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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기행일기-25

by 발비(發飛) 2006. 9. 24.
2006/09/03 일

비가 온다. 아주 줄기차게 오고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 일이지만 구름이 몰고 온 비는, 내 속의 구름들을 다시 불러들인다.
숙소 앞의 프라스틱 의자에 앉아 바람의 계곡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딱 구름만큼의 상념들이 그치지 않는다.
울타메도를 가지 못했고 서스펜ㅤㅅㅡㅈ브릿지도 건너지 못했다.

비 때문에.... 그날 밤, 사는 이야기를 했다.
여행객들과 함께 먹고 사는 이야기를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섞는 동안에 난 내 속에서 나와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저 입밖으로 내 속이 튀어나왔다.
“나 집에 갈래!.‘ 다시 한번만 더 해보고 싶다.
준비된 것도 없다.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사는 이야기를 사는 공간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나누고 있는 난 도망자의 모습인 듯 느껴진다.
탈출이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 집으로 돌아갈래.”
“갑자기 왜? 어제 유럽루트 다 짰잖아. 미술관은?”
“담에 가지 뭐.”
처 음부터 그랬다.
떠나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난 내 안에서 주체할 수 없이 타기만 하는 것을 주저 앉힐 수가 없었다.
이제 그 불은 사그라들었다.
그 불이 저절로 꺼졌든지, 아니면 다 타고 더는 탈 것이 없었던지, 그저 이제 난 좀 식었다.
내 안에 나의 손을 대고 있어도 내 몸 때문에 내 손에 화상은 입지 않을 정도는 되는 것 같다.
“그러고 싶어. 가서 뭐가 되든 지금은 가고 싶어.”
달리 할 말이 없다. 이제는 가야한다는 말밖에는 말이다.
“그 래 가요. 가야하면 가는거지. 더는 가고 싶지 않을 때, 그것을 멈추는 것도 용기지 뭐. 그래 그건 용기야. 어찌 할 수 없어서 계속 가는 것보다는 되돌아가는 것이 더 용감한 일이야. 장기여행자들은 돌아가지 않는 사람보다는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가 그건 거 같애.”
“어느 날, 돌아가지 못할까 그게 더 무섭다는 거, 그 말 맞다.”
“아침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럼 가는거지 뭐.”
밤새 난 잠을 자지 못했다, 손 바닥을 뒤집으며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수없이 뒤집었다.
어쩌면 다시 못 올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스페인을 갈 수 있을까?
로마를 갈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고흐의 그림을 만날 수 있을까?
그 꿈같은 일들이 내 눈앞에 있는데, 난 뒤로 방향을 돌린다.
그럼에도 난 방향을 돌린다.
그것들을 언제인지 모르는 어느 미래로 다시 미루고 난 집으로 간다.
내 손을 자판위에 올려놓기 위해 가려한다.
아침에 친구가 묻는다.
어찌 되었냐고.. 난 대답했다.
여전히 가야겠다고... 하지만 지난 밤 하루만에 쌩하니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맘을 바꾸었다.
처음 내가 여행을 가고 싶어하던 바로 그 곳,
앙코르 왓은 보고 가기로 했다.
잘 한거야.
친구가 다시 말한다.
“그럼 한 곳만 더 보고 가.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서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일주일만 그 곳에서 죽치고 앉아 온갖 인간구경을 하고 가. 사는 것이 뭔가 보일지도 몰라.”
그래 그러자.
세상을 다 돌아다니지 않고 세상 사람이 다 모여 있다는 그 곳에서 세상을 만나는 것도 멋지지. 그래 그러자.
그래서 난 3일이 지나면 파키스탄을 떠나 방콕으로 간다.
그리고 앙코르왓으로, 그리고 서울로 간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아침 일찍 파수를 다시 가기로 한 것은 다시 취소가 되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내가 이곳 저곳, 입이 벌어질만한 곳을 다니고 있다면,
그저 난 앞으로 걸었을 것이다.
저절로 새로운 길이 나타나고 새로움에 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비는 연일 내린다.
비 때문에 난 앞으로 갈 수 없었고, 내 안의 길을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내안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몇 번의 질문에 난 나에게 솔직히 대답한 것 뿐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저 내가 어디를 가고 싶은지는 안다.
여 행지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지 못한다.
다만 내가 가고자 하는 곳만 정해지면, 가이드북을 보거나 그것이 없다면 물어보면 된다.
미리 그 곳을 다녀온 여행자나 아니면 현지인들에게 서투른 말로 물어보면 그곳은 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곳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곳만 있으면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내 안의 길찾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어디인가만 알면 된다는 생각이다
라왈핀디까지 버스표를 끊었다.
20시간을 간다.
그리고 방콕으로 간다.
앞으로 파키스탄의 훈자에서 3일간의 시간이 있다.
어제는 간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를 읽었고,
오늘은 프랑스 소설 ‘파빈느’를 읽을 것이다.
혹 시간이 또 남는다면, 다른 책도 읽어야지.
아주 경치 좋은 이 곳에서 책을 읽어야지.
히말라야를 앞에 두고 한가로이 책을 읽는 것은 언젠가 내 꿈일 것이 분명할테니까,
난 미래의 내 꿈을 당겨 이루고 있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난 지금 누군가의 꿈을 대신 이루고 있는 것일테니까 말이다.
가슴이 설레인다.
난 지금 꿈 속을 살고 있는 것이다.
돌아가기로 하고서야 난 지금이 꿈인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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