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에 온 지가 일주일이구나.
저 나무.
분명히 봤었다.
그 해 겨울에 하얀 눈이 쌓였다가 햇빛에 눈이 녹으며 검게 드러나던,
흘러 내리던 앙상한 가지를 ....
분명히 다시 봤는데,
일주일 전 이 곳에 왔을 때 나뭇잎들이 바람에 빗소리를 내며
팔랑거리며 제 몸을 숨기던 가지를......
오늘 늦은 아침 밖으로 나와 나무부터 보았다.
가득하던 나뭇잎이 나무 꼭대기 1/3만 남았다.
모두 어디로 간거지?
티도 없이 사라졌다.
나무 아래를 찾아가 봐도 그 나무의 나뭇잎은 뵈지도 않는다.
티도 내지 않고 티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남은 나뭇잎들을 살피게 된다.
한 잎이라도 떨어진다면 어디로 가는 지 살펴봐야지 하고 기다렸다.
가을해가 다 지도록 지키고 서있었는데 한 잎도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나 먼저 자리를 떴다.
원하지 않는거다.
낙하,
보이길 원하지 않는거다.
흔적,
보이길 원하지 않는거다.
인정하기로 한다.
오늘 밤, 내일 아침 몇 잎이나 되는지 세어두진 않았지만,
1/4, 1/5...1/10....1/200
그렇게 눈치 정도만 챌 수 있기를, 쳐다볼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잎이 모두 사라진 어느날,
하얀 눈이 내려 늦은 오후와 긴 밤을 보내고, 짧은 아침 해에 젖은 검은 가지를 드러내 보이는 날에
이 곳에 함께 할 수 있기를 하는 바란다.
누군가 사라진 뒷자리에서 그의 흔적을 바라보는 일.
......
아마
이 나무라면 난, 그의 흔적을 보면서 미소 정도는 지을 수 있을 듯 하다.
잎 진 자리를 보면서 잔잔히 웃을 수 있을 듯 하다.
잎 사라진 뒷자리에 웃음을 남길 나무다.
.
.
.
스승이 따로 있남?
지금 우곡에서 내가 쓰고 있는 방 창가 책상 앞이다.
창가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적인다.
소리들이 들린다.
바람이 물소리를 내고
계곡이 바람소리를 낸다.
책을 읽기에 적합하다고?
아니다.
소리를 듣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런지 모른다.
누군가의 꿈이란다.
나의 꿈이다.
아주 많이, 아니 아주 조금 늙어 산골에 들어앉아
바람소리 들리는 창가에 책 몇 권 꽂아둔다.
그 책들은 신간이 아니라, 언젠가 읽었던 그렇지만 도무지 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다.
그러니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책들이겠지.
그들을 13평 작은 아파트 구석자리 책꽂이가 아닌,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절로 들어와,
따로 거풍이 필요없는 바로 지금 이 곳 같은 자리를 마련한다.
그땐 돋보기를 끼고 앉았겠지.
잘 보이지도 않겠지.
그저 책을 무릎에다 올려두고, 책은 무릎이나 읽어라고 내버려두고,
난 바람소리, 물소리를 듣는다.
그 나이가 되면
'뭘 해야하나? '
'어떻게 해야하나? '
그런거 없을테니...
바람소리, 물소리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도 '앗차!' 하는 것도 없겠지.
전화가 왔다.
"꿈같은 여행을 하고 오더니, 다시 꿈같은 곳에서 놀고 있군! 뭐야 좋은 건 다 하고 살잖아?"
좋은 건 다하고 산다? 정말 그런 거였다.
오늘 늦은 아침,
좀 더 늙어, 아주 좀만 더 늙어 이런 곳에 앉아 있는 나를 꿈꾼다.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구체적인 꿈 하나를 건설했다.
꿈꾸는 자, 꿈을 이룰 것이다. 수없이 되뇌었더니, 이루어지더이다.
나의 이 야멸찬 꿈이 이루어지길...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럼, 너도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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