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나'라고 말할 수 없는 때, 썼던 15년도 더 된 시를 소환한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
내가 신뢰하여 함께 했던 홍가슴개미는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에 사라졌다.
노을이 빨갛게 북향 주방창으로 비껴 들어온 일요일 저녁,
노릇하게 투명한 꿀 항아리 속에 자지러지듯 웃는 꼴로 몸을 돌돌 만 채,
홍가슴개미는 티끌만한 빨간 점이 되어있었다.
나는 방문 틀 나무결 사이, 틈이라고도 할 수 없는 틈을 오가며 먹이를 나르던 홍가슴개미를
처음 본 날 부터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신뢰하기로 했다.
기도를 미처 끝내지 못한 거룩한 일요일 저녁,
나는 살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한 신뢰에서,
한 점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를 생각한다.
혹, 모든 교회가 쉬는 월요일,
홍가슴개미 따라 내 몸을 돌돌 말거든,
꿀항아리의 달콤함에 빠져 자지러지듯 내 몸을 돌돌 말거든,
꼴깍꼴깍 죽는구나 생각하여 아는 척 하지 말고
남김없이 사라질 때까지 모른 척 그냥 두라.
신뢰를 핑계삼아 부탁한다.
한 점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로 모른 척 그냥 두라
자려다 말고 '처음으로 돌아가려고 사는 삶'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이 말에 사로잡혀
다시 책상에 앉고,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를 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움직였던 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게 나였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 시를 찾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책상에 앉아 있을 일이 많아져 식탁을 책상으로 쓰고, 식탁이 없이 2년을 보냈다.
식탁으로 쓸만한 작은 테이블이 있기는 한데, 오븐이나 커피용품이나, 과자통이나
집에 머무르는 바람에 있어야 할 것을 정리하는 테이블로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2년 동안 밥을 뜨내기처럼 먹었다. 책상 귀퉁이, 독서테이블... 아주 간혹은 싱크대에서 그냥 먹기도 했다.
먹는 것이 많지 않아도, 먹는 것이 비싸지 않아도, 귀한 모습으로 먹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식탁이 없어서 그게 안되었다.
정말 그렇게 밥 먹는 자리를 만들어 밥을 먹고, 밥 먹은 자리를 치우고 커피나 디저트를 먹고, 그 다음에 책상에 와서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질서를 지키고 싶다. 식탁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상을 식탁으로 다시 돌려놓을 순 없고, 오븐과 커피용품이 올려져있던 작고 긴 테이블을 식탁으로 쓰기로 했다.
이리저리 잘 옮겼지만, 집의 빈 공간이 또 줄어들었다.
-세수를 하는데, 이유없이 성모송이 외졌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여,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누구를 위한 기도였을까.
수십년간 성당을 거부하고, 신을 거부하고, 내게 닥친 것들을 인간인 내 힘으로 내 의지로 어떻게든 이겨내보리라 했다.
어린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잘못을 했다한들 그래봤자였을 내게,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일어난 일들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다대오 신부님의 말씀처럼 나는 아직도 과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렇더라도 내 의지로 보란듯이 일어나고 싶었다.
성당에선 무조건 너의 운명을 신과 함께 감당해라.
마리아와는 다른 몫을 타고 난 마르타처럼 그런 몫을 타고 났다는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그렇게 말한 신 앞에서 그 같은 모습으로 살긴 싫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신에게조차 구걸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그냥 혼자서 잘 이겨내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주 성당미사나 이번 주 성당미사에서, 그리고 세수할 때 나온 기도, 장례식장에서 한 기도, 나는 백기를 든 것이다.
[남김없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신뢰] 이 시를 쓸 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욕망을 쫓고 싶었다.
욕망때문에 꿀병으로 들어가 꿀에 절여져 쪼그라져 죽더라도 후회없이 그 욕망 안에서 쪼그라지고, 쪼그라져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땐 그렇게 살고 싶어 시로 맹세를 했을 것이다.
오늘 이 시를 떠올리며, 나는 그때도 지금도 사로잡혀 있구나 생각한다.
내 시간은 대나무의 다음 마디를 건너지 못하고 길게 이어지고 있구나.
대나무의 긴 마디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꺾일텐데.
힘이 들더라도 대나무의 마디를 건너야 한다는데,
나는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옛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대리석 같아서 아무리 두드려도 깨지지도 않고, 바뀌지도 않고,
그래서 시를 못 쓰는 거라고, 너 자신을 깨야 시가 될건데 너는 너를 깨지 않는다고, 정색을 하고 혼내셨다.
그때 나는 속으로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쓰는 것이 그래서 시가 되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을 할거다 생각했다.
결국,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홍가슴개미의 의지.
자려다 되돌아 앉은 것은 에어컨을 끄고, 베란다 문을 열어 밤하늘을 잠깐 보게 되었는데,
하늘에는 작은 별이 떠있고, 저 아래 아파트 주차장에는 가로등이 켜져있었다.
오전에 화분에 물을 주며 떠올렸던 금곡동 우리집,
여름밤 옥상에 올라가면 하늘에 별이 몇 개 보이고,
아래로는 가로등이 있었고, 마당에는 나무들이 살랑거렸었다.
그때를 그리워하다니, 내가 오늘 한 말, 한 생각들이 그때 그곳에 방점이 있었다니,
그때 다녔던 성당에서 그때의 평화를 느끼다니, 그곳이 목표라니.
그 시간이 꿈이라니. 받아들이기 어렵다. 넋을 놓고 있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모르겠다. 나의 의지와 신의 의지는 늘 이렇게 부딪힌다. 여전히 신의 의지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때 그곳 그 시간이 나의 목적지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고 말해야겠다.
그래서 어딜 갈거냐고 물으면 홍가슴개미가 몸을 돌돌 말고 사라진 그 꿀 항아리라고 대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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