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發飛) 전체보기2197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한 뒤 감자가 변했다. 아니 달라졌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새벽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감자와 함께 소파에 눕는다. 감자에게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한다. 대답은 돌아올 리 없지만, 감자는 내게 길고 진한 뽀뽀를 충분할 때까지 한다. 이렇게 쪼그리고 누워 짧은 잠을 한 번 더 잔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그래도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았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침대와 소파의 이불들을 정리한다. 밤새 오갔을 배변판을 정리하고, 밥을 주고, 물을 갈아준다. 나는 커피를 내리고, 이때쯤이면 감자는 내 발끝을 쫓기 시작한다. 앉으라는 신호다. 아침잠을 자고 싶다는 거다.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으면 바로 옆 방석에서 바로 잠이 든다. 항상 아침 커피는 한잔으로 부족하다. 커피 한 잔을 더 가지러 갈 때면, 참아야 하나. 고민이.. 2023. 2. 7. [페르난도 페소아] 이리로 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인간은 '의지'라는 것을 가져 다른 동물보다 나은 점이라고도 한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것이 '의지'말고도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직립보행을 한다는 것 의지와 함께 사고를 한다는 것 그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고 발명한다는 것 계획을 하고 반성을 한다는 것 부모님이 주양육을 했던 강아지가 아니라 내가 주양육을 한 반려동물은 감자가 처음인지라 낯선 눈으로 동물을 보게 된다. 나와 비교하며. 나와 다른 점을 생각하며 나와 같은 점을 생각하며 -이른 새벽이면 일어나 밥을 찾는다. 배워야 할 점이다. 나는 아침잠을 좋아하고, 아침에 개기기를 좋아하고, 아침밥에 별 취미가 없다. -끝까지 요구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감자는 끝까지 요구한다. 나의 강압적인 제제가 있지 않는 한 짖다가 애교를 부리다가 포기했다가 .. 2023. 1. 29. [피츠제럴드] 유난 떨지 마 유난 떨지 마. 가을이 돼서 날씨가 상쾌해지면 인생은 다시 시작되니까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문학과 지성사에서 8월 7일에 배정한 글이다. 몇 년전 문지에서 사은품으로 준 1일 1문장을 책점처럼 뒤적이다 마음에 꽂혔다. 딱이네. 이번 겨울에 이렇게 폭신한 눈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아파트 마당이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얀데,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거다. 눈이다. 좋은 눈이다. 삼중샤시 유리문 밖에서 내리는 눈이다. 문을 열어 손으로 눈을 받아볼 생각은 없다. 마음이 솔, 솔, 솔, 라? 아니면 솔, 솔, 솔, 미?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함을 느낀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읽지 않고, 같은 사은품에서 본 말이다) '매일 적어도 .. 2023. 1. 26. [페르난도 페소아]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꿈은 이루어진거다.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잠처럼 때가 되면 당연히 찾아오거나 설사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도 결국은 신체에게 평온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하는 잠이 아니다. 삶을 잊게 해주고 꿈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궁극의 체념이라는 평온한 지참물을 들고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오는 그런 잠이 아니다. 아니다. 그 잠은 잘 수 없는 잠. 눈꺼풀을 닫지는 않으면서 무겁게만 만드는 잠이면서 불신의 입술을 씁쓸하게 비틀면서 혐오스러운 인상을 지어보이게 하는 잠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오랜 불면 상태에서 육체에 헛되이 가해지는 그런 잠일 뿐이다.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텍스트 465 내가 이루고 싶은 가장 큰 꿈을 '잠을 자는 것'이다. 수.. 2023. 1. 15. [로비] 바닥에 떨어진 나침반 설날이 되지 않은 23년 1월에 나의 위치에서는 방향 가늠이 안 된다는 듯이 나침반이 팽팽 돈다. 심지어 나는 이미 어떤 낯선 건물로 들어와 로비 한 가운데 서 있는데 말이다. 건물에 들어왔으나 목적지가 아닌 로비에 기억상실증처럼, 치매환자처럼, 어린 아이처럼 둘러볼 뿐이다. 지하에는 사우나가 있고 1층에는 카페가 있고, 잠잘 곳이 있고,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 있고, 근사한 식사를 하는 곳이 있고 미화원들이 수다를 떨며 들어가는 복도도 있다. 높은 사방 벽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의 사진과 초상화가 걸려있다. 가족사진이 있고, 나혜석이 있고, 친구가 있고, 함께 일했던 상사가 있고, 동료가 있다. 그리고 내가 그린 여자들도 있다. 나침반은 여전히 핑핑 돌아 멈출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어제 일이 .. 2023. 1. 14. [죽지 않는 것]을 누르고, [솟지 않는 것]을 파내는 두려움은 타고 나기에 절로 죽지 않고, 자신감은 타고나지 않기에 절로 솟지 않는다. 죽지 않는 것을 누르고, 솟지 않는 것을 파내는 노력, 그것이 단련이다. -홍정욱 [50] 중에서 아침 한 줄을 읽으면서 나는 홍정욱과 같은 생각을, 사색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절망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시이던, 소설이던 글쓰기 작업을 계속 했었다면 나는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지금보다는 나은 통찰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출판사에서 콘텐츠사업쪽이 아닌 책을 기획하는 일을 계속해서 좋은 작가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좀 나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타고난대로 두려움에 휩싸여있었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홍정욱의 .. 2023. 1. 13. 멈춘 [차]에 시동을 걸까 베뉴는 지난 일년 대부분 아파트 주차장에 서 있었다. 안동을 내려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냥, 탈 일이 없으니까, 이제 베뉴를 타고 싶다. 지출관리를 잘 하면 베뉴를 타고 여행도 갈 수 있겠다 생각해본다. 몸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이제 심심한 여행이 아니어도 된다는 희망이 있다. 여행은 두 가지 종류인 듯. 내가 주로 다닌 해외배낭여행은 홀로가 좋다. 나름 치열하고 절박한 낯선 여행지에서 타인은 브레이크가 된다. 내 움직임을 제어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 나는 타인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돌아왔을 때는 혼자 한 여행은 그 여행을 곱씹을 기회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여행 중에 일어났던 일들은 휘발되기 때문이다. 반면 누군가와 함께 한 여행은 줄줄이 이어져나올 뿐 아니라 여행지에.. 2023. 1. 12. [쟝 그르니에] 섬 동물에 대한 글 중 마음 속 1등은 쟝 그르니에의 [섬]에 등장하는 고양이 물루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는 쟝 그르니에의 글 중에서도 물루에 대한 관찰과 묘사가 너무 좋다. 고양이 '물루'때문에 오래된 청하출판사 버전인 이 책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동물과의 밀접한 동거를 시작하며, 물루가 생각났다. 나는 '감자'를 관찰하고, '감자'는 나를 관찰한다. 동물들의 세계는 침묵과 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동물들이 잠자듯 엎드려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그들이 그렇게 엎드려 있을 때. 대자연과 다시 만나고 그들의 몸을 내맡김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을 키워주는 정기를 받는다. 우리가 노동에 열중하듯이 그들은 휴식에 그렇게 열중한다. 우리가 첫사랑에 빠지듯이 그들은 깊은 신뢰로 잠 속에 빠져든다. -쟝 그르니에.. 2023. 1. 12. [닫힌 문]과 [열린 문]이 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이에게 오늘을 살 틈은 없다. 닫힌 문을 보느라 열린 문을 놓치지는 마시길 -홍정욱 [50] 중에서 속수무책(束手無策) :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 함 2주 내내 감자가 새벽 5시에 일어나 낑낑대며 밥을 달라는 바람에 그렇게 살았다. 오늘은 감자가 다섯시를 지나 여섯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 다섯시에 깨었던 거다. -잠시 딴 소리- '감자'는 '쿠쿠'다. 쿠쿠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어도 계속 쿠쿠라고 불렀는데, 앞뒤없이, 뜬금없이 '감자'라고 불렀더니. ('감자'가 감자처럼 생겨서, 색깔도 생김도) 휙 쳐다봤다. 그래서 이름이 '감자'로 바꼈다. 모두들 '쿠쿠'보다 '감자'가 어울린단다. 누구보다 '감자'가 '감자'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잠시.. 2023. 1. 11. 이전 1 ··· 3 4 5 6 7 8 9 ··· 2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