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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시간

by 발비(發飛) 2006. 6. 25.

여행 중에 무엇을 즐길 시간이 있을까?

 

여행 중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넘쳐나고,

잠을 잘 수 있는 시간도 넘쳐나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나무를 볼 수 있는 시간도, 내 발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동시간을 빼고는 모두 비어있는 시간이므로 그렇다.

특히나 관광지의 여러종류 중 휴식을 주로 하는 관광지라면 말이다.

문화유적지나 관광상품화된 곳이 아니라면 널린 것이 모두 시간이다.

 

그럼 그 시간을 무엇에 쓸 것인가?

마날리에서 하루, 이틀, 그리고 사흘을 보내면서 시간?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생각한다.

 

시간.1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난 어제는 하루종일 총 길이 200미터쯤 되는 마날리 메인 도로를 10번쯤 왔다갔다 했다.

그 사이, 가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얼굴을 저절로 익히게 되었다.

이젠 가게 앞을 지나면서 눈인사를 할만큼 알게 된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들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일은 없다.

 

시간.2

 

어제는 하루 종일 그들 앞을 왔다갔다 한 것이 모두이다.

한국인 여행친구는 인도 보드카를 사왔었다.

그리고 보드카에 물을 적정비율로 탔다.

소주의 비슷한 필을 찾기 위함이다.

1루피짜리 플라스틱컵에서 만나는 강원도의 소주 '경월' 필이 나는 소주로

월드컵 한국 게임시간까지 버티기 한 판에 들어갔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잔디밭에 앉아 '경월필'을 아껴마셨다.

시간은 흐르는데, 흘러보내야 한다면서 여행자들이 모였었다.

 

시간.3

 

한국에서의 시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새벽이 되어야 잠을 자던 습관은

이 곳과 한국과의 3시간30분의 시차가 나를 자정만 되면 잠을 들게 하였고,

오전 내내 몽롱하게 했던 아침잠의 습관은 6시30분만 되면 눈을 뜨는 아침형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왜 내가 이렇게 건실한 생활인이 된거지?' 하고 고민하던 중 찾아낸 답이다.

난 인도에 있으면서 한국 시간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 4

 

오늘 아침도 일찍 일어나 빨래를 하고,

이 곳에서 가져간 유일한 책(?)이었던 사전을 들고 아침밥을 먹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사전에서 오늘의 단어를 찾아 헤매이다, 하늘을 본다.

하늘의 구름은 바람을 따라 시간을 따라 히말라야의 이 자락 저 자락을 움직인다.

시간이 보이는 순간이다.

구름은 이 산 저 산에 걸쳐 산을 보이게도 하고, 산을 가리기도 한다.

난 시간에 따라 나를 보기도 하고, 나를 잊기도 한다.

보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산처럼 구름처럼 그저 나도 그런 것뿐이다.

 

시간은 그저 움직이는 것이고 난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시간. 5

 

집행유예.

60개국정도를 다녔다는 이 곳에서 만난 여행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집행유예와 같은 것이다.

20살에 여행을 떠난 사람은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을때 20살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30살이 되어 여행을 떠난 사람은 여행을 끝나고 돌아왔을 때 30살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

 

그럼 여행을 한 시간은?

그 시간의 길이는 물리적인 시간과는 상관없이 그 시간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사라진 시간이다.

여행은 흔적도 없이 내 안에 시간을 쌓아둔 것이다.

얼마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또 얼마지 않은 시간이 남았다.

 

난 집행유예을 원한다.

나의 모든 것들이 집행유예되기를 원한다.

그대로이기를 원한다.

그대로인 나를 보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 보이지 않는 시간으로 축적된 내가, 집행유예로 정지된 나를 보고 싶다.

난 나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본다.

아직 시간은 남았다.

 

시간.6

 

델리나 바라나시나... 그런 지역의 인터넷방은 한 시간에 20루피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곳 마날리는 50루피이다.

참고로 한 끼 밥이 50루피 정도이다.

그럼에도 오늘 난 몇 시간을 서핑했다.

시간의 흔적을 찾은 것이다.

내가 가입한 카페들을 돌았고,

내가 친구삼은 블로그들을 떠돌며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나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을 빙빙 돌았다.

 

오늘은 왠지 그 곳의 시간을 만나고 싶었다.

역시 한국의 시간은 지불이 필요했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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