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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by 발비(發飛) 2006. 5. 3.

 

 

15분간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햇살이 장난 아니게 눈이 부셨다.

햇살때문에 놀래서 뛰어나갔다가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김영갑'사진작가의 책을  펴들었다.

 

이 책은 약속의 책 같은 것이다.

작년 이 맘때 즈음인가 제주에 살고 있는 미니모님이 보내온 책이다.

이 책을 보낸 이유는 분명 했었다.

제주로 오라는 것이었다.

미끼라면서, 꿈을 가지라면서 보냈던 그 책이다.

 

처음 이 책의 사진을 보면서 먹통이 되었다.

제주? 그 사람?

그리고 한동안 이 책에 나온 사진들에게서 숭숭 빠져나오는 사진 앞에 얼굴을 갖다 대었었다.

얼마후 이 책의 저자인 김영갑작가님은 루게릭이라는 병으로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생각했었다.

꿈이라는 것은 원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들만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안에 나오는 그의 이야기들처럼, 그가 꿈속에 산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오름에서 맞는 오르가즘-

중산간의 초원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그럴때면 난 오르가즘을 느낀다.

행복감에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제주의 오름을 올랐을때 전국에 강풍주의보가 내렸었다.

그리고 난 강풍 속에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당오름, 단산...을 올랐었다.

바람이 나를 힘차게 밀었으나, 밀어내지는 않았다.

미는 듯이 느껴지지만 격렬한 껴안음이었다.

그래서 행복했다.

 

-뭍의 것들, 육지 것들-

노인들은 섬사람들을 섬것들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무리를 그냥 '~것들'로 부른다.

 

바람이 분다. 사방에는 물이 숭숭 빠지는 현무암으로 된 곶자왈 땅밖에는 없다.

물이 가두어 지지 않는 밭에서 먹을 것을 길러 먹어야 한다.

그 곳에서 먹을 것을 기다리는 것들이다.

사람? 그들은 그저 것들이라고 말한다.

제주할망들은 특히나 희노애락이 없는 듯 싶다.

병원에서 만난 할망들이 하는 말의 억양은 희노애락에 상관없이 거의 비슷한 억양이다.

내가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마치 중국의 사성을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감정의 폭을 알 수 없는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것들이라고 불리는 모진 삶에 희노애락, 어쩌면 그것은 사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 모르는 육지사람은 또한 육지 것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뚝 떨어뜨려놓는 그 사람들.

 

-다시 마라도-

 

이제는 마라도가 싫다. 싫어도 마라도는 이땅의 최남단이다.

마라도는 옛날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변했다.

여기저기 볼썽사납게 건물이 들어서고 기념비가 들어선 마라도에 사람들이 몰려온다.

 

가파도에서 마라도로 가는 배를 탄 사람은 나 혼자였었다.

그런데 마라도는 터져나가고 있었다.

송악산에서 출발하는 마라도 유람선을 타고 온 사람들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대여해주는 자전거로 마라도가 꽉 찼다.

"이게 뭐야!"

후회했다. 보지 말 것을... 이게 뭐야! 그냥 마라도, 내 맘속의 마라도가 더 나았다.

4시30분 마지막 유람선이 마라도를 떠나자,

섬은 텅비었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섬이 되었다.

민박집과 횟집주인들은 종일 맞은 손님들의 뒷정리를 하느라 집안으로 들어갔고,

......

나만 섬 위에 서있었다.

무지하게 바람이 부는 섬 위에 서 있었다.

길가에 넘어져 있는 자전거를 세워 달려보았다.

동서남북, 동서남북, 동서남북

섬을 세바퀴돌고서야 나도 자전거를 넘어뜨려두고, 바닥에 누웠다.

바람이 나의 코 끝 위로 불었다.

내게는 불지 않고 나의 코 끝위로 소리를 내며 불었다.

마라도다.

분명 마라도다.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쓸쓸하니까 마라도다.

 

마라도를 꿈꾸었으나 마라도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텅빈 섬에 하룻밤 묵어보라고 권한다.

이른 아침 일어나 텅 빈 섬에 이는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들어본다면,

또 생각할 것이다.

마라도구나... 쓸쓸하니까 마라도구나.

 

혼자 마라도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저 멀리 뭍 세상의 일들은 내게 저 발밑의 세상처럼 하찮게 보이기도 했다는 사실!

꽤 멋진 경험이다.

 

김영갑작가님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고 그의 길을 따라나섰던 여행길이었다.

그를 만나진 못해지만, 그를 만진 것처럼 손끝이 간질거린다.

 

 

-그의 사진첩이다-

모두 세권짜리 그의 갤러리에서 판다.

숨이 콱콱 막히는 멋진 파노라마 사진들,

 

 

갤러리 간판

 

 

갤러리 문 앞에서 본 하늘

바람이 불어 유난히 파란하늘, 그 하늘 어디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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