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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사라 드퀘디트 Sarah Dequiedt.

by 발비(發飛) 2006. 10. 18.

 

 

“해가 깨면 나도 깨고, 해가 자면 나도 같이 자!”
                                             -By 사라 드퀘디트 Sarah Dequiedt.

파키스탄 라호르의 리갈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내 옆 침대를 쓰던 친구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오늘은 프랑스!

라고 대답해서 같이 있던 사람들과 이상하다는 눈으로 사라를 쳐다보았었다.

사라는 상관없다는 듯 깔깔거리며 웃었었다.

도미토리는 한 방에 침대 여러 개를 두고, 여행자는 침대 하나만 빌려서 자는 방이다.
그러니, 각자의 배낭이랑 다른 짐들을 침대발치에 챙겨둔다.
처음, 사라의 가방을 보았을 때, 뜨악했다.
월남 파병군들이 들었을 법한,
두꺼운 검은 색 면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배낭을 나일론 줄로 묶어서 다니는 듯 했다.
흙이며, 먼지며······.
프라스틱이면서 은칠을 한, 커다란 마이마이로 항상 음악을 듣고 있었다.
사라의 모든 것들이 그랬다.
프랑스에서 왔다는데, 역시 사람들 말대로 이상한 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라호르는 날씨가 45도를 넘는 정말 더운 곳이다.
마침 비가 와서,

잠깐이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어서 모두들 밖으로 나가지 않고 각자 쉬는 분위기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은 모두 옥상에 있는 휴게실로 올라간 모양인지 방에는 사라와 나만 있었다.

사라가 내가 듣고 있던 엠피에 관심을 보였다.
노래가 7,80곡 쯤은 들어있다는 말에 놀랜다.
마침 샹송 몇 곡이 들어있어 그걸 들려줬더니, 사라의 눈빛이 어디론가 머리가고 있는 듯 했다.

심심하고 멋쩍어 물어봤다.


“너 프랑스 어디 살아?”
“나 지금 프랑스에서 안살아. 네팔 살아.”
“네팔?”

사라는 지금 서른 살이고, 네팔의 ‘살라이드’라는 곳에 산단다.

사라는 자신을 농부라고 소개했다.


‘살라이드’라는 곳에는 23세살 때부터 살았는데, 3년 전에 땅을 샀단다.
사탕수수, 감자 그리고 쌀농사를 조금 짓는다고 했다.


어떻게 네팔에 살게 되었냐고 물었다.
사라는 프랑스에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모님의 사이가 안 좋은데다, 자신은 집과는 멀리 떨어진 친척집에서 주로 살았단다.

19살 때부터 여행을 다녔는데, 정말 거지처럼 다녔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비슷하지? 그랬다.)

그러다 네팔에서 멈춘 거라고······.


네팔에서 계속 살거냐고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마 언젠가 떠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단다.

결혼을 하면 떠나는 것이 힘들 거라고 했다.

네팔이 좋냐고 물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네팔이 싫었단다. 산다는 것은 다른 것이란 걸 알았단다.

그럼 왜 네팔에 계속 있었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행복하지 않았지만, 행복하게 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잘못된 선택 후에 점점 나아지도록 노력했단다. 천천히 나아지더란다.

자신은 기다리기만 했을 뿐이란다.

그러면서 자기 옆집에 사는 네팔 부부와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때로 자기를 너무 귀찮게 하기도 한다고 웃었다.)

자신이 농사를 짓는 것을 도와준단다.

3년 만에 처음으로 4달 동안 파키스탄으로 여행을 나왔는데,

그 동안 그 사람들이 농사를 어떻게 지어놓았을 지가 무지 흥미롭단다.
“내가 있을 때만큼 했을까, 더 못할까? 아님 더 잘 해놓았을까?” 진짜 궁금하단다.


추수철이 되어 곧 돌아가야 한단다.

돌아가면, 전기가 없는 것이 좀 더 불편하게 느껴질 거라고 했다.
“전기가 없어?”
버스에서 내려서 4시간을 산길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 속이라고 했다.


밤에는 어떻게 뭘 하냐고 하냐니까,
“해가 자면 나도 자, 해가 깨면 나도 같이 깨.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 원래 그래야 하는 거야.”


가끔은, 일을 끝내고도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을 때는 그림을 그린단다.
그래서 종이를 좀 샀단다. 한참을 종이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했다.
그냥 연필로 종이에다 스케치를 하는 정도라고 했다.

갑자기, 내 배낭에서 세계지도가 삐져나온 것을 보고는, 반갑게 달려든다.
“나 이거 봐도 돼? 정말 오랜만이야.”
보기에도 흥분한 듯 보였다.


사람들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바닥에 그대로 누워 뒹굴면서 이야기하던 사라는
지도를 만나는 순간부터 입을 다물고 한참을 지도만 봤다.


난, 침대에 엎드려서 사라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곳을 유심히 보았다.
남미의 칠레 남쪽 어디, 호주 북쪽 태평양의 어느 섬, 그리고 아프리카 북서쪽 어느 나라들이다.
사라는 아마 그 곳이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여행한 사진을 보다가, 사라의 사진이 나왔다. 그 친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삼일 동안을 같이 있었던 친구다.
수피댄스 파티에 갔을 땐,

옆자리에 앉아 파키스탄 사람들이 연주하는 음악소리에 맞춰 그들보다 더 신나했었다.

두 번째라고 했다.
잠을 자다 깼을 때 사라가 자기 침대에 누워 담배 피우는 것을 보고 왜 자지 않느냐고 물었을 땐,
사라는 눈이 부셔서·····. 하면서 창밖 가로등을 가리켰다.

난 여행 중 만났던 가장 멋진 친구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친구를 꼽으려 한다.
사라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간단히' 말했다.

그리고 아주 간단했다.


“해가 자면 나도 자, 해가 깨면 나도 깨.”
“잘못된 선택을 한 뒤, 점점 나아지도록 노력하며 기다린다.”


한 손에 담배를 놓지 않은 채 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며 그런 말들을 흘렸다.
사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라고 일러주려고 나에게 나타난 듯싶었다.

다음날,

훈자로 떠나면서, 자고 있던 사라를 흔들어 인사를 했다. 행운을 빈다고······.
사라는 내게 행복하길 바랄께······. 하고 인사를 했다.

사라는 내 이름은 묻지도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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