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쥐약은 키보드이다.
키보드가 일이고, 놀이터였던 사람이 키보드 문제라면 너무나 치명적이다.
키보드를 치면 손가락이 너무 아프다.
퇴행성 관절염 초기라나... 뭐 그렇다.
마지막 출판사를 퇴사한 이유 중 남들이 모르는 이유가 바로 손가락 통증이었다.
저자에게 메일을 보낼 수 없는 상황까지 갔었다.
퇴사를 하고 일년이 넘고, 일년 반이 될 때까지 키보드를 칠 수 없고, 마우스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컴과 멀리했다.
키보드와 마우스 외의 일과 놀이를 알지 못하기에 흔히 말하는 멘붕의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무능력자가 되었다. 슬프고 슬퍼 땅 속에 있는 듯 했다.
그래서 귀촌이었을지도.
모든 결정, 판단, 마음은 하나의 점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어떤 덩어리인 거니까.
귀촌을 접고 서울에 그냥 눌러 있기로 하면서 간간히 기획서를 쓰는 일을 한다.
때로는 아르바이트이기도 하고, 그냥 도와주기도 하고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한다.
어제는 오후 두시에 컴에 앉아 저녁 여덟시가 넘도록 꼼짝 않고 급한 제안서를 하나 만들었다.
보내는 이는 텍스트만 정리하면 된다였지만, 그건 쫌...., 모르는......, 말이 안되는 거라 자료를 찾고, 이미지를 찾고... 그러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했다.
막바지에 이르자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더 할 수 없는 시간이 왔다. 디자인의 디테일을 98% 정도임에도 그냥 넘겼다.
아침에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에 스크레치가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단어에 링크가 먹혀야 하는데, 한 글자에만 링크가 있다고 했다.
디테일에서 미진한 2%에 해당하는 거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초기 작성하라고 한 텍스트의 초라함?은 어디가고 없고, 뭔가 잡아낸다는 것이 확 열이 올랐다.
하지만, 할 말이 없다. 2%
손가락을 본다. 좀 부었다. 이거 때문일 수 있겠다.
할 말이고, 해야 하는 것인데, 손가락 통증이 벽이 되고 만 것일 수 있겠다.
ok~하고 일어나 보이는 링크를 단어 전체가 되도록 다시 설정하고, 이미지에 묻은 티클을 지우고, 나는 의도하였으나 의도로 읽히지 않은 것들을 심플하게 정리해서 다시 전달하며, 끝!!! 이라고 느낌표 세개를 찍었다.
손가락이 아프다. 이정도면 아마 며칠 갈 것 같다.
살살 달래야 하는데, 오랜 시간 글을 쓰고, 만지고 하루 중 반 이상을 키보드와 살았던 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다.
천천히 천천히
지금도 일기를 쓰며 쓰면 안되는데, 오늘 내일은 안돼! 하면서
이렇게 손가락의 수고를 위로하고, 나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달랜다.
사는 건 역시 쉽지 않다.
노트북과 키보드에서 멀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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