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 떨지 마. 가을이 돼서 날씨가 상쾌해지면 인생은 다시 시작되니까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문학과 지성사에서 8월 7일에 배정한 글이다.
몇 년전 문지에서 사은품으로 준 1일 1문장을 책점처럼 뒤적이다 마음에 꽂혔다.
딱이네.
이번 겨울에 이렇게 폭신한 눈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아파트 마당이 밤새 내린 눈으로 하얀데,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한 거다.
눈이다.
좋은 눈이다.
삼중샤시 유리문 밖에서 내리는 눈이다.
문을 열어 손으로 눈을 받아볼 생각은 없다.
마음이 솔, 솔, 솔, 라? 아니면 솔, 솔, 솔, 미?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함을 느낀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읽지 않고, 같은 사은품에서 본 말이다)
'매일 적어도 한 곡의 노래라도 들어야 하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보고, 가능하다면 몇 마디 이성적인 말을 해보는 연습을 하는 게 좋습니다.'
나는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고 눈이 폭삭하게 내리는 아파트를 내려다보며 무엇보다 말을 하고 싶어한다.
'말'
생각해보니, 어제는 감자에게 한 말이 전부였다.
감자에게 한 말은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감탄사와 명령어들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내게 감자가 있어서 말동무가 되고 정말 잘 되었다고들 한다.
한 남자와 만났다 헤어졌다.
그 남자는 이성적인 말을 하는 것을 지루해했다.
나는 참으려 했다.
굳이 이성적인 말은 안 해도 되잖아. 그냥 심심하지 않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만나다, 안 만나다 그랬다.
아마 사는 것이 심심하거나 외롭거나 그랬겠지.
너무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두가지 다 인 듯하다.
누구라도 괜찮아 하는 마음이 있긴 했다.
결국 그와는 말이 고파서 헤어졌다.
감자와는 말이 고파도 헤어지지 않겠다.
감자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리고 서로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동물임이 명백하니까.
그와의 끝자락 쯤 나눈 대화와 지금 감자와의 대화가 비슷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잠시 딴 소리>
---개는 눈을 좋아한다는데, 감자는 아직 어려서 밖에 데려나갈 수 없다.
---내년에는 눈이 내리면 털부츠 신고, 감자랑 뛰어야지. 체력을 길러야한다.
<잠시 딴 소리 끝>
괴테가 말한 노래와 시와 이성적인 말,
나는 뭘 알거나, 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어도 분명 지향은 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듣는 '노래와 시와 이성적인 말' 그런 말들이 하루의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같다.
눈이 폭닥폭닥 내리는 새해 겨울 아침,
괴테의 말을 품다가, 유난 떨지 마. 라고 하는 피츠제럴드의 말을 연이어 보고는
책점! 이 따로 없다 싶다.
이렇게라도 이성적인 말을 하고 싶었다고...., 더 이성적인 말들을 듣고 싶다.
돌아가신 황광수교수님의 수업,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한 수업을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서도, 그 어려운 말들을 듣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내겐 그런 이성적인 말들.
오늘은 그런 쓸데없이 어려운 말을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날.
가을이 돼서 날씨가 상쾌해지면 인생은 다시 시작되니까. 가 아니라
곧 봄이 되어 날씨가 화사해지면 분명 인생은 다시 시작되겠지.
바깥으로 나가게 되면 말에 대한 궁핍은 잊혀지겠지. 풍경에 취해.
하얀 눈이 내리는 오늘은 하얀 삶을 살고,
곧 봄이 되면 만나는 봄에 따라 그 색깔의 삶을 살고,
그러자.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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