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닐하우스 안 화목난로 앞에 중년 세 남자가 둘러앉아있다.
화목난로는 이 비닐하우스의 주인남자가 가스통으로 직접 만들었다. 주인은 뭐든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셋은 자리하지 않은 한 남자와 화목난로의 과학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남자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세 남자가 함께 한 시간 동안 한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함께 한 듯 했다. 세 남자가 온 신경을 쏟고 있는 화목난로와 그가 같은 자리, 같은 온도로 있는 듯 하다.
셋은 자리하지 않은 남자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세남자의 눈길이 떠나지 않은 화목난로 자리, 그들의 가운데 앉아 있는 듯 했다.
세 남자는 막 피우가 시작한 난로 안의 장작이 잘 타고 있는지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노란 불이 하얀 연기 사이에서 장작을 감싸며 힘겹게 일렁이고 있었다. 하얀 연기는 점점 크게, 노란 불길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나무가 너무 젖었네.
그 중 가장 어린 남자가 바닥에 늘어져있는 장작들을 만져보며 말했다. 어린 남자지만 마흔을 훌쩍 넘겼다.
그는 손도끼를 들고, 장작들을 최대한 잘게 쪼개기 시작한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능숙해서 금방 수북해졌다. 잘게 쪼개진 장작들을 하나씩 성글게 화목난로에 넣고, 숨을 크게 삼키고, 후 하고 불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노란 불길을 품은 연기가 점점 사라지고, 빨갛고 파란 불길이 장작사이로 일어난다.
화목난로의 창이 환하다.
어린 남자는 뿌듯한 얼굴을 하고 쪼갠 장작 몇 개를 더 넣은 뒤, 젖었다는 큰 장작 하나를 그 사이에 넣는다.
제자리에 앉으며 저건 마르면서 천천히 탈 거라고 두 남자에게 말했다.
"알아, 임마! 저 놈은 묻을 시간이 될 때쯤 꼭 쓸모가 있다니까. "
두 남자는 활활 타오르는 화목난로에 비쳐 얼굴이 붉게 펄럭이는 어린 남자를 보며 낄낄댄다.
"그러게, 30분 뒤에 묻자."
둘은 허공에 손바닥을 마주쳤다.
어린 남자는 두 남자의 장난이 늘 그래 왔던 듯 천진하게 몰래 히죽 웃었다. 사랑 많이 받는 어린 강아지 같은 모습이다.
두 남자는 어린 남자를 언제 묻을까 하는 쓸데없는 말들이 오가고, 어린 남자는 선배들의 쓸데없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화목난로 안의 불길을 확인한다. 다행히 화목난로에 불길은 제대로 타오르고, 세 남자는 그것을 멍하게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음식을 준비한 남자가 밥을 먹자며 화목난로 위에 호일을 겹겹이 깔기 시작했다.
"니들 상갓집 가봤지? 삼겹살도 그렇게 굽는거야. 타면 벗겨! "
"오, 선배. 좋은데요."
어린 남자는 감탄하며 삼겹살과 버섯을 챙겨 남자 옆으로 바짝 붙어 고기를 올리라는 선배의 명령을 기다렸다.
"지금"
셋은 능숙하게 고기와 버섯을 굽고, 김치를 꺼내고, 앞접시를 하나씩 나눠가지고, 막걸리와 소주와 맥주를 차례로 꺼내 각자의 취향대로 따르고는 첫 건배를 했다.
첫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매운 고추도 하나씩 집어 쌈장에 찍어 베어물고, 각자의 빈잔에 술을 또 따르고, 약속이나 한 듯이 짧은 한숨을 쉰다.
"명석이가 있었으면 그 새끼 지금쯤 노래 한 곡은 불렀을거야. 아 진짜. 그 새끼..."
"명석인 어떡하지? 넌 어떻게 생각해?"
비닐하우스 주인인 남자가 어린 남자를 향해 묻는다.
"저는 상관없어요. 저한테는 특별한 일이 없으니까요. 와이프도 형수랑 잘 지내고."
"와이프랑 명석이 와이프랑 자주 만나?"
"네, 와이프가 형수에게 의지하는 것 같아요."
"아, 그래? 넌 괜찮은 거네."
한 남자가 비닐하우스 주인인 남자를 보며,
"나도 특별한 건 없어. 자주 보지도 못하니까. 너가 너무 힘드니까 그렇지."
"......"
비닐하우스 주인은 주로 약속을 어긴 일들에 대해 그리고 약속을 어길 때마다 본인의 마음이 상한 일들을 수도 없이 이야기한다. 두 남자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모인 거잖아요."
"명석인 니가 전화를 안 받은 날, 모임에서 빠진 거고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안 한거잖아. 우린 니 뜻에 따를거야. 니가 가장 오래된 친구인거고, 니가 가장 상처를 많은 받은 거니까."
"30년 넘었죠?"
"......"
비닐하우스의 주인은 바닥에 흩어져있는 쪼개진 장작을 난로에 넣고 난로 안의 불길을 확인한다.
"이거 진짜 잘 만들었지? 대류현상을 이란 거 알아? ......"
이야기는 난로를 만들 때 얼마나 많은 실패 끝에 성공했는지, 오븐으로 제작한 또 하나의 난로 이야기로 한참을 샜다.
난로 이야기를 하니, 세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기도 빠르게 먹었고, 건배도 잦았다.
"이렇게 재미있게 지내면 되는건데, 아, 진짜, 그 새끼."
비닐하우스 주인 남자는 그 새끼, 이 새끼, 명석이, 명석이 불렀던 노래, 명석이가 춤추는 것을 흉내를 내고 두 남자는 그 모습을 보며 마치 자리하지 않은 남자가 있는 듯이 신이 났다.
"우리 다음달 에 명석이 부를까?"
"불러서?"
"물어보지 뭐. 왜 멋대로 약속을 어기냐고, 왜 니 맘대로냐고."
"가운데 앉혀놓고 그건, 좀."
"짚고 넘어갈 건 넘어가야지."
"올까?"
"그건 그 새끼 선택인거고."
"사과라도 받아?"
"......"
셋은 거기에서 멈췄다.
화목난로 안은 몇 개 더 넣은 장작 때문인지 더욱 거세게 타고, 그 뜨거운 열기때문에 누구랄 것도 없이 의자를 뒤로 물려 화목난로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몸을 멀리 떨어뜨리고, 대신 손바닥을 펴 화목난로 손을 쬐었다.
불길은 여전하고, 술은 조금 더 마셨고, 고기 안주는 떨어져가고, 세 남자의 시간 아니 네 남자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세 남자의 얼굴은 일그러져갔다.
"그럼 우린 이제 이렇게 모여요?..."
"아......, 그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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