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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인도에서 기차타기

by 발비(發飛) 2006. 6. 8.
지금도 바라나시입니다.
왜 아직도 이곳이냐구요,...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장기체류자들입니다.
바라나시에서 힌디의 춤을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기 위해 머물고 있지요.
전 아닙니다.
전 다만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기차표를 구하는 일이 뭐 그리 어렵냐고 물으신다면 그 대답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인도 여행에서 가장 먼저 공부해야 하는 것이 기차를 타는 법입니다.
인도는 아시다시피 무지하게 넓은 곳입니다.
그 넓은 곳을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것도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도 모두 어려운 일이지요.
그래서 발달한 것이 기차입니다.
아마 어느 나라 못지 않게 기차루트가 잘 정비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나라가 큰 만큼 기차를 타는 법이 간단치 않습니다. 그리고 예매가 아니면 불가능하구요.

일단 '타임 테이블'이라는 책을 사야합니다.
이 책은 해마다 새로이 발간되는 책인데 이 책에 인도의 철도노선과 시간이 나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일단 정한 뒤,
책을 찾는 방법에 따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기차가 가능한 곳인지를 첵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차의 이름과 기차 출발 시간을 정합니다. 그리고 기차의 칸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윗자리 가운데 자리 아랫자리를 또 정합니다.
이 모든 것을 신청양식에 따라 작성한 뒤 예매를 해야 하지요.
탈 때도 좀 복잡합니다.
예약을 한 명단이 각 차마다 프린트물로 붙어있습니다.
프린트물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다음 그 객차에만 올라가야 합니다.
만약 다른 객차를 타면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기차를 이용하려고 하고,
기차는 한정이 되었으니 기차표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전 델리로 가는 기차를 예매하기로 여행사에 예약한 것이 이틀전입니다.
하지만 제가 델리고 갈 수 있는 표는 앞으로 사흘 뒤입니다.
이런 현상을 해석해 보기로 합니다.

이것은 인도의 신분제도와 무지 많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인도의 기차는 기차칸이 몇 개로 분류되어집니다.
우리가 사회시간에 배운대로 신분에 따라 타는 칸이 다르다는 이야기이지요.
신분이야기 그러니까 카스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지금은 오직 기차 이야기만 합니다.
기차의 칸은 A1,A2,A3(여기까지 일등칸) SL, 2 ,P(여기는 이등칸)로 나뉘어집니다.
일등칸과 이등칸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분이지요.
일등칸의 A1은 한 칸에 침대가 두개, 그다음은 네개, 그 다음은 여섯개씩 칸이 쳐져있습니다.
여기엔 베개와 이불이 있지요.
이등칸 SL은 침대가 6개 그리고 통로 옆으로 두개 그리고 칸이 막히지 않았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곳입니다.
이등칸 2는 침대가 아니라 좌석입니다. 길게는 30시간씩 가야함에도 앉아서 갑니다. 그것도 선착순입니다. 그리고 P는 소와 돼지나 화물 그리고 사람이 마구 뒤섞여 타는 곳입니다.

전 A3칸을 예매했습니다.
기차표는 아마 단계마다 두배씩 정도로 올라갑니다.
참고로 SL 델리행이 아마 300이 조금 더 넘는데, A3는 그보다 500이 더 비쌉니다. 그러니 무지하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제가 델리에서 자이뿌르 , 그리고 아그라에서 바라나시에 올때는 SL를 이용했더랬습니다..
그때는 동행자가 있어서 뭐 그렇게 두려운 것이 없었다고 해야하나... 뭐 그랬는데.
혼자서 18시간정도 타야하는 이번 델리행은 아무래도 압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과감히 한 단계를 높여서 타기로 했습니다.
현지인들이 이야기를 하기를 A시리즈에는 도둑이 없고, 안전하다고 하기에 .
그런데 차표가 귀한 것입니다.

아마 인도도 변해가나 봅니다.
제가 본 인도에는 카스트가 번연히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극빈과 나머지 경제적 구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뭐 호패같은 신분증을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신분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방인 저는 불가촉천민이 되는 거지요.
불가촉천민은 노예계급인 수드라보다 더 아랫단계인데도 전 일등칸을 예매했으니
카스트에 대한 구분이라기보다 이제 경제적인 수준의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혹 인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혹 문화 유적이 많은 중남인도를 여행하고자 한다면 기차 타는법만 익힌다면 인도여행의 반은 이룬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보너스로 에피소드를 ....
제가 이용했던 SL칸은 참 재미있습니다.
한쪽 벽면에 침대가 세칸 달려있습니다. 낮에는 그 중 가운데 칸을 접어 아래칸을 의자로 사용합니다. 밤이 될 때까지 위의 세칸에 자리를 가진 사람이 나란히 아랫칸에 앉게 됩니다. 그리고 마주한 칸도 마찬가지. 또 통로옆의  침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요.
전 그렇게 인도인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인도의 여자들은 잘 웃지 않는다는군요.
그래서 인도의 여자들이 웃을 때는 무지하게 상대방이 마음에 들때만 웃는다는데.
저로서는 그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좀 잘 웃는 편인데,.. 그것도 앞사람과 코앞에서 눈이 마주쳤는데 웃지 않아야 한다니.
오해할 수 있다니. 이건 거의 고문 수준입니다.
그래서 생긴 일입니다.
아그라에서 바라나시로 오는 기차안입니다.
전 일행과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는 남자 여자 아이 그렇게 가족들이 함께 앉아있었는데. 전 아빠 엄마 아이라고 생각한거지요.
처음부터 어쩌고 저쩌고 한 것은 아니고 14시간을 가니까 아마 5시간정도는 시침뚝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 콩글리쉬로 나누었지오.
그렇게 앞의 남자랑 이야기의 물꼬를 트자 앞 옆 사이드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 겁니다.
그러더니 모두 어디서 왔느냐 언제 왔느냐... 참 궁금한 것도 많습니다.
(다시 딴 소리,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코리아라고 대답합니다. 아마 인도에 와서 100사람에게 그 물음에 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중 80명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노스코리아? 사우스코리아?
참 나 나도 못 본 노스코리아 사람들을 본 적이라도 있는 것인지.. 참 희한한 이야기라고 우리들끼리 그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아무튼 종교가 뭐냐며 ... 모두들 힌두인데 한 사람은 자신이 카톨릭이라면 조용기 목사를 아느냐고 묻고.. 참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잘 시간이 되어 전 저의 칸으로 올라와서 책을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바로 전 역에서 다른 남자 한 분이 탔습니다.
그 분이 저더러 참을 자야하니 불을 끄라고 말했습니다.
전 알았다고 했는데,, 참 그 살벌한 분위기. 나머지 저랑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들이 단체로 그 남자에게 알 수없는 힌디어로 뭐라고 삿대질을 해가면서 나무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이야기하는지도 모르면서 전 아니라고 불끄고 자겠다고 얼른 침낭을 덮고 누웠습니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들은 씩씩거리며 그 남자에게 뭐라고 하다가 조용해졌습니다.
완전 일촉즉발이었습니다.
정말 다혈질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
인도사람들은 무지 살갑다고 해야하나, 무지 수다스럽다고 해야하나. 무지 친한 척을 한다고 해야하나.
그러므로 인도의 기차안은 더 무섭기도 합니다.
남의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하거든요.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헤휴 전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전 A3를 끊었습니다.

인도의 기차 에피소드 2

인도의 철로에는 원숭이가 무지 많이 있습니다.
바나나 한 봉지를 유유자적 들고 갔습니다.
많은 인도사람이 기차를 기다리며 그냥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이로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바나나 봉지를 확 뺐는 것입니다.
난 도둑이다 싶어서 봉지를 다시 잡아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입니다. 원숭이가 감히 사람이 들고 가는 바나나를 강탈하더니
철로를 건너 건너편 플랫폼에서 내 바나나를 보란 듯이 먹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하도 기가막히고 놀라서 소리를 좀 질렀더니.
인도 사람들이 시선 집중!
모두들 손뼉을 치고 웃습니다. 그들에게는 비일비재한 일인가 봅니다.
참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인도의 기차 에피소드 3

제가 신고 간 스포츠샌달이 너무 더운 날씨 탓으로 본드가 흘러내렸는지  창이 너덜너덜했습니다.
그래도 그냥 터덜거리면 신고 다녔더랬습니다.
속으로 어디가서 신을 사야하나 고민하면서 말이지요.
기차역에서 벤치에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구두를 닦는 아이가 글쎄 저의 신발로 돌진을 하더니
신을 벗기려고 합니다. 스포츠샌달을 닦다니..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그래서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 제 너덜거리는 창을 손가락으로 가르치더니 수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잘 됐다 싶어서 고쳐달라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런 옥신각신을 인도사람들이 놓칠리가 없습니다.
마치 구름처럼 그 아이와 저를 둘러쌉니다. 그 가운데에 신발을 벗은 제가 있었지요.
참 민망해서...
전 본드를 붙이는 줄 알았는데, 스포츠샌달을 꿰매기 시작합니다. 좀 웃기게 생겼지만 튼튼할 거라고  좋아했지요.
그 아이 실을 끊는데 구두약통을 시멘트에 갈았는지 날카롭게 만든 부분으로 실을 끊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아이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비상용으로 쓸 맥가이버칼을 그 아이에게 기쁘게 선물을 하면서 하나 하나 열어보이며 용도를 설명했습니다.
그 아이 입이 귀에 걸리고, 구름처럼 주위를 둘러쌓던 인도인들 완전 뻑가서 그아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수리 비용은 20루피 우리나라돈으로 6~700원정도였습니다.
다시 그 아이를 기차에서 만났는데, 너무 이쁘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습니다.
참 좋은 기억입니다.

인도의 기차이야기는 A3를 경험한 뒤에 계속 될 듯 합니다.

시간이 좀 많아진 관계로다가.. 피씨방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부지런히 좌충우돌 초자 인도방랑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곧 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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