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

[30년] 오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by 발비(發飛) 2022. 8. 5.

올해가 오빠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았던 시간보다 그리워하며 기억으로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교열이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쁜 놈이라고 욕부터 시작했다. 

한번도 전화 안 한다고, 

승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고, 

승이한테 소주 한잔 갈 사람이 없다고,

너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인데 한 번 전화가 없다고, 나쁜 놈이라고 했다. 

 

눈에서는 눈물이 나는데, 웃었다. 

다행이었다. 전화라서. 

고마웠다. 

 

무심한 척하며,

오빠를 보고 싶어하는구나. 뭔가 오빠 이야기를 하면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에게 짙은 그림자 같고, 어둠 같고, 스크레치 같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고 변명했다. 

 

오빠는 26살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어떻다해도 그때는 아름답고 선한 나이다. 

우리는 모두 닳고 닳았는데, 우리들의 기억속에 오빠는 아름답고, 밝고 환한 미소년의 얼굴을 한 청년이다.

교열이 오빠도 올 봄에 학교를 그만뒀다고 했다. 

삶이 조용해지니, 아름다운 청년의 얼굴로 자신의 곁에 있었던 오빠가 많이 생각나나보다. 

 

회사선배 중에 오빠와 동갑인 사람들이 꽤 있다. 

그 선배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 선배들이 늘 특별하다.

그래서 그들이 뭘 원하면 들어준다. 응원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오빠가 살아있다면 저 선배의 모습으로 살테지, 

가장이라 힘들테지.

회사에서는 위아래로 힘들테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보게 된다. 

 

엄마가 오빠의 죽음을 늘 얹고 살았고, 그것이 내게 힘겨운 짐이 되었다. 

오빠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겨를 없이,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엄마의 마음을 보살펴야 하고, 엄마의 억지들을 참아내야 했다. 

뭐라도 건드리면 오빠가 튀어나오니까. 어린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을텐데,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그 힘듬을 어린 내가 버텨냈다. 

그 때의 내게 늘 연민하는 마음이 된다. 한창 신이 났을 나의 20대는 그랬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다시 오빠 죽음 이후의 모드가 될 기미가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여자. 

그때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오빠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의 슬픔을 받아내느라, 나도 엄마처럼 슬퍼하고 싶다고, 소리쳤다. 

이번에 아버지의 죽음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신거니까 엄마처럼 슬플거라고 소리쳤다. 

엄마는 그 이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편과 자식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나 또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오빠와 아버지의 슬픔은 차원이 달랐다. 

 

오빠의 죽음은 내 삶에 수많은 변곡점이 되었다. 

이후 내 삶의 선택들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고, 나를 드러낼 수 없었다. 죽은 오빠 앞에 설 수 없었다. 

늘 세상을 떠난 오빠 뒤에, 그 슬픔 뒤에 있었다. 

 

30년이 지났다. 

지금은 아니다. 

대신, 오빠의 죽음 이후 생긴 변곡점들을 하나씩 펴고 있는 느낌, 

감정은 환한 햇빛 아래 드러내고

주변은 내가 선택한 것들로 채워진다. 

 

교열이 오빠를 만나야겠다. 

우리 오빠가 그리워 꺽꺽거리며 말하는 지금, 무슨 일이 있는지, 그 감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함께 해줘야겠다. 

교열이 오빠의 곁에는 오빠의 얼굴을 아는 이도, 기억하는 이도 없어 누구에게도 '승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하니까. 

 

"미안해."

 

교열이 오빠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했다. 

30년전 오빠의 죽음으로 몇몇은 가끔 뒤돌아  쪼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오빠를 대신해서 미안한 마음을 보낸다.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잠시 딴 소리-

 

아버지의 장례식에 교열이오빠에게 부고 문자를 보냈다. 

어제 교열이 오빠는 그게 섭섭하다고 했는데, 

그냥 부고 보내면 되는데, 보낼까 고민하다 보낸다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교열이 오빠가 오빠 친구들을 데리고 왔었다. 

여섯 일곱명, 오빠들이 어릴 때처럼 나를 앉혀놓고 별의별 이야기들을 했다. 

대부분 내가 알지 못한 우리 오빠의 이야기들이었다. 

얼마나 엉뚱했는지, 용감했는지, 감성적이었는지, 웃겼는지, 그들이 이야기 속에 오빠는 내가 알던 오빠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

그 오빠들이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오빠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실컷 오빠이야기를 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아버지 임종 전날, 우리는 긴 시간동안 봉인된 오빠를 봉인해제하고, 오빠를 입에 올렸다. 

오빠 잘 만나라고, 오빠 혼자 오래 있었으니 아버지 가시면 반가워할거라고, 

엄마는, 승이 잘 부탁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선망이 시작되었을 때, 저 길 건너 오빠가 서 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이 많이 슬프지 않았다. 

안심이 되었다. 오빠에게 이제는 함께 할 아버지가 간 거니까. 

 

처음 아버지가 쓰러지셨을 때, 

살아있으면 나와 사는 거고, 죽으면 승이랑 사는 거니, 뭐든 좋다고 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런 거였다. 

 

-잠시 딴 소리 끝-

 

나는 죽으면, 강물에 뿌려줘. 

오빠가 뿌려진 강물이 아니더라도, 물에 뿌려지면 언젠가는 하나로 만날테니까.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약]이 뭐야  (1) 2023.01.09
[위로] 할 줄 모르는 사람  (0) 2022.09.28
[손가락] 이 아프다. 일을 하면  (0) 2022.07.21
[만족] 오전 9시의 여유  (0) 2022.07.20
[음주] 힘들면 자제해야지  (0) 2022.07.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