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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자유를 본 구름

by 발비(發飛) 2008. 1. 22.

개구쟁이 구름

 

박재삼                         

 

 

구름은 어린것이 그러듯

마등령 산봉우리에 와서는 칭얼댄다

저 아득한 물소리 바람 소리가

그 소리를 대신 하는가

그러다가는 금시 또

이웃집 망나니 구름과 같이

딴 데로 놀러가기가 바쁘다

 

물소리 바람 소리가 한동안 없다

그런 때는 구름도 만면에 웃음

산봉우리에게는 체증처럼 풀린다

 

사람이 죽고 짐승이 죽고

저 칠칠하던 나무들이 죽고

그 모든 것이 죽으면

한 가지로 비가 되고 죽음이 된다는데

 

그 모든 것이 저렇게

개구쟁이 구름이 되어

이 세상에 다시 노는 간단한 이치를

나는 오늘 비로소 설악산 중에 와

말없는 산봉우리를 보며 알았다 

 

지인의 블로그에 올려진 박재삼 시인의 구름에 관한 시를 읽으며 라틴을 떠올렸다.

라틴에 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구름이 되려면 라틴의 구름이 되었으면 했다.

라틴의 구름은 자유였다.

파랗게 맑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없었다.

그건 하늘이 그만큼 크고 넓다는 이야기가 되겠지.

저 멀리..

우리가 하늘이라고 보는 그 하늘의 몇 백, 몇 천배의 하늘을 라틴에서는 하늘이라고 말하고 부르니 말이다.

크고 먼 어느 하늘 한켠에 구름은 당연히 있기 마련일 것이다.

 

난 구름이다.

어느 날은 없는 듯 하늘 한 켠에 숨었다가

보기 좋은 모습으로 하얗게 하늘 높이 떠 있다가

또 어느 날은 무겁게 가라앉은 회색빛으로 사람들의 머리 위를 맴돌다가

그러다가 주루룩

그런 다음 잠시 난 다시 사라지고

모두들 그런 나를 이젠 그냥 저냥 살만한가보다 말하고...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보는 구름은 잠시 눈에 띄지 않을 뿐

박재삼 시인의 시처럼 저 너머 어느 산에 잠시 몸을 기대고 있다는 것이지.

내가 만약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내가 사라진 것이나 당신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은 다른 어느 산에 잠시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지.

 

라틴의 구름이 되고 싶었다.

라틴의 구름은 자유였다.

넓고 넓은 하늘

그것만이 아니다.

그 아래 넓고 넓은 들판... 그리고 호수

하나의 공간이다.

커다란 그릇이다.

 

그래서 말이지

난 라틴의 구름이 되고 싶었단 말이지.

라틴의 구름이 되면 어느 산 어귀에 몸을 기대다가

한 자락 바람에도 흔들려 또 다른 산 어귀에 몸을 기대다가

그러다가 쿵쿵 머리를 박으며 찔끔거리는 눈물이 되지는 않겠다는 말이지.

적어도 내가 라틴의 구름이라면 내가 당신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라틴의 하늘과 라틴의 땅과 라틴의 호수를 닮은 그릇인 것지.

아주 커다란...

당신 안에 있으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나.

 

라틴에서 난 구름이었다.

거칠 것이라고는 없어 어디든 움직이고... 누구든 만나고... 만나는 이들 모두에게 웃음을 보내고.

그것은 자유를 만난 구름의 모습이었다.

난 라틴에서 자유를 만난 구름이었다.

                         

 

리오에서 이과수 폭포를 보기 위해 이동하던 버스 안에서 하늘과 벌판과 구름에 반했다.

하늘은 하도 넓어서 높아보이지 않았다.

벌판은 하도 넓어서 그것 그대로 뒤집으면 초록 하늘이 되지 싶었다.

구름...

그저 떠 있었다.

그것으로도 평화로워보였다.

자유가 가져다 준 평화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마음을 빼았겼다.

난 구름이다.

구름이 될 거라면 라틴의 구름이 되었으면...

 

 

페루의 티티카카호수를 막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우로스섬에는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끝도 보이지 않는 티티카카호에서 구름이 그대로 떠 있었다.

넓디 넓은 것들은

참 어리석은 말이지만, 뭐든지 담아낼 수 있다.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다.

담아내고도 남아있다.

넓디 넓은 것들은

어찌하고서도 자신도 드러나고... 담아낸 것들도 드러나고...

넓어서 여유로운 이유는 그런 것이다.

 

시인이 아름답게 노래한 그 구름.

그의 눈으로 본 구름은 이쁘다.

 

내 눈으로 본 구름.

구름이 된 나.

 

라틴은 참 넓었다.

그 곳에 있을 때 난 구름이었고

난 넓은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날아다닌...그런 구름이었고

그때 자유를 본 구름에는 내게 자유를 준 하늘 한 자락을 품고 있었다

넓게 넓게 키워야 할 그런 하늘 한 자락.... 그것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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