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지켜보는 아이,1943
'알속의 달리' 1942. 필립 할스먼 사진
[달리와의 대화]
열화당 미술문고 54. 1980. 950원
알랭보스께/ 정현종 번역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그림을 그린다는 한 괴짜 초현실주의 화가와의 선문답
작년에 읽었던 '달리 나는 천재다'는 달리의 일기였었다.
'달리와의 대화' 이 책은 달리의 육성이 그대로 담긴 듯한 대담록이다.
이 책을 덮으며, 생각난 그림은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보는 아이'라는 그림이며,
이 그림의 모태가 된 필립 할스먼의 사진 '알 속의 달리'를 ' 달리, 나는 천재다'에서 찍어 옮겼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달리에 대한 느낌,
달리, 그는 참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건 그의 말들이 그가 그린 그림에 결과로 나타나있다.
그의 말을 읽어내려가면서 그의 그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도 했다.
자신에게 정직한, 그리고 오만한 한 예술가. 1904년에 태어나 1989년에 죽었다.
그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
영원히 살고 싶어했었는데,
그의 말이 들리는 듯 한데,
1989년이면 내가 관심만 있었다면, 그의 죽음을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1969년에 Dutton Paperback시리중의 하나로 발간된 책을 텍스트로 번역된 책이다.
알랭보스께(구소련출신의 시인이자 비평가)과 살마도르 달리와의 대담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첫번째 대화
너무나 예술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어서 밑줄을 치지 못했다.
뭔 말인지 몰라서...
..두번째 대화
그림은 내 온 천재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데,
내 천재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글을 쓸 때, 내가 살 때 존재하는 것으로서,
그럴 때 나는 어떤 식으로든 나의 '마술'을 나타낸다.
그는 화가이지만, 그림은 그를 표현하는 한 가지의 수단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도 만들었고, 시, 희곡도 썼으며, 전위예술도 많이 보여주었다.
그것이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사용한 각 쟝르를 알 수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그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철학자같았다.
공간의 환각을 획득했던 것이다.
구조들은 공간적 이미지를 만들어낸 육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림은 평면에서 공간을 느끼게하는 일종의 환각유도제이다.
평면을 입체로 드러나게 하는 그 구조는 꼭꼭 숨겨둔 채 말이다.
그의 그림은 입체파화가인 피카소의 입체감과는구별되는 시간의 입체감까지 맛볼 수 있다.
나는 대단한 알랑쇠이며, 온갖 알랑방귀를 뀌는 고급 창녀처럼
라파엘로와 벨라스케스를 포함한 모든 주요 인물들과 왕들의 궁둥이에 키스를 한다.
나는 나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키스를 할 것이다.
나는 천사다운 존재들에 키스를 한다.
달리의 솔직한 면모를 볼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을 고급 창녀라고 했다.
천박함을 풍기지 않으면서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엎드리겠단다.
누구나 그렇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감이다.
나도 그래봐야지 싶었다.
나보다 우월한 사람, 이것은 내가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천사다운 존재에게 찬사와 키스를 아끼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을 닮고 싶은 것이 나의 마음이니까...
이미지들은 언제나 그렇듯 사진처럼 남을 것이고,
그 이미지들로부터 움직이는 점과 선들이 나올 것이다. (......)
캔퍼스 전체가 점들로 가득 찰 것이다.
관객은 마치 그의 손을 그 점들 속에 담글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기억은 영상같은 것이다.
각인 또한 영상같은 것이다.
그것을 만질 수 있는 실체로 만드는 작업을 달리 자신이 한 것이다.
달리가 만들어 놓은 영상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우주만큼 넓은 공간이 보인다.
...세번째 대화
나는 죽음을 대단하게 여긴다.
에로티시즘 다음으로 그것은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다.
그렇지.
삶과 죽음, 그것 외에 인생에서 남은 것은 없지.
삶, 그것은 사랑의 이동 혹은 사랑의 전이... 그 기록인 셈이지.
사랑, 그것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 에로티시즘.
에로티시즘의 일회용 밧데리가 완전 방전되면, 이제 폐기.
그 폐기 곧 죽음.
사랑이 바닥이 나면 찾아오는 죽음.
어떤 이는 완전 방전 시키지 못하고서도 요절하는 이들도 있지.
그에겐 죽음조차 요절.
난 르고르 뷔지에의 무덤에 꽃다발을 보냈는데,
그 이유의 하나는 내가 그를 경멸하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내가 완전히 비겁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만일 저 '위대한 내세'가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그 곳에 가는 최소한의 보증을 얻으려고 정해진 의레를 따른 것이다.
나는 파스칼처럼 고통받는다.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를 더 준다?
그것과는 다르다.
다시 달리의 솔직함이 나타나는 이야기이다.
나도 그렇다.
정말 미워하는 상대에게 미워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되려 최선을 다한다.
그와 나와의 끝을 알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사람과의 끝, 그것은 이별이다.
이별 뒤에 있을 책임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난 최선을 다한다.
그가 할 말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에게 면죄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말한다.
난 최선을 다했다. 나 착하지?
우주는 확대되고 있는 게 아니라 수렴되고 있다.
그것은 오그라들고 있으며 공간 속의 한 점으로 모이고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 한점이 페르피낭에 있는 기차역이다.
세상이 우주 아닌 곳은 없다.
나도 우주
너도 우주
그도 우주
코스모스........씨앗하나,
씨앗 안에 들어앉은 또 우주
씨앗안에 들어앉은 또 코스모스
크고 작은 것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아무도 앞으로 그의 기일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해마다 그의 무덤에 꽃을 갖다 놓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다.
기억되지 않을 것이 뻔한 사람, 그래서 기억해줘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외로울 것이 뻔한 사람, 그래서 옆에 있어주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내 적들이 바보이면 바보일수록 더 나는 그들에게 세속의 영예를 퍼부우려고 한다.
더욱 바보이게 만드는 나쁜 생각이다.
그렇다고 고백한 것이니까 면죄가 되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한 친구가 죽을 때마다 나는 내가 그의 살해자라고 스스로 믿게끔 하려고 했다.
(......)
15분쯤 "나는 범죄자야"하고 생각하면서 쾌락을 맛본다.
이것은 나한테 강한 죄의식을 준다.
결국 내 이성은 나에게 내가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체 하는 만족감과 함께 부드러운 새털 위에서 잠든다.
영악한 사람?
그런데 나도 그러는데......
정말 나도 그랬는데......
그리고 자는데......
감동성이란 오늘 나의 삶이 갖고 있는 가장 진부하고 저급한 요소다.
저급하다고 하는 것은 말초를 건드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포르노영화, 체루성영화, 화이틴소설, 그리고 선데이 서울!
감동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말초를 건드리는 것.
그런데,
흥분되는 시간이 문제이다.
눈물을 흘리는 시간이 문제이다.
잊혀지는 시간이 문제이다.
감동성, 그것의 시간이 길게 이어진다면 저급하더라도 어떤가?
오래 흥분하고, 오래 눈물흘리고 오래 기억되는 것이라면 그 저급함을 난 즐기겠다.
상상력너머엔 육감과 본능이 있다.
난 항상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나의 이성이 판단한 일의 성공률은 낮다.
그렇지만 나의 본능이 시키는 일을 했을 때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이 블로그의 글 조차도 내가 계획하고 생각하고 두드릴 때보다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르고
그저 손가락에 나를 맡겨두면 차라리 더 낫다.
상상력이란 이성이라는 칸막이를 열었을 때 환하게 보이는 유리창 너머 세상 같은 것이다.
...네번째 대화
어제 나는 젊은이들이 놀라운 바보짓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어떤 바에 있었는데, 남녀가 어울린 그 젊은이들이
- 모든 성이 어울렸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무성이라고 할 만한-
마치 십자가의 성요한 처럼, 분명히 그들의 성을 제거하려고 하고 있었다.
바보짓이란다.
달리스러운 말이다.
남녀의 성을 무시한 만남의 장을 바보짓이라고 규정했다.
난 어떻게 생각하고 있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남녀의 성이 없는 만남, 그것은 가능하기도 하다. 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선을 넘어버릴 때도 있다.
한 번 넘은 선이 영원히 남녀을 갈라놓은 벽이 된다.
순간의 실수(?)로 남녀라는 성으로 복귀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넘은 선은 자주 넘게 된다.
그저 순간일 뿐인데...
다시 무르자고 말하기도 한다.
그저 그 순간이었다고, 다시 무성의 상태로 돌아가자고,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받아들여지지 않아 원하지 않는 모양새의 만남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무성이든 유성이든 어떤 만남도 깨어지게 된다.
그럼 결론?
순간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얍! 정신을 차려야 한다.
순간에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 무성의 장이 바보짓이라 할지라도 그 평화가 더 소중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항상 이익을 얻어야 하며,
그래서 우리의 대화를 진짜 사실들로 감칠맛 있게 해야 한다.
너를 만나서 너가 기쁨을 얻길 바란다.
행복하길 바란다.
너의 시간을 벌어주고 싶다.
너를 만나서 내가 웃을 수 있길 바란다.
행복하길 바란다.
나의 시간이 몇 배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저축되길 바란다.
그것은 사실이라는 진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실한 만남이 정답이다.
뜨게질하는 여자에서 바늘은 어딘가를 뜨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건 우주 발생 현상이 아닌가?
나는 전우주가 그 알아차릴 수 없는 바늘끝을 중심으로 돌고 있음을 아는데,
그 바늘 끝의 존재는 확실한 것이면서도 사람의 눈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다.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요한네스 베르메르의 '뜨게질 하는 여인'이라는 그림을 이야기한다.
달리가 좋아하는 화가이다.
그는 베르메르의 이 그림을 가지고 몇 번의 개작을 했으며, 퍼포먼스도 몇 번을 했다.
캔퍼스에 공간과 빛을 넣는 작업을 시도한 화가라고 말한다.
자신은 그 끝점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달리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의 그림을 다시 보았었다.
흔히 렘브란트를 빛의 마술사라고들 한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도 태양의 광선을 그림 어딘엔가 꽂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빛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내는 화가이다.
...다섯, 여섯, 그리고 일곱번째 대화
나는 기관총을 좋아한다.
이 대담의 템포를 이야기한다.
그저 읽어만 보아도 달리의 대답이 오랜 생각끝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관총처럼 발사되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이성이 끼어들기전에 말해버리기.
그래서 진정한 나를 내 보이기.
혹자는 그것을 경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달리처럼 스스로를 성 달리 라고 부르고, 철학적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면
생각을 하고 하지 않고의 그 간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의 천재성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상반되는 두 극을 갖고 있다.
즉, 겸손과 제왕같은 우월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맞다.
그때 그때 다르다.
매일 쓰는 물건 중 일종의 유물로서 숭배해야 한다면 어떤 것이 되겠는가? 구두 한 켤레
어찌나 반갑던지?
내가 집착하는......
그런 사람이 또 있었다!
나도 내 발에 거품같은 신발을 신기고 싶다!
어느날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소리쳤다.
"내가 죽지 않는 한 나는 영원히 내 치통과 싸울 수 있다!"
그게 나한테 어떤 인상을 심었는지 당신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원토록 치통과 더불어 살기로 한 어떤 사람....
영원이라는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달리는 아버지의 예를 든다.
아버지는 치통으로 고생을 하셨단다.
영원이라함은 죽을 때까지이다.
그러므로 영원은 없다. 죽음 이전은 영원이고 죽음 이후는 그저 끝이다.
그것 또한 달리의 눈부신 작업이 되겠지.
달리가 그린 그림에 20년동안 피카소의 싸인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달리가 한 대답이다.
너무나 달리스럽지 않은가?
달리는 화가이기 이전에 철학자이다.
긍정적으로 들여다보라. 그는 보기드물게 아주 긍정적인 철학자이다.
나는, 모두들 그렇듯이 새도마저키스틱(Sadomasochistic)하다.
달리 이후 그 두 개의 결합, 두 발작의 균형이 있을 것이다.
적절한 비율로 만들어진 달리.
그건 누구나 그런거 아닌가?
세상에는 완전한 새디스트도 매조키스트도 없다.
완전한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다만 색상, 명도, 채도 각각의 비율로 섞여있을 따름이다.
그것을 색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떤 색으로 보이느냐는 어떤 색으로 보느냐이다.
보는 자의 선택에 따라 부름을 받고 나오는
나의 많은 색들 중의 하나가 지금 당신이 보는 나의 색이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지배한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자신을 놀린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이 젊은이들을 지배한다는 증거가 된다.
이것도 역시 맞다.
우월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찮은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진리다.
네이블즈 옐로우,
그림을 그리는 데 기본적으로 중요한 어떤 화학적 혼합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색깔일 뿐 아니라, 단백질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나는 산소의 색깔, 즉 청색에 가장 강하게 끌린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그 두가지 색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주된 색조가 바로 이 노랑색과 청색이다.
노랑은 빛이며, 청색은 공간이다.
노랑은 내게 다가오는 타인의 시선이며 청색은 자신의 맘을 나타낸다고 난 생각한다.
나는 일급 건달이며, 그래서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즐겨야 한다.
오우~~~~ 멋진 말!
나는 일급 건달이다.
어떤 상황에도 끼어들지 않는다. 세상은 나에게 주관이 아니라 객관이다.
멀리서 보는 세상은 넓지만 내 시야안으로 다 들어온다.
매력이 철철 넘치는 사람이 있다치자.
그렇다고 그에게 난 주관이 되지도, 내가 그의 주관이 되지 않는다.
멋진 그를 모네의 거리를 두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혹은 생동감있게 보이는 거리에 두고 본다.
그저 그를 보며 즐긴다.
오래도록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강력한 이론무장!
그런데 왜 자꾸 주관이 끼어드는 거지?
왜 자꾸 누군가의 주관이 되고 싶은 거지?
고갱, 샤갈
아! 이부분도 동감!
현대화가중 그의 작품이 파괴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화가.... 고갱
오늘날 유명한 화가중 가장 터무없는 화가....샤갈
이때 달리가 앞에 있어야 손바닥 화이팅이라도 하는건데...
고갱의 그림에서 나는 삶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리고 휴식도,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에게 상처를 준 이기적 인간성을 가진 화가라고 생각한다.
먼저 인간이 되지 않은....
색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샤갈,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고통뒤에 작품을 탄생 시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면 그가 그 그림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유했을 것 같은...
그래서 그 시간만큼 보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샤갈.. 그의 삶은 행복일변도였다고 한다.
거기다 타고난 손의 끼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그림에 철학도 보이지 않고, 리얼한 삶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란한 색으로 유혹할 뿐이다.
딱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두 화가를 찝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러면 잘 난 척인가? 블로그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두 화가에 대해 언급한 것이 나온다. 흠!)
그들은 무산계급의 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초현실주의 그룹으로부터 내쫓았다.
....우리는 바야흐로 계극투쟁이 시들어 가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는데,
인공두뇌학과 현대 과학 기술에 고마와할 일이다.
무산계급 자체가 몰락하고 있다.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는 구석이다.
이 대담이 이루어진 때문 1960년대 후반즈음이다.
만일 내가 문장 하나를 찾고 있을 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변소 가서 앉아 있는 자세로 앉아 있는 한 그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전화벨이 울려서 나를 방해해야 하고,
껑충껑충 뛰어올라야만, 내가 몇 시간동안 찾던 생각이 떠오르고 내 기억이 활동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내가 나자신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몰두하고 부지런하고 꾸준한 모양으로 일하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크던 작던 간에 부딪혀야 생산된다.
내가 세살때,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다섯살때 나는 이제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다.
내 야심은 오직 자랐을 뿐인데 지금 나의 야심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며,
그외에는 아무 야심도 없다. 덧붙이자면 그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왜냐하면 내가 살바도르 달리에게 접근할수록 그는 더 멀리 가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구절을 고르라면 난 이 구절을 고른다.
어른이 된 나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무슨 일을 하던, 어떤 일을 하던,
나 자신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내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리서 나에게 손짓하는 나를 끝까지 쫓아가는 것,
그것이 장래희망이다.
참 멋진 말이다.
거위 간은 내 간에 좋지 않다.
잠언같이 느껴지는 말.
..여덟번째 대화
작품은 하나의 반영이며, 내가 이룩하고 쓰고 생각하는 것의 수없는 반영들 중의 하나이다.
그림은 내 우주진화론의 일부일 따름이다.
앞에서 나온 것처럼 달리라는 우주의 한 부분이 그림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전부가 아니다.
달리를 알기 위해서 한 장의 그림을 본다고...
초현실주의라고 규정짓는다고 ... 그를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가 썼던 글이 그이고
그가 그렸던 그림이 그이고
그가 찍었던 사진이 그이다.
모두가 합해져야 달리라는 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한 장의 그림과 한 장의 원고와 한 장의 사진이 생산될 때마다 그는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세 가지의 일,
나는 판화에 사인하고 당신질문에 답하고, 또 알벵 미셀이 나올 내 책에 관해 생각한다.
인간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는 자신을 천재 혹은 성 달리라고 부르지만, 이것을 보면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그런데 천재는 천재 같기도 하다.
내가 똥 눌때도 나는 집중하지 않는다.
그런 시간에도 나는, 내 머리 속의 생각을 비우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성 달리는 똥 눌때,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한다.
ㅋㅋㅋㅋ,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그는 똥 눌때 양쪽 귀에 양귀비꽃을 꽂고 화장실로 갔다고 한다.
똥을 누기만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좋은 냄새를 맡으며 좋은 생각을 하며 그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지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나는 모든 IBM기계가 소화. 내장 기능및 배설의 문제라고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 보았다.
그 기계는 입으로 음식을 받아먹고, 그것이 일단 소화되면, 대변으로 나온다.
지식의 저장, 출력, 적용, 그리고 폐기... 그 수순을 파악했다.
컴퓨터라는 개념이 서지도 않았는데, '달리'는 감지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대를 ... 지금 인터넷이 보편화된 이 시점에 그가 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가 궁금하다.
나는 완전히 성실하다.
(......)
그건 갈라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적용한다.
그의 아내 갈리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대단했다.
아내 갈리와의 결혼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완전히 성실하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고 했다.
그리고 고상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해달라고 하자,
"아내 갈리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적용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역시 완전히 성실하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이다.
나에게 해야 할 일이 수십만가지가 있다.
나는 매일 탄생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생명의 엄청난 연장이 필요하다.
이것이 과학이 봉사해야 할 목적이다.
그는 영원히 살고 싶어했다.
그는 냉동인간에 대한 꿈을 꾸었다.
그가 과학이라는 매체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라고 이야기 한다.
그에게 영원을 연장시키는데 믿을 것이라고는 과학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1989년에 죽었다.
그는 영원히 살지 못했다.
...열번째 대화
내 깊고 어두운 밤 한가운데서
불꽃은 불타기를 거부한다.
그건 내 메마른 심장을 끌어안지만
내 신성한 불태움을 백열로
태워 없애는 건 불가능한 일
내 살은 모두 녹아 액화하고
내 밤은 언제나 백야
그 흰 정력은 나에게서 멀고
그건 흐르며 내 눈물과 섞인다
냄새와 맛은 눕지 않는다
그건 양초처럼 내 코끝에 매달려 있다
풍부한 점액질의 침
나는 끊임없이 모든 걸 소모해 왔다
내 몸은 너무 메마르고 내 궁둥이는 좌초한다
아 그 백색은 어렴풋하다
나는 그걸 우유처럼 마신다
그게 내 핏줄 속으로
내 가장 근사한 혈관 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작은 구멍들이 그걸 받아들이게 하라
내 검은 머리가 희게 될 때까지
그가 이 대담즈음에 발표한 에로틱한 희곡 중의 한 대목이란다.
다수의 관객을 위한 희곡이 아니라, 지적인 배우 몇 명과 은밀히 공연할 것이라고 했다.
에로틱하니까......외설적이란다.
잘 읽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손색이 없다. 이게 화가의 글이라니....... 멋찐 달리!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희곡의 한 구절을 달리가 읽고 난 뒤 보스께가 묻는 말에 달리의 대답을 들어보라.
.
.
.
웃음이 난다.
보스께: 우리가 검열관에 의해 붙잡힌다면 어쩌겠는가?
달리: 세상에서 검열처럼 매력적인 건 없다.
오늘 내내 파란 글씨를 두드려두고, 오늘 내내 왔다갔다 하면서 주절거렸다.
오전 10시즈음에 올린 글에 지금은 저녁 8시이다.
한 줄 쓰고 놀다가...드라마 보다가, 노래듣다가, 청소하다가.... 그리고 한 줄 쓰다가
하지만 오랜 시간이라서 오랜 시간동안 '성 달리'와 함께 한 기분이다.
난 무지 기쁘다. 멋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고마운 이틀이었다.
Good night!
Salvador Dali!
'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0) | 2006.05.03 |
---|---|
[모딜리아니]큰 모자를 쓴 쟌느 에퓨테른느 (0) | 2006.04.29 |
[최민식]사진집 (0) | 2006.04.08 |
[박노해]노동의 새벽1984 (0) | 2006.04.08 |
낡은 책을 사다 (0) | 2006.04.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