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카투만두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인 보우다나트를 다녀왔다.
네팔의 버닝가트인 파슈파티나스가트에서 걸어서 20분의 거리라는 것만 믿고 걸어간 길이었다.
낮 12시에 걷는 길은 정말 불볕 그 자체이다.
거기다 매연까지 뒤집어 쓴다. 손수건도 없다. 물도 없다..... 죽을 맛으로 걷고 걸어도 보우다나트는 보이지 않는다.
보우다나트.
고대에 만들어진 세계최대의 티벳 사리탑이란다.
티벳불교가 성한 인도의 북부를 돌 때 많이 본 사리탑이라 뭐 그리 기대도 하지 않고 시작한 길이다.그저 내가 디딘 곳에 있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라기에 걷기 시작한 길인데,
정말 장난 아니게 힘이 들었다.
가도 가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보우다나트는 손수건을 파는 가게 바로 옆이었다.
그 순간 내가 갈망하던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진 찰라였다.
손수건을 사서 목으로 줄줄 흘러내리던 땀을 닦고, 매표소로 간다.
2년전에 50루피라는 말을 들었는데, 100루피로 올랐다.
그런데 여기에 불합리가...
사우스 아시안들은 20루피이고 나머지 외국인들은 100루피, 그리고 네팔 사람은 공짜!
그제 다녀온 몽키사원도 그러더니... 여기도 외국인이 봉이다.
아마 인도에서 배운 수법인가 싶기도 하고...
지치고 힘들어 실갱이가 싫다.
100루피를 던지듯이 매표원에게 주고 스투파안으로 들어간다.
(지금 생각해보면, 짜증 낼 일도 아닌 것을,
그저 그들은 그들의 잘난 조상 덕에 정당한 유산상속을 받은 것이거늘,,,
내가 왜 짜증이야.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거지.
아마 아스팔트의 열을 제대로 받았었나보다.)
아무튼 그 곳에 들어갔다.
멀리서 본 스투파는 여느 스투파나 다를 것이 없다.
최대라는 것이 그렇듯, 멀리서 보면 가까이서 보면, 커지고 작아지고 뭐 그런 것일 뿐이다.
가운데 둥글게 만들어진 뾰족한 탑아래 부다의 눈이 보인다.
두개의 눈과 이마에 가늘게 떠진 제 3의 눈까지, 나를 내려다 본다.
가라앉히자 싶어 시원한 물 한 병을 사서 천천히 걸어본다.
in
스투파 안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다.
역시 크긴 큰 가보다.
말하자면 다보탑 석가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기분이 이상하다.
누군가의 사리탑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
크다는 것은 아마 그 안에 뭔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과 같은 것인가 싶었다.
무조건 크다고 웃긴다 했었는데,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투파 안으로 들어가자
붉은 옷을 입은 티벳승들이 앉아서 그릇을 닦고 있다.
그 옆에 붉은 옷을 입은 작은 티벳승이 나를 보고 있다가 그저 따라나선다.
혼자였기에 그래 같이 가자면서 아이 스님의 손을 잡았다.
탑위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랐다.
높구나!
계단을 오르다보니 아이 스님 또래의 두 아이가 놀고 있다.
저희들끼리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모두 나를 따라나선다.
그래 가자!
기념 촬영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 아이들에게 뭔가 이벤트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
디카를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나를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세번의 실패 끝에 나를 찍히는 데 성공이다.
아이가 무지 좋아한다.
그런데 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말이다.
그 중 두 아이가 내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한다.
이건 뭐야?
참 싫다.
수많은 구걸하는 모습을 본다.
구걸하는 모습이 정말 지겹게 싫은데,
이렇게 이쁜 아이들이 그 거지들처럼 내게 아이스크림을 말하다니... 싫은데, 그러지 말지. 싶다
할 수 없다.
아니 잠시 생각을 한 것 같다.
난 이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나도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잠시 (아마 찰라)그러지 말자 싶었다.
이 아이들에게 손을 잡고 재미있게 놀며 움직였던 시간이 아이스크림으로 주고 받는 것이 아닌 것이라는 걸 설명하기는 곤란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한다.
그저 아이에게 말한다.
그건 아니라고... 뭐라고 중얼 중얼 손 발을 다 써가며 말을 한 것 같다.
잔소리가 된건가?
아무튼 그 후 두 아이는 내게서 떠났다.
그리고 한 아이만이 여전히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을 더욱 꼭 잡고 남은 탑돌이를 하고 스투파를 나와 스투파 옆을 빙빙 돌면서
레코드점에서 흘러나오는 "옴 마니 베메 홈"이라는 티벳의 기도문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손을 꼭 잡고 노래를 같이 한 참을 부르며 난 속으로 생각했지.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와라. 이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이 사주고 싶다.'
그런데 더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나오지 않았다.
출구가 나온 것이다.
난 아이에게 허그를 하자고... 안아주었다.
아이는 한동안 손을 놓지 않았다.
아무튼 뒤를 돌아 난 나왔고 , 그 아이는 아마 돌아 갔을 것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8살즈음의 아이는 자기가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보게 해 준 어떤 여자
아이스크림 하나를 안 사준 짠순이 여자.
그건 그 아이의 영역이지.
난 숙소로 오는 길에 잠시 잠시 끊어진 생각을 한다.
부처님의 삶이 보셔진 사리탑을 보러가서 만난 아이스크림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난 부처님의 삶과는 다른 짓을 하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스투파라는 곳을 많이도 다녔지만,
뭐가 뭔지 모를 혼돈이 잠시 이어진다.
'
우리가 베푼다고 이야기하는 것
혹은 산다고 이야기하는 것
나눈다고 이야기하는 것
에 대해서 ......
혹 내가 아이들에게 일종의 폭력을 쓴 것은 아닐까하는 찝찝함이 계속되었다.
좀은 크고 좀은 돈을 가지고 있는 한 어른의 폭력!
도가 넘는 생각일까 싶다가도.. 왠지 좀 찝찝한 날이다.
정말 그 아이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가 몸담고 살고 있는 세상에는 빌어먹고, 날로먹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널려있다.
그 가능성을 심어주고 싶지 않다.
빌어먹고 살까봐 말이다.
절대 아니라고,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도 이 거리를 나가면,
엄마는 아이에게 외국인이 지나갈 때면 등을 빌어 보낸다.
아이는 말한다.
"헬로 포토!" 라고 말이다.
참 뜨거웠던 길을 간 이유는 스투파라기보다는 마치 그 아이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난 혹 어떤 이에게 정다운 얼굴로 이야기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인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해본다.
난 누굴 만나 그 만남 하나로만 참 행복했던 사람이었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