한.. 2022. 12. 28.
무장해제 어쩌면 처음부터 견고하지 않았다. 물컹물컹한, 액체에서 고체가 되기 전 어느 사이 젤리처럼, 사람이 되기 전 양수에 갇힌 태아처럼, 나는 견고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흘러가는 시간에 덮히고 아무데서나 부는 바람에 덮히고 시도 때도 내리는 비에 젖어 스스로 굳지 못한 태아의 몸을 에워쌌다. 몸에 덧대어진 이물들이 몸인듯 단단해졌다. 딱딱한 몸 내 것이 아닌 몸 나는 견고한 적이 없었다. 26. 바람직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라. 사려깊은 사람들은 우아하고 품위있는 다독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시대를 풍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적절한 지식을 갖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범상한 방식이 아닌 교양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사려깊은 사람들은 재치있는 언변과 고상한 행동을 현명하게 비축해 두었다가 적절한 시가에 사용할.. 2022. 12. 18.
[옥타비오 파스] 주체 Identidad 주체 Identidad 옥타비오 파스 뜨락에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린다. 저금통 속의 동전 한 닢처럼 바람 한 자락에 새 깃이 문득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쩌면 새도 없고 나도 뜨락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아닌지 모른다. (주) 현실 세계가 불교에서처럼 환상, 허상이라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인가? 그 사람인가? 여기엔 진짜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옥타비오 파스는 장자의 호접몽을 읽고, 나는 옥타비오 파스의 시, 를 읽는다. 제목이 주체? Identidad, 정체성? 시 제목이 이상하다. 옥타비오 파스의 이라는 시를 두고, 2008년에 쓴 '나'와 지금의 '나' 는 라는 시의 '어쩌면 새도 없고 나도 뜨락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아닌지 모른다'는 시인의 말처럼 누가 누구인지, 나였는지, 지금.. 2022.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