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주황색 살구 하나가 얼굴을 스치듯 떨어졌습니다.
살구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하늘아래 살구나무 가지에는 셀 수도 없는 살구들이 가득 열려있었습니다.
한가지에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은 살구들이 매달려있는 것입니다.
내 손에 놓인 주황색 살구는 그들과는 다른 살구가 되었습니다.
저도 살구입니다.
아니 살구나무 일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손에는 이름도 없고 성도 없는 그저 살구가 놓여있습니다.
인도라는 곳에 있습니다.
인도사람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들의 음식을 먹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과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 그들은 그들의 싸이클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난 그들의 싸이클에 맞추는 것을 불만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내가 그들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언급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안으로 들어갑니다.
"구심점을 놓아버렸다?"
"내가 출발한 곳으로 부터 연결되었던 끈을 끊어버렸다. 그래서 자유롭다."
"자유라는 것."
"나에게서 해방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밀린 빨래를 하고 정원이 이쁜 '시바레스토랑'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책갈피 속에서 검게 그려진 '행복'이라는 활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행복?
'낯설다!'
'생각한지 오래다!'
'잊고 살았구나!'
연달아, '불행' '미래' '사랑' '삶' '흔적'
수많은 단어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동떨어져서 살고 있었구나.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삐기들을 피해 다니며, 음식에 적응하며,
난 그것들과 멀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의 날들처럼 추상적인 단어들에게 자유로워진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추상적인 것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나를 볼모로 잡고 그것들에게 포박되었던 시간들이 슬라이드로 지나갑니다.
지금은 인도 북부의 마날리라는 곳에 앉아있는데,
내가 잡혀있었던 시간들이 내게서 떠나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남의 일처럼 내게서 떠나갑니다.
동떨어짐,
그것이 주는 기쁨.
지금은 그저 텅 빈 나입니다.
그래서 아주 많이 가벼운 나입니다.
행복에 근접하고자 안달하고
불행에서 멀어지고자 안달하고
사랑받고자 몸을 달구고
사랑에서 멀어질까 몸자리를 바꾸고
보이지도 않는 미래에 지금을 모두 잡혔다.
그런 무게에 눌려 질식하기 일보직전이었던 시간이 끊어진 것입니다.
주황색 몰랑한 살구하나를 손바닥에 두고 만지작거리며 하염없이 쳐다보았습니다.
만지면 만질수록 살구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분명 새콤달콤 맛난 살구였을 것입니다.
바람이 나에게 살구를 보내었습니다.
살구는 아마 한 자락 바람에 의지해 나무에서 손을 떼었을 것입니다. 나를 향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바람도 살구도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색도 탄력도 잃어버린 살구를 어찌해야 할 바 몰라하는 나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나에게 다시 바람은 살구를 선물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람은 내게 살구를 가져다 주었고, 살구는 나로 향하는 바람의 결정에 기꺼이 따랐다는 것을...
그래서 난 매일 다른 살구를 선물받고 있었다는 것을 텅비어있는 내가 알아차렸습니다.
지금은 텅 빈 내가
온갖 추상적인 단어들에게 감금되었다가 풀려난 내가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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