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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55

[심약]이 뭐야 심약하다. 마음이 여리고 약하다 심하게 비약하면 사상누각. 아직 1월인데, 설날이 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 뭔가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느낀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감자(쿠쿠의 개명)와 함께 하면서 느낀다. -잠시 딴 소리 시작- 감자가 온 지 20일 가까이 되어 오는데 쿠쿠라는 이름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앉아 엎드려에는 반응을 하는데, 이름을 부르는 것에 보상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한다. 그러다 문득 진짜 문득 감자가 생각났다. 색깔도 생긴 모습도 감자와 닮아서였을까. 감자! 하고 불렀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본다. 헉. 감자인가 보다. 그래서 감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강형욱훈련사가 강아지개명 괜찮다고 했다) -잠시 딴 소리 끝- 강아지는 어떤 생명체인지 모르는 나는 감자가 어.. 2023. 1. 9.
[위로] 할 줄 모르는 사람 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나! 아무 것도, 아무 것도 없지!"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위로를 할 줄 모른다. 는 사실에 며칠 내내 마음이 어둡다 며칠 전 친한 동생이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나는 그 괴로움보다 괴로움을 만든 그 아들이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 괴로워 말라는 내 방식의 위로였을거다. 동생은 내 말이 위로가 안 되었다는 항의를 했다.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말하지 못했다.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겠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방어를 만들었다. 나는 방어적으로 인간관계를 했고, '위로'와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지 .. 2022. 9. 28.
[30년] 오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올해가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그리워하며 기억으로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교열이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쁜 놈이라고 욕부터 시작했다. 한번도 전화 안 한다고, 승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승이한테 소주 한잔 갈 사람이 없다고, 너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한 번 전화가 없다고, 나쁜 놈이라고 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데, 웃었다. 다행이었다. 전화라서. 고마웠다. 무심한 척하며, 오빠를 보고 싶어하는구나. 뭔가 오빠 이야기를 하면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에게 짙은 그림자 같고, 어둠 같고, 스크레치 같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고 변명했다. 오빠는 26살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 2022. 8. 5.
[손가락] 이 아프다. 일을 하면 내게 쥐약은 키보드이다. 키보드가 일이고, 놀이터였던 사람이 키보드 문제라면 너무나 치명적이다. 키보드를 치면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퇴행성 관절염 초기라나... 뭐 그렇다. 마지막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중 남들이 모르는 이유가 바로 손가락 통증이었다. 저자에게 메일을 보낼 수 없는 상황까지 갔었다. 퇴사를 하고 일년이 넘고, 일년 반이 될 때까지 키보드를 칠 수 없고, 마우스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컴과 멀리했다. 키보드와 마우스 외의 일과 놀이를 알지 못하기에 흔히 말하는 멘붕의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무능력자가 되었다. 슬프고 슬퍼 땅 속에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귀촌이었을지도. 모든 결정, 판단, 마음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어떤 덩어리인 거니까. 귀촌을 접고.. 2022. 7. 21.
[만족] 오전 9시의 여유 만족 (滿足) 1. 마음에 흡족함. 2.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 - 네이버 사전 빅토와 이틀을 함께 지냈다. 예비군 훈련 기간인데, 같이 지내고 싶다고 했다. 어제 저녁은 빅토가 샤브샤브를 사줘서 맛있게 먹었고, 밤에는 빅토가 해결하지 못한 노트북과 듀얼모니터를 C타입으로 연결해줬다. 살짝 놀라는 듯 했다. 굿나잇 인사를 두 번하고 잤다. 오늘이 훈련 마지막 날이라 세탁한 옷들이며, 챙겨가야 하는 소소한 물건들을 챙겨서 이른 아침에 나가며 편안한 얼굴로 "갈게요." 하고 인사를 했다. 빅토가 여기저기 남겨놓은 흔적들을 치우고 나만의 모드로 정리했다. 오전 9시면 덜 깬 잠을 깨우고, 씻고, 화장하고, 옷 갖춰 입고, 집을 나서고, 회사에 도착해서, 출근확인을 하고 커피 한 잔을 마주할 시간이다... 2022. 7. 20.
[음주] 힘들면 자제해야지 술을 마시면 2박 3일 죽어야 살아난다. 각오해야지. 알지. 근데 마셨다. 아예 술을 안 마신지는 2년 넘었고, 그 전 몇년은 점심 혹은 오후에 맥주 딱 한잔, -한 잔은 너무 좋지,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사랑한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놓고, 그 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10년 이상 전부터 처음 술을 마실 때까지 거슬러올라가 그때쯤은 술을 잘 마셨다. 아버지, 오빠, 동생 모두 술을 좋아하고, 그것도 집에서 마시는 술을, 늘 함께 마시고, 술을 잘 먹는 방법도 전수받고, 술 안 취하는 법도 전주받고, 그래서 나는 꽤 잘 마셨는데, 세월에 장사가 없는지 몸이 약해진건지 이제는 음주불능자가 되고 말았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니 사람구경하기가 힘들다. 대화하는 방법을 잃어버렸을지도, 이래서 안되겠다 싶어 .. 2022. 7. 16.
[요리]하고 해야 하나. 음식이라고 해야 하나 토요일마다 지연이가 오면 요리를 한다. 벌써 세번째 계절이다. 겨울인 2월에 시작해서 봄이 가고, 여름이 될 동안 2번 아니면 3번을 빼고 매주 토요일마다 뭔가를 만들었다. -잠시 딴 이야기 시작- 지연이와 나의 프로젝트, 매주 토요일에 만나 우리가 각자 잘 하는 역할을 한다. 지연이는 그림, 나는 기획 혹은 서포트. 이모티콘부터 그렸다. 땡땡이 무늬 옷을 입은 땡양, 줄무늬 스트라이프 옷을 입은 줄군, 그들의 반려견 밀크, 이렇게 3종의 이모티콘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그리고 전에 다니던 출판사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너구리베이글의 일러스트를 3주에 걸쳐서 그렸다. 오늘 최종 컨펌을 받았다. 프로젝트그룹을 만든 이후 첫 성과다. 욕심을 내지 말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잘 해낸 것 같다. 사실 나는.. 2022. 7. 12.
[불면] 자려다 말고 일어나, 홍가슴개미 더는 '나'라고 말할 수 없는 때, 썼던 15년도 더 된 시를 소환한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 내가 신뢰하여 함께 했던 홍가슴개미는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에 사라졌다. 노을이 빨갛게 북향 주방창으로 비껴 들어온 일요일 저녁, 노릇하게 투명한 꿀 항아리 속에 자지러지듯 웃는 꼴로 몸을 돌돌 만 채, 홍가슴개미는 티끌만한 빨간 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방문 틀 나무결 사이, 틈이라고도 할 수 없는 틈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홍가슴개미를 처음 본 날 부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신뢰하기로 했다. 기도를 미처 끝내지 못한 거룩한 일요일 저녁, 나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신뢰에서, 한 점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를 생각한다. 혹,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 홍가슴개미 따라 내 몸을 돌.. 2022. 7. 12.
[사고] 차 안에 물이 가득 고였다 차 안에 물이 가득 고였다 차를 탈 일이 없다. 안동을 갈 때가 아니면,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몇 달이고, 그냥 서 있다. 좀 전 같으면 어찌저찌 가까운 곳이라도 다녔기에 좀 타고 다녔는데, 그렇게 다니기에는 기름값이 너무 비싸다. 아껴서 살아야 하니까. 지하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라 그냥 지상주차인데, 하루 이틀이면 차가 너무 더려워진다. 먼지에, 눌러다니는 낙엽에, 비둘기 똥에, 못 봐줄 꼴이 된다. 폐허. 햇빛도 가리고, 먼지도 막고, 적어도 앞 유리창이라도 가리기 위해 반커버를 사서 덮어두었다. 그런데...., 반커버 고정끈 여섯개 중 두 개를 차 뒷문 사이로 끈을 넣어 차 안에서 서로 고정하는 방법이었는데, 지난 2주 내린 폭우, 장마비, 보슬비... 각종 비에 끈을 타고 차 안으로 비가 들어간거다.. 2022. 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