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8/27 토
새 벽, 잠시 눈을 떴다.
닫혀진 커튼사이로 마주한 산이 보였다.
멀리 동에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설산의 꼭대기를 하얗게 비춘다.
하얀 눈이 반짝이는 산을 누워서는 볼 수가 없어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서서히 제 구역을 넓혀가는 햇살이 빠르다.
해의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여유를 둔 밝음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처럼 계속 맘이 시키는대로 움직일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저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 터지게 깨고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지금이 지를 때이다. 도움을 구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틀을 깨고 쓰고 싶은대로 맘껏 써봐라.
뭐 그런 얘기들이다.
어제밤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가 나에게 타로점을 봐주면서 한 말이었다.
그런거지 싶으면서도 그렇지 싶으면서도 내게 좀 더 확실한 운명이 없는 것이 아쉬운 시간이었다.
질문을 하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속에서 질문들이 쏟아져나온다.
내가 나에게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무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질문이라는 것이 타로의 매력이다.
질문을 하는 동안 혼란스러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어디로 이사갈 지는 묻지 않는다.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뭘 이루고 싶은지에 관해 난 궁금해 하고 있었다.
아노미 상태에서 용하게도 자리잡지 못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그 답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건지에 대한 나의 대책마련이 급함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저 올해까지 여행을 하게 되나요?
돌아가면 출판사에서 다시 일하게 되나요?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시를 쓸까요?
소설을 쓸까요?
먹고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들이다.
내가 궁금한 것들이고 내 안에 가득찬 것들이다.
새 벽, 잠시 눈을 떴다.
닫혀진 커튼사이로 마주한 산이 보였다.
멀리 동에서 떠오르고 있는 태양이 설산의 꼭대기를 하얗게 비춘다.
하얀 눈이 반짝이는 산을 누워서는 볼 수가 없어 눈을 부비며 일어났다.
서서히 제 구역을 넓혀가는 햇살이 빠르다.
해의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여유를 둔 밝음이다.
처음부터 계획된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처럼 계속 맘이 시키는대로 움직일 것이다.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저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 터지게 깨고 나가는 수밖에는 없다.
지금이 지를 때이다. 도움을 구하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틀을 깨고 쓰고 싶은대로 맘껏 써봐라.
뭐 그런 얘기들이다.
어제밤 숙소에서 만난 여행자가 나에게 타로점을 봐주면서 한 말이었다.
그런거지 싶으면서도 그렇지 싶으면서도 내게 좀 더 확실한 운명이 없는 것이 아쉬운 시간이었다.
질문을 하라고 했다.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내 속에서 질문들이 쏟아져나온다.
내가 나에게 대해서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무지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질문이라는 것이 타로의 매력이다.
질문을 하는 동안 혼란스러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내가 어디로 이사갈 지는 묻지 않는다.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뭘 이루고 싶은지에 관해 난 궁금해 하고 있었다.
아노미 상태에서 용하게도 자리잡지 못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그 답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뭘하고 있을건지에 대한 나의 대책마련이 급함을 알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저 올해까지 여행을 하게 되나요?
돌아가면 출판사에서 다시 일하게 되나요?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둬야 하나요?
시를 쓸까요?
소설을 쓸까요?
먹고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질문들이다.
내가 궁금한 것들이고 내 안에 가득찬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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