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째이다.
흰머리라고 하지말고, 있어보이게 '그레이'라고 하자.
그레이가 3센티정도가 되자, 이제 얼굴에 비치기 시작했다.
갈색머리가 얼굴과 나린히 할 때와 그레이가 얼굴에 나란히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아침 저녁으로 앞머리를 쓸어올려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 낯설고 두렵기 시작했다.
-잠시 딴 소리-
다들 이런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고들 한다. 서너번의 고비가 오는데 첫번째 고비인듯 하다.
-잠시 딴 소리 끝-
낯선 것 중에 가장 먼저는 얼굴의 모든 것이 너무 잘 보인다.
짙은 머리카락 덕분에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의 잡티, 주름 같은 것들이 너무 잘 보인다는 거다.
한마디로 늙었다는 것, 그래서 늙어보인다는 것.
말하고보니, '늙어보인다 것' 참 이상한 말이긴 하네.
보이는 것에 .....,
두번째가 더 문제이다. 가슴이 펄덕거릴 정도로 무섭고 두렵다.
이젠 이런 나이구나.
나는 이런 나이에 걸맞는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나.
직면한 느낌이랄까.
그동안은 염색한 머리 뒤에 숨어 아직은 부대껴도 되고, 모나고, 서툴러도 티가 나지 않았던 거였다.
저녁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어른들이 자주 말씀하시던,
'나이를 헛 먹었다.'
'나'로 살았던 지난 시간에 대해 당당할 수 없었다.
이건 마치 그레이는 해답지, 그동안의 염색머리는 내가 풀어놓은 시험지?
답을 맞추어보니, 생각했던 예상점수보다 큰 차이가 났다고나 할까.
그때 그 공부를 더 했더라면 이 정도는 풀 수 있었을텐데 하며,
그렇게 보내면 안되었던 과거의 시간들이 오답인 상태로 앞으로 훅 당겨져 와버린 느낌이다.
나는 아직도 내 삶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내 삶이 수십년간 여기 이 곳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내게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길고 길었을, 그리고 길 것인 수많은 생의 단락 중에 지금의 나는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직 질문조차 이해하기 못한 멍청한 수험생과 같다.
그레이를 받아들이는 것.
그레이를 저 멀리로 밀쳐내는 것.
걸맞는 것.
그대 자신의 보호자가 되라. 인생의 모든 행위는 그 영향에 달려있다. 그 능력은 모든 일에 필요하다. 모든 일은 분별력 있게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성에 걸맞는 모든 것에 대한 자연스런 애착이다. 그 애착은 모든 경우에 가장 올바른 것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 [세상을 보는 지혜]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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