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겨듣는 曰(왈)144 [피츠제럴드] 유난 떨지 마 유난 떨지 마. 가을이 돼서 날씨가 상쾌해지면 인생은 다시 시작되니까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문학과 지성사에서 8월 7일에 배정한 글이다. 몇 년전 문지에서 사은품으로 준 1일 1문장을 책점처럼 뒤적이다 마음에 꽂혔다. 딱이네. 이번 겨울에 이렇게 폭신한 눈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아파트 마당이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얀데,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거다. 눈이다. 좋은 눈이다. 삼중샤시 유리문 밖에서 내리는 눈이다. 문을 열어 손으로 눈을 받아볼 생각은 없다. 마음이 솔, 솔, 솔, 라? 아니면 솔, 솔, 솔, 미?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함을 느낀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읽지 않고, 같은 사은품에서 본 말이다) '매일 적어도 .. 2023. 1. 26. [페르난도 페소아]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꿈은 이루어진거다.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잠처럼 때가 되면 당연히 찾아오거나 설사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도 결국은 신체에게 평온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하는 잠이 아니다. 삶을 잊게 해주고 꿈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궁극의 체념이라는 평온한 지참물을 들고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오는 그런 잠이 아니다. 아니다. 그 잠은 잘 수 없는 잠. 눈꺼풀을 닫지는 않으면서 무겁게만 만드는 잠이면서 불신의 입술을 씁쓸하게 비틀면서 혐오스러운 인상을 지어보이게 하는 잠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오랜 불면 상태에서 육체에 헛되이 가해지는 그런 잠일 뿐이다.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텍스트 465 내가 이루고 싶은 가장 큰 꿈을 '잠을 자는 것'이다. 수.. 2023. 1. 15. [죽지 않는 것]을 누르고, [솟지 않는 것]을 파내는 두려움은 타고 나기에 절로 죽지 않고, 자신감은 타고나지 않기에 절로 솟지 않는다. 죽지 않는 것을 누르고, 솟지 않는 것을 파내는 노력, 그것이 단련이다. -홍정욱 [50] 중에서 아침 한 줄을 읽으면서 나는 홍정욱과 같은 생각을, 사색을 못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절망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내가 시이던, 소설이던 글쓰기 작업을 계속 했었다면 나는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지금보다는 나은 통찰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출판사에서 콘텐츠사업쪽이 아닌 책을 기획하는 일을 계속해서 좋은 작가들을 만나는 일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좀 나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타고난대로 두려움에 휩싸여있었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끝도 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홍정욱의 .. 2023. 1. 13. [닫힌 문]과 [열린 문]이 있다 어제를 후회하고 내일을 걱정하는 이에게 오늘을 살 틈은 없다. 닫힌 문을 보느라 열린 문을 놓치지는 마시길 -홍정욱 [50] 중에서 속수무책(束手無策) : 손을 묶은 것처럼 어찌할 도리가 없어 꼼짝 못 함 2주 내내 감자가 새벽 5시에 일어나 낑낑대며 밥을 달라는 바람에 그렇게 살았다. 오늘은 감자가 다섯시를 지나 여섯시가 넘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만 다섯시에 깨었던 거다. -잠시 딴 소리- '감자'는 '쿠쿠'다. 쿠쿠라고 불러도 반응이 없어도 계속 쿠쿠라고 불렀는데, 앞뒤없이, 뜬금없이 '감자'라고 불렀더니. ('감자'가 감자처럼 생겨서, 색깔도 생김도) 휙 쳐다봤다. 그래서 이름이 '감자'로 바꼈다. 모두들 '쿠쿠'보다 '감자'가 어울린단다. 누구보다 '감자'가 '감자'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잠시.. 2023. 1. 11. [선배] 그리고 적막 흐린 토요일 아침 김수영 시인은 [적2]라는 시에서 '날이 흐릴 때 정신의 집중이 생긴다. 신의 아량이다' 라고 했다. 오늘도 날이 흐려 정신인지 마음인지가 분주하다. 집중이 생기기 이전 단계인 듯 하다. 좀 기다리자 싶어, 어젯밤 한강을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산 작은 소국 화분 두 개를 화분에 옮겨심었다. 올해는 이만이라고 온 몸으로 말했던 루꼴라를 거두고 난 빈 화분에 노란 국화를 심은거다. 그 흙 그대로를 쓰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흙을 북돋우고, 액체비료를 좀 뿌린 뒤 심어주었다. 이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정신인지, 마음인지가 좀 다듬어지는 듯 하다. 이 일을 할 때는 최백호의 '바다 끝에서'라는 노래를 무한 재생 시켰다. 이 일을 끝나고, 어제 어질러 놓은 것, 그러니까 벗어던진 .. 2022. 9. 17. [채근담] 生生이 主가 된다네 나를 아는 이는 나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 삶에 대해 훈수를 둔다.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누군가가 늘 나를 코치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한글을 일찍 깨쳤다는 이유로, 사회성으로보면 덜 떨어진 7살에 학교를 들어가 말귀도 알아들을 수 없이 왕왕거리기만 했던 교실풍경으로부터 역경은 시작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늘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이래라. 저래라. 멍했던 나는 질질 끌리듯 그 말들을 근근이 따라하며 티나지 않게 살아갔다. 아마 고1때까지, 그 이후에는 나름 나로서의 기억이 있다. 최근 1년 정도 집에 있으면서, 친구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내게 이러면 되지 않느냐. 저러면 되지 않느냐. 각자의 말을 많이 한다. 수많은 말들이 멍하게, 초등학교 1학년 처음 교실에 들어섰을 때처럼.. 2022. 2. 10. 선배의 경험이라는 것 누구나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경험한 선배의 지혜를 빌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눈이 떠질 때까지 헤매지 않으면 안된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랴. 그렇다면 선배들이 찾고 헤맨 것이 진보의 역할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뒤에 가는 자는 먼저 간 사람의 경험을 이용하여, 두 번 다시 실패와 헤매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다시 나아가는 점이 없어서는 안된다. 경험이라는 것과 요즘 흔히 말하는 '라떼'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 생각한다.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선배가 되어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전에는 직급때문에 선배라는 생각을 그리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직급을 떼고 나니 선배라는 것이 느껴진다. 선배, 로서 해야 할 일. 그 경험들. 괴테의 말처럼 후배.. 2020. 10. 29. 안개의 어둠이라는 것 환한 어둠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자유로를 달렸다. 캄캄한 정도는 아니었기에 자동으로 설정해 둔 안개등이 켜지지 않아 수동으로 안개등을 켰다. 그만큼 어둡지 않았다. 안 보일 뿐이었다. 안개 속이 보이지 않는다고 어둠은 아니다. 불투명한 밝음. 18년 동안 쓴 전기밥솥을 바꿨다. 새로 산 밥솥으로 밥을 했다. 밥은 고소하고 찰졌다. 일요일이었던 어제는 그 밥을 두번이나 먹었다. 밥이라는 것이, 밥맛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얗고 기름진 밥을 먹으니 힘이 났다. 밥을 먹기 싫어한 것은 밥이 아니라, 밥을 잘 짓지 못하는 밥솥이던가 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둠과 관련된 캄캄함이 아니라 환하고 확연한 것인데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저 먼데를 보려면 보이지 않지만, 내 발밑은 환한데 말이다. .. 2020. 10. 19. [데이비드 흄] 인간을 안다는 것 경험주의자인 데이비드 흄이 말했다. “인간을 아는 것이야말로 다른 것들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다” 그리고, “인간을 알기 위한 유일한 기초는 경험과 관찰이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질을 규정해놓고 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카더라'를 부정하는 것이다. 겪어봐야 안다. 관념, 정의가 먼저가 아니라 인상의 반복이 개념이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다고 치자 그가 그렇겠다고 생각했다고 치자 그것이 그 사람이 아니다. 그와의 반복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무엇이 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구체화 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며 의미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당시 18세기 그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신을 부정하는 그에게 비난을 쏟았다. 오 마이 갓, Oh, My God! 라고 두 손 모아.. 2020. 10. 15. 이전 1 2 3 4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