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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요리]하고 해야 하나. 음식이라고 해야 하나

by 발비(發飛) 2022. 7. 12.

토요일마다 지연이가 오면 요리를 한다. 벌써 세번째 계절이다. 

겨울인 2월에 시작해서 봄이 가고, 여름이 될 동안 2번 아니면 3번을 빼고 매주 토요일마다 뭔가를 만들었다. 

 

-잠시 딴 이야기 시작-

 

지연이와 나의 프로젝트,

매주 토요일에 만나 우리가 각자 잘 하는 역할을 한다. 

지연이는 그림, 나는 기획 혹은 서포트.

이모티콘부터 그렸다.

 

땡땡이 무늬 옷을 입은 땡양, 줄무늬 스트라이프 옷을 입은 줄군, 그들의 반려견 밀크,

이렇게 3종의 이모티콘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그리고 전에 다니던 출판사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너구리베이글의 일러스트를 3주에 걸쳐서 그렸다. 

오늘 최종 컨펌을 받았다.

프로젝트그룹을 만든 이후 첫 성과다. 

 

욕심을 내지 말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잘 해낸 것 같다.

사실 나는 일에 관해서 좀 융통성이 없는 편이라 정당한 조건을 만들고 싶었는데,

지연이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라 그런지, 지금은 조건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사업적 판단을 해줬다. 

물러설 때와 나설 때를 잘 구분해서 결과를 잘 낸 것 같다. 

 

내가 그리기 전 컨셉을 만들면, 지연이가 슬슬 그리기 시작하고, 슬슬 그리지만 그 순발력이 놀랍다.

다시 내 차례, 거기에 첨삭의견을 붙여 그림을 빼거나 덧붙여 구체적인 그림을 만든다. 

어릴 때 같이 자라서 그런지, 양쪽 부모님이 모두 친구였던지라 경험치가 비슷해서인지, 손발이 잘 맞는다. 

 

처음에는 그저 지연이가 사업을 하느라, 집안 살림 하느라, 수많은 사람들을 챙기느라, 뭔가 잊은 듯 해서,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 심심하고 맥락있는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좋아했던 지연이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보고 싶어, 딱 토요일만 해보자고 제안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한 건 완성! 자축이다.

 

그리고 곧 완성될 이모티콘 심사를 보내려는데, 개인이름으로는 그렇고해서 사업자등록을 하려고 한다.

이번주에 해야 할 일이다. 

회사 이름은 <딸기밥>으로 정했다. 발랄하고 귀여운 이름. 

웃기고 이상하지만 와이낫인 '딸기밥', 

10년 뒤 우리가 정말 늙었을 때 천천히 할 수 있는 일이거나 취미로 할 수 있는 일러스트, 그림 관련 일이 메인이다.

지금은 그렇다. 그렇게 가는거다. 

 

우리의 프로젝트의 화두인 "뭐가 될라꼬"

뭐가 될라꼬... 함 가본다.

 

-잠시 딴 이야기 끝-

 

그래서 토요일이면 우린 모인다. 가끔 성진이도 온다. 

지연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나도 가끔 그림을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아이디어를 나누고,

나머지 시간은 지연이와 함께 먹을 음식을 한다. 

지연이는 사육이라 하고, 나는 핑곗김에 맛나게 먹는다.

피자를 만들었고, 떡볶이, 잡채, 비빔면, 숙주오리고기찜, 감자 피자 같은 것, 목살구이, 바질레몬모히토, 토마토마리네이드, 바질페스토스파게티, 미나리새우감바스, 고추장수제비, 쿠키, 돈가스......, 지연이 인스타에서 우리가 함께 먹은 음식을 알아냈다. 

 

많이도 했네. 함께 먹으면 맛있었다. 

 

지연이는 이 모든 음식들을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매번 올린다. 올릴 콘텐츠가 없는데 #소영언니가 시리즈가 되었다고 한다.

지연이 sns 친구들이 부러워한다며, 함께 가보고 싶다고 한다며 뒷이야기를 전해줬었는데, 

어제는 지연이 친구 하나가 지연이 sns에 올린 음식을 자신도 해 봤는데, 실패했다는 댓글과 증거사진을 올려놓았기에, 

나는 댓글로 나름 몇 개의 노하우를 알려줬다. 

친구 신청이 들어왔고, 수락을 했고,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내가 차분하다고 생각을 하는 듯 했다. 

 

오늘 오전에 지연이 사무실로 가 수다를 떠는데, 승은이에게 내가 해 준 음식이야기를 하며,

그 음식이름을 말하는데 모든 음식이름에 '~같은' 이었다. 분명한 그 음식이 아니라 ~ 같은 음식인거다.

웃겼다. 꼭 나같아서 더 웃겼다. 

 

오후에는 그림 때문에 #너구리베이글을 갔었다. 지난 번에 바질페스토 레시피를 사장님께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 사이 사장님께서 바질화분을 스무개나 주문해서 키우고, 그 바질로 베이글을 만든다고 하셨다. 또 괜찮은 레시피가 있으면 공유해달라고 하셨다.  '~같은 음식'인데 말이다. 

 

음식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왜냐면 레시피를 따라 하지 않으니까. 꼭 넣어야 한다는 것이 없이 맘대로 만드니 어렵지 않다. 

지연이는 언니가 자기에게 실험하는거라고 하고

성진이는 늘 음식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웃어넘기지만, 그리 많지는 않지만 여러 나라 여행하면서 드는 생각은 음식은 재료만 있으면 뭘 해도 된다는 것이다. 

 

곳곳의 사람들은 곳곳에 맞게 같은 재료로 상상할 수 없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있기도 하고, 

그 먼데 사람이 우리와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러니 하면 된다. 

 

나는 절대 미식가가 아니고, 식탐도 별로 없고, 배도 별로 안 고프고, 음식이 아쉽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만들어도 괜찮다. 

맛은 웬만하다. 비교불가능인 것이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국에 파, 마늘, 고추, 고춧가루를 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요하면 건고추, 양파 정도 영 맛이 없으면 다시다 넣으면 되고.

근데 그럴 일은 별로 없다. 맛이 없는 것이 맛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치보다는 물김치. (막 흘러가네 이야기가 ㅋㅋ)

그제 한 부추물김치, 성공이다.  

부추를 좋아하는데, 부추김치는 너무 짜고,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부추물김치가 보이긴했다.

그래서 물김치 담듯이 담았더니 물김치가 되었다. 와이낫이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요리하고 먹고 있다.

경계를 풀고 보면, 문화의 경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보면,

그냥 모두를 '우리'라고 생각하면 뭐든 해도 되는 것이 음식이 아닐까.

 

음식과 거리가 가장 먼 내가 음식이야기를 이렇게 한다.

그냥,

오늘은 여기저기서 먹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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