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446

[마광수] 이별 이별 마광수 흐르고 있네요, 우리의 기억들이 강물처럼, 민물처럼, 우리의 아픔들이.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빛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아름다워요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나요 잊혀질 날들을 두려워하나요 아, 어차피 인생은 한바탕 연극인 것을 우리의 가슴과 가슴을 다시 한번 맞대 .. 2016. 2. 29.
[김승일] 멋진 사람 멋진 사람 김승일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열었어. 짱깨가 철가방에서 너를 꺼냈지. 너는 그렇게 태어난 거야. 고모가 자주 하는 얘기. 나는 그 얘기를 너무 좋아해서 듣고 또 들었다. 나만 그렇게 태어났지? 이것은 오래된 바람. 내가 배달된 해에, 할아버지가 둘 다 죽었다. 집안에 큰 인물.. 2016. 2. 22.
[정병근] 희미한 것에 대하여 희미한 것에 대하여 정병근 거울의 뒷면은 깜깜한 어둠이다 쨍그랑 하고 깨어지는 것은 어둠 때문이다 선명한 것의 배후에는 칠흑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 어릴 때, 별을 보면 선명하게 빛나는 별 옆에 희미한 별빛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면 사라지는, 그러나 다시 빛나는 눈 밖의 빛 내 .. 2016. 2. 21.
[칼린 지브란]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칼린 지브란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구속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과 영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어느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어느 한 ㅈ고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 2016. 1. 7.
[김경주] 이슬이 비치다 이슬이 비치다 김경주 내가 아직 어두운 물속에 잠겨있는 동안 박쥐들은 우리몸에 붙어서 환절기마다 목이 부었다 내가 아직 어두운 물속에 잠겨 있는 동안 자작나무가 아이 셋을 낳고 몸을 풀었다 내가 아직 어두운 물속에 잠겨 있는 동안 헤엄을 치고 온 여행자의 하초가 갸륵해졌다 .. 2015. 11. 27.
[김경주] 우리는 흐려질 때까지 서로의 입술을 만졌다 우리는 흐려질 때까지 서로의 입술을 만졌다 김경주 갈라진 갈대 속에서 벌레가 바람을 마신다 흰머리가 많아서 나는 보푸라기가 되겠지 푸른 잉크로 돌아온 제비가 취한다 나는 마신 산을 모두 조용히 뱉었어 아버지 산소에서 파도가 쏟아졌다 꽃이 다치지 않도록 해마다 삽질을 했다 .. 2015. 11. 27.
[허연] 話者 話者 허연 던져주는 먹이를 붙잡고 전투적으로 배를 불린 동물원 사자의 허탈한 눈빛을 오랫동안 들여다본 적이 있다. 혼자서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우고 그 자리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노인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침묵의 순간, 사자와 노인은 방금 전 끝난 욕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욕망의 화자(話者)가 되어야 하는 건 지나친 형벌이다. 욕망이 침묵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 밥을 먹고나서 문득 밥이 객관화될 때, 사랑이 몇 번의 호르몬 변화와 싸움질로 객관화될 때, 욕망이 남긴 책임이 나를 불러 세우는 순간이 온다. 숙연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저 여자도 두 시간쯤 전에 시리얼로 밥을 먹었을 것이고, 열 시간쯤 전.. 2015. 8. 12.
[황지우] 뼈 아픈 후회 뼈 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리려놓고 가는 것; 그 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곃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 2015. 8. 7.
[허연] 시정 잡배의 사랑 책상 위에 놓인 것 중 읽을거리는 딱 시집 한 권 허연 [내가 원하는 천사] 나는 석연찮은 마음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집을 훑어 읽는다. 시정 잡배의 사랑 허연 시정잡배에겐 분노가 많으니 용서도 많다 서늘한 바위 절벽에 매달려 있는 빨갛게 녹슨 철제 계단 같은 놈들.. 2015.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