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여행 중에 아내를 동반하는 것은 연회에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는 것과 같다."
여행 중에 남편이나 아내를 동반한다는 것.
상황.1
난 아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
그가 만든 음식은 나의 입에 맞을 뿐만 아니라, 나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인만큼 칼로리를 계산해 나의 건강에 맞춘 식단이다.
난 아내가 해 준 음식을 먹고 있으면 무지 행복하다.
그런 나에게 연회초대장이 날아온다.
그 곳에 가면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참 다양한 음식이 차려져 있을 것이지만, 나를 위해 특별히 차려진 음식은 아니다.
나의 식성을 고려한 음식이 아니다.
적어도 갈등은 하겠지.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
좀 예민한 나의 위장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아내는 언제나처럼 나를 위해 이미 식사를 준비했다.
그래 난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음식을 도시락에 담아 연회에 가기로 한다.
연회장으로 간다.
모두들 커다란 접시에 각자의 취향대로 혹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담는다.
하얀 밥위에는 다양한 먹을 것들이 올라 앉았다.
빵 위에도 본 적도 없는 것들이 올라 앉았다.
누구는 맛나게 먹고,
누구는 인상을 찌푸린다.
난 나의 평소 식성 그대로, 평소의 표정 그대로 도시락을 먹는다.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여전히 아내의 음식은 맛이 있고, 난 그 음식을 평화롭게 먹었다.
연회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한다.
"오늘도 당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어. 고마워!"
고마워한다.
상황.2
연회초대?
언제나 연회에 참석할 땐, 그 곳에 차려진 여러가지 음식들 중에
나의 취향에 맞는 음식이 있기를 기대한다.
익숙한 아내의 음식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연회가 열리는 날에는 그 곳의 음식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음식들이 많다.
여러가지 재료와 소스로 이리저리 모든 경우의 수들을 이용해서 음식을 장식해 두었다.
그 많은 음식들 중, 아내가 해 준 익숙한 음식과는 다른 색다른 맛을 찾아 헤매게 된다.
닮은 음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음식과는 모양도 맛도 다른,
되도록이면 거리가 먼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게된다.
혹 그러다보면 발견한다.
아내의 음식에서 맛볼수 없었던 색다른 맛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내의 음식은 나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식도를 건너 위로 넘어가지만.
연회에서 새로 맛 본 음식은 입안에서 짜릿한 맛을 풍기며, 바로 식도로 넘기기보다는
되도록이면 혀 끝에서 그 맛을 최대한 느낀 다음 식도로 넘긴다.
아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음미하게 된다.
분명 다른 맛이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얼마나 색다른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혹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 배가 좀 아프더라도, 속이 좀 부대끼더라도 그 통증마저 달게 받아들인다.
여행이라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우린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 익숙한 어떤 이, 아내 혹은 남편, 친구 혹은 애인...
아내 혹은 남편은 어쩌면 여행 중에는 틀과 같은 것이다.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은 틀때문에 차단되기도 한다.
완전한 일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장난이던가 불륜이라는 말로 규정지어버리기엔 뭔가 다른 부류로 정리되어야 할 것 같은 어떤 것이 있다.
특별한 것은 정말 특별하여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셋팅된 날들!
그렇지만 유지되지 않는 사람 혹은 풍경, 그 모든 것들이 준비되어있다.
'여행'이라는 말을 찾았다.
그 중에 내게 남겨진 말로 주절거려본다.
인정한다. 묵인한다. 그리고 침묵하기를 청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