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내 꿈은 이루어진거다.
내 그리움의 가장 큰 대상은 잠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잠처럼 때가 되면 당연히 찾아오거나 설사 질병으로 인한 것이라도 결국은 신체에게 평온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하는 잠이 아니다. 삶을 잊게 해주고 꿈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궁극의 체념이라는 평온한 지참물을 들고 우리의 영혼으로 다가오는 그런 잠이 아니다. 아니다. 그 잠은 잘 수 없는 잠. 눈꺼풀을 닫지는 않으면서 무겁게만 만드는 잠이면서 불신의 입술을 씁쓸하게 비틀면서 혐오스러운 인상을 지어보이게 하는 잠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오랜 불면 상태에서 육체에 헛되이 가해지는 그런 잠일 뿐이다. -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텍스트 465
내가 이루고 싶은 가장 큰 꿈을 '잠을 자는 것'이다.
수면제 없이 자연스럽게 잠이 들고, 자연스럽게 깨어 더는 잠이 없는 상태로 몸을 움직이는 것.
그때는 이것만 이루어진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고 했다. 그 느낌을 한 번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꽤 오랜시간 불면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조루주페렉의 '잠자는 남자' 페소아의 '불안의서' 알렝드보통의 '불안' 이런 책들을 읽었다.
그때쯤 좋아했던 남자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곁에 있으면 잠이 왔고, 깊이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내 이상형은 옆에 있으면 잠이 오는 남자였다.
일주일 열흘 한 달쯤 잠을 자지 못하면,
친한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집에 와서 하룻밤 같이 자달라고,
그렇게 잠을 자고 나면 또 견딜만 해졌다.
잠과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집에 쌓여있던 수면제는 없어진지 오래다.
그래서 친구는 더이상 나를 불안해하지 않는다.
나는 죽을 생각이 없다는데도 친구는 쌓여있던 수면제들 때문에 불안해 했었다.
그 잠은 잘 수 없는 잠. 눈꺼풀을 닫지는 않으면서 무겁게만 만드는 잠이면서 불신의 입술을 씁쓸하게 비틀면서 혐오스러운 인상을 지어보이게 하는 잠일 뿐이다. 그것은 영혼의 오랜 불면 상태에서 육체에 헛되이 가해지는 그런 잠일 뿐이다.
페소아가 말한 그런 잠이었을 것이다.
어젯밤에 12시가 되기 전에 졸려서 잤다.
책을 읽고 있었는데, 졸음때문에 결국 읽고 싶은 곳까지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감자도 내가 잠이 들었나 확인을 하다 참지 못하고 잠이 들고 난 뒤였다.
감자가 잠이 들면 나는 편안해진다. 다행이다. 기특하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침까지 잤고, 잘 잤고,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니 개운했다.
나는 그때 희망했던 최고의 꿈인 잠을 잔다.
그럼 되었다.
빨간머리앤은 정말로 행복한 날은 어떤 사건이 아니라 소박하고 작은 기쁨들이 이어지는 날이라고 하였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거 같아요"
로비 한가운데 서 있었던 어제의 나는, 거기 두고,
오늘의 나는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의 거리를 걷다 홀로 그 골목을 빠져나와 막 새 잎을 내기 시작한 작은 정원 쯤에 앉아있는 듯 하다.
밖에는 눈도 아닌 비도 아닌 것이 종일 내리는 일요일의 고요가 평화로 느껴지는 날
'새겨듣는 曰(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츠제럴드] 유난 떨지 마 (1) | 2023.01.26 |
---|---|
[죽지 않는 것]을 누르고, [솟지 않는 것]을 파내는 (0) | 2023.01.13 |
[닫힌 문]과 [열린 문]이 있다 (0) | 2023.01.11 |
[선배] 그리고 적막 (1) | 2022.09.17 |
[채근담] 生生이 主가 된다네 (0) | 2022.0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