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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우곡- 밤나무길 신부님 1

by 발비(發飛) 2006. 10. 3.

 

신부님은 이렇게 웃으시네요.

 

9월 마지막날에 이 곳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봉사활동을 온 프랑스 친구들이 신부님을 방문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부석사를 다녀왔습니다.

아직 가을이 덜 왔더군요.

부석사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곳인데, 그저 부석사을 간다기에 손을 들고 "저두요!" 한 건데.

10월 1일 공휴일이라 사람은 너무 많고,

부석사 은행나무잎들은 아직 푸르기만 하고,

부석사과는 아직 푸르딩딩...빨갛게 익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네요.

멋진 곳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구만,

사람들에 가려 제대로 보여 줄 수 없어, 저 친구들에게 좀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그건 저 친구들의 운이라고 해야하나.

난 좀 더 있다가, 가을이 더 많이 깊어지면 다시 갈건데.

 

그들이 떠난 어제 오후,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끊임없이 나는 겁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이 깊은 산중에 누가 오토바이를... 하면서 나가봤더니,

신부님께서 풀을 베고 계셨습니다.

제가 "신부님!"하고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몇 번이나 부르고 나서야 신부님이 저를 보고 웃으십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따로 이 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니, 74세나 되신 신부님은 쉴 틈이 없으십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

"끝이 없어요."

정말 신부님의 일은 끝이 없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

"다쳐요. 그럼 안돼지."

 

오후 4시 30분이라 커피를 마시러 같이 사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성당엔 아직도 안나가지?"

".....네."

"헛 참. 웃겨요."

 

오늘 아침은 신부님과 성지 뒷산인 문수산을 올랐습니다.

장장 4시간 산행입니다.

사람들이 다니지않는 길이라 몇년전 겨울에도 신부님과 산을 올랐다가 길을 잃어 큰 고생을 했더랬는데,

오늘도 역시 입니다.

그렇지만, 신부님의 그 사이 길을 알아두신다고 두 번을 더 올랐답니다.

그래서 잃은 길을 되짚으시더니, 길을 찾아내셨습니다.

아주 자랑스럽게 "제가 공부해뒀어요. 발비나 오면 같이 가려고."

신부님 뒤를 따라 밟으며 산을 오르고 내립니다.

하느님이나 성당이나 뭐 그런 말씀은 한말씀도 없이 그저 조심히 잘 따라오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그런 신부님이 참 편합니다.

 

이번에는 아직 성당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당 이층에 있는 작은 방에서 옆으로 흐르는 계곡소리를 들으면서,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하염없이 산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러다보면 오후 4시 30분이 됩니다.

커피를 한 잔 마신 지금은 신부님 방에 있는 컴퓨터앞입니다.

 

지금 뒤에서 신부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아이고 아이고... 뭐가 그리 바빠요. 난 그런 거 취미없는데."

뒤에서서 제 손만 보시다가 다시 나가십니다.

 

그 분은 프랑스 남쪽 바스크 지방에서 1967년에 한국으로 오신 이방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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