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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여행전-말라리아 약을 먹은 나

by 발비(發飛) 2006. 5. 26.

인도 출발을 3일 앞두고 말라리아 약을 처방받았다.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먹어줘야지.

물과 함께 넘긴 굵은 알약 한 알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물을 몇 번이나 나눠먹은 다음에야 이물감이 사라진다.

 

목이 좀 편안해지면서 나에게 자문한다.

 

"너 왜 이 약을 먹는거니? 가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

 

누가 나에게 왜 인도에 가냐고 묻는다면,

난 할 말이 없다.

곰곰히 생각해봐도 뭐가 없다.

새로운 나라를 보고 그 문화를 체험한다? 그것 아니다.

그 곳 사람들이 만나고 싶다? 그것도 아니다.

그 곳이 보고 싶어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직도 뭐라고 답을 얻지 못한다.

나에게 묻지 말기를 바란다.

 

동생과 부모님과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100일간의 여행이다.

미국서 만 2년만에 나온 동생을 며칠만 보고 나부터 떠난다.

돌아오면 동생은 없을 것이다.

동생은 잘 다녀오란다.

난 잘가라고 했다.

 

아버지에겐 넘어지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절대 내가 돌아오기 전에 넘어지면 안되는데.....

 

엄마, 혼자서 울고 있었다.

남들은 팔자가 좋아서 여행을 간다고 부러워하는데, 우리 엄마는 몰래 운다.

 

난 그저 괜찮다고 했다.

 

내 가족들 중에 누구도 나에게 왜 떠나느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그저 나에게 잘 다녀오라고 한다.

가다가 아프면 돌아오라는 말만 한다.

내가 아직 왜 가는지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다만, 그들의 기대는 안다.

내가 그 곳을 다녀온 후에 왜 다녀왔는지 알 수 있기를... 하는 기대가 있다는 것을.

 

햇살이 너무 쨍한 오후에 가족들을 배웅했다.

다섯살짜리 조카가 hard 하고 strong한 뽀뽀와 포옹을 시작으로

차례로  hard 하고 strong한 이별을 ......

 

이유도 모르면서 비행기표를 끊고 말라리아 약을 먹었지만,

이제 몸을 맡긴다.

최대한 몸을 가벼이하여 산들바람에도 저쯤 날아가고, 비바람에도 저쯤 날아가다

또 어디쯤에 잠시 쉬다, 그러다 내 놓인 곳이 다시 지금 이 순간이 될 거라는 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

 

미리 인사를 다 치른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100일간의 짐을 챙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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