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에는 '쉼터'라는 쉼터가 있었더랬다.
빠하르간지의 한 건물 옥탑에 한국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쌍이 살고 있었다.
매번 델리를 들어갈때마다 한국음식을 먹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리고, 어려운 문제가 생길때면 어쩌면 인도의 원주민인 듯이 느껴지는 그들에게 부탁을 했더랬다.
그들이 그 자리를 떴다.
또 다른 일을 준비하고 결행하기 위해 쉼터를 접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는다고 그랬었다.
지난 번에 갔을 때 분명 그랬는데,,,,
그래서 잘 된 일이라고,
응원해주며,
그 곳에 터 잘 잡으라고 집들이 선물로 커피잔도 하나 안겼었는데,
정작 델리에 다시 오고 보니, 그들은 없다.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자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자꾸만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된다.
마지못한 이틀인데, 그 이틀 갈 곳 몰라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쉼터 밑에 피씨방에 앉아 때가 되면 그 곳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난 그들을 보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전화를 했는데... 한국으로 잠깐 들어간다더니 들어간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에 사는 누구 누구 보다 지금은 그들이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필요에 의한 것이겠지.
존재라는 것은 그것도 타인의 존재라는 것은
나의 필요에 의해 결정이 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있는 곳, 혹은 내가 존재하는 구역안에 존재만이 존재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들의 부재를 그저 부재라고 단언해 버리고 그리워하다 생각에 잠겼다.
그들은 지금도 그때처럼 존재한다.
그럼에도 내 앞에 없다고 해서 그들의 존재를 부재라고 일축해버리고 그리워한다.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이세상에 존재하고 살아간다.
존재와 부재의 중심을 나로만 국한 시켜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움을 걷도록한다.
그들은 존재하고 있을 것이고, 어디론가 그들의 방향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쉼터의 한 쌍에 국한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나와 함께 했던 사람들,
지금은 나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을 부재라고 말하지 않기로 한다.
나를 세상에 중심에 두지 않고 그저 세상을 세상의 중심에 둔다.
나도 그들도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함께 존재하며, 세상의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그리워하지 말자.
오직 이 낯선 곳에서 갈 곳이 없다고 그래서 불편하다고 그들을 부재라고 규정짓지 말자.
참 많은 사람이 존재와 부재를 반복한다.
대개의 경우 존재 다음에는 항상 부재이다.
그때마다 남겨진다는 생각을 하지.
그 박탁감으로 부터 벗어나는 일은 세상의 중심을 나에게서 세상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여행이 길지 않았다.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다.
이 여행이 세상의 주인이 세상임을 뼈 속 깊이 각인시켜 주는 일이 되길 스스로 다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존재들이 함께 하는 곳이다.
공통분모에게 주인의 자리를 내어주도록 한다. 내어 놓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내어 놓자.
쉼터의 한 쌍이 잘 자리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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