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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바라나시 이야기

by 발비(發飛) 2006. 6. 8.
오늘로 바라나시 4일째입니다.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영혼의 도시라고 합니다.

바라나시는 우리나라로 치면 안동같은 곳이라고 해야하나요.
인도 전역에 걸쳐 가장 힌두가 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브라만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은 곳이고, 처음으로 들은 곳이기도 합니다.
바라나시에는 모두들 알다시피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강크기는 되지 않지만, 한강처럼 주위에 높은 건물이나 시설물이 없이
한쪽은 가트, 한쪽은 모래밭 그대로여서 강폭이 참 넓어보입니다.
가트는 갠지스 (이 곳에서는 강가라고 부릅니다.)강 옆으로 옛 왕족들의 별장과 사원이 이어져있습니다.
그리고 마리까르니까가트(버닝가트)는 그 유명한 바라나시의 화장터입니다.

오늘 아침 이사를 했습니다.
제가 묵었던 곳은 마리까르니까가트에서 아랫쪽으로 20분정도 내려오는 좀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어제 우연히 들른 푸자레스토랑에서 본 강가에 반해 그 아래층 게스트하우스로 이사를 했습니다.
푸자레스토랑은 바로 마리까르니까가트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모두 일본 사람입니다.
참 나... 같이 묵던 한국애들이 아침에 저더러 거기 가지말라고 했는데... 강가를 느껴보고 싶어
배낭 짊어지고 이사를 온 것이지오.

이사를 하자말자 전 옥탑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올라왔습니다.
(레스토랑.. 절대 상상하지마십시요. 드라마에 나오는 옥탑보다 더 이상한 옥탑에 코카콜라 플라스틱의자가 다입니다.)
그리고 종일 그 곳에서 갠지스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마리까르니까가트에서는 비가 내리는데도 종일 화장을 치르고.
인도의 각지에서 윤회를 벗게 해 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죽음을 맞이한 시체들이 줄을 지어
화장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대낮인데도 화장이 된 주검을 배로 실어 갠지스의 한가운데 뿌리고는 배는 돌아갑니다.
우리처럼 가루로 만들지도 않는듯합니다.
그러니, 그것이 모두 갠지스로 스며 들어가는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물결은 사라집니다.
한 시간도 더 지나야 물결이 다시 살아나면서 주검이 갠지스로 흘러들어갔습니다.
마리까르니까가트의 위와 아래에서는 수영을 하고 뱃놀이를 하고 뿌자라는 제사를 지내고.....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보았을 땐 뭘 그런사람들이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그것들을 보고 있는 이 시간,
줄 서 있는 주검들도,
내 옆을 지나가는 주황빛 천을 두르고 지나가는 주검도
사람냄새 풍기며 타고 있는 주검도
재만 남아 갠지스에 흘러들어가는 주검도
그리고 살아서 수영을 즐기고 세수하고 목욕을 하는 인도인들도 그저 아무렇지도 않는 그들이라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본 바라나시입니다.

죽음의 실루엣을 보여주기 위해 바라나시가 나를 잡았나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습니다.
바라나시의 복잡함과 소들 때문에 떠나려했었는데, 표를 구하지 못해 발목이 잡혔었는데....

그젯밤
일년에 한 번 열린다는 큰 '뿌자'가 열렸더랬습니다.
뿌자는 제사 같은 것인데, 우리나라 치면 일년에 한 번쯤 치뤄지는 사당제사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축제처럼 펼쳐집니다.
나이 많은 브라만사두의 연설, 그리고 힌디 성가
그리고 브라만 청년들의 세레모니(그들이 저에게 세레모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보기엔 하이라이트입니다.) 가 이어지고  그 날은 초청가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 제사는 일년에 한 번이지만, 매일 뿌자는 열립니다.
매일 힌디의 신에게 갠지스의 신에게 그리고 갠지스에 몸을 맡긴 영혼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꽃가루를 뿌리고 그들의 소원을 담아 또 디아(꽃접시)를 떠내려보냅니다. 매일.....

가히 영혼을 위한 도시입니다.
가트는 영혼의 고리같은 곳이었습니다.
가트가 내려다보이는 옥탑레스토랑에서 내려다 본 갠지스.
그 곳에서 수많은 죽음과 주검을 보면서 죽음과 주검에 대해 담담해지는 나를 보면서
삶의 모습이 아련히 느껴지는 듯 합니다.
역시 삶은 죽음보다 더 크고 복잡한 세계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죽음은 이렇게 내게 다가오는데,
삶은 어떻게 내게 설명될런지...
죽음이 내가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그의 실루엣을 보여주었듯이
삶 또한 내가 다가가지 않아도 스스로 그의 실루엣을 보여 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남은 인도 일정의 대부분으로 삼은 히말라야산맥아래 산인도 코스를 맞으려 합니다.
히말라야 아래로 갈수록 이제 힌두는 약해지고 티벳난민과 티벳불교와 명상의 세계가 기다릴 것입니다.
아마 삶이란 세상이라는 넓은 어떤 것이 아니라
고요히 마주하는 히말라야를 거울삼아 들여다보는 나 자신의 무엇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언뜻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렵니다.
오늘처럼 내일도
갠지스를 바라보기만 하려고 합니다.
내가 다가간 갠지스는 강의 한 자락만 보여주었으나,
그저 바라본 갠지스는 강의 전체를 보여주었으므로,,,, 어느것에도 다가가지 않으려 합니다.
스스로 말리려 합니다.

바라나시
이곳이 영혼의 도시, 죽음의 도시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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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은 영자판입니다.
마구 두드리고 시간상 그냥 둡니다 . 다시 읽을 수도 없습니다.
다른 물가는 싼데 비해 컴퓨터 사용료는 무지하게 비쌉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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