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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조세희]침묵의 뿌리

by 발비(發飛) 2006. 4. 4.
LONG

겉표지 아트 250 (유광). 속표지 200. 면지 밍크 백색, 본문지 스노우화이트120

표지, 본문,4도 인쇄

열화당

저자 조세희

 

특징: 1.2부로 나뉘어서 편집

1부 산문, 작가 전매특허랄 수 있는 서민의 삶을  잘 유지했다

2부 사진, 조세희작가가 찍은 사진, 역시 서민의 삶에 포인트를 맞추었다.

 

별도의 차례가 없다.

산문은 좀 빽빽하다는 느낌이 들도록 레이아웃을 윗쪽으로 올려잡았다.

그 대신 사진은 상단을 중심으로 여백을 많이 주었다.

 

단정한 느낌, 공식적인 느낌, 이성적 느낌, 건조한 느낌.

편집의도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간간이 끼인 해외촬영분 사진이 생뚱한 느낌이든다. 칼라사진은 더욱....

 

(이제부터 책의 하드웨어도 슬쩍!)

외장점수 **** 별 4개

(비나이다 블로그의 오랜 손님인 찰칵님께 얻은 힌트, 별점 매기기....편집디자인만으로...)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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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그를 잊었었다.

대학교 때 우린 모두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을 읽었었다.

그 책을 좋아해야 했고, 전공필수쯤으로 생각했었었다.

나의 기억을 기준으로 더듬어 보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마르게 차게 써내려간 소설이었던 듯 싶다.

눈물나게 슬프게 쓴 것이 아니라 어금니를 물며 쓴 듯한 이야기.

조세희, 그 분의 산문 사진집을 만났다.

그 분이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는데, 구경하지 못하다가 이 책에서 만났다.

그 분의 사진과 글이 똑같다.

향하는 눈길이 항상 같다.

 

'침묵의 뿌리' 이 산문집은 산문이라고 부르는 각 쟝르가 다양하게 나왔다.

픽션과 넌픽션 모두 있다.

형식은 다양하지만, 그가 향하는 눈길의 끝은 서민이다.

서민이라고 부르기엔 그들의 삶이 좀 더 궁색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옮긴다.

사북아이들의 글모음집을 책에 그대로 옮긴 것을 나도 그대로 두드려본다.

 

 

사북

 

내가 처음 사북에 왔을 때는 시커먼 것만 보였다.

사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가도 생각을 해보았다.

사북에 처음 왔을 때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다보니 이곳 사람들이 마음이 곱고 인정 많은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고장은 나와 정이 무척 많이 들었다.

-6학년 김진아

 

 

사북의 봄

 

우리 사북엔 봄이 늦게 온다. 3월이 되어도 봄은 안온다.

우리 사북은 산간지방이라서 봄이 늦게 오는 모양이다.

-6학년 이병각

 

좋은 하느님

 

나는 어떤 때 매를 맞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며 "나는 죽고 싶어요. 죽어주세요 하느님."하고 운다.

 -5학년 도미숙

 

날아가버린 우산

 

바람이 불었다.

눈쌀이 막 날려왔다.

 나는 도랑가에서 우산을 가지고 바람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태풍처럼 오더니 우산을 가져가서 물한테 주었다,

 물은 우산을 쓰면서 저멀리 가버렸다.

 나는 떠내려가는 우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5학년 남후일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는 매일 술을 잡수시면서 우리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한다.

"니네 할아버지는 옛날에 피난갔다가 돌아가셨단다."

-5학년 김정미

 

내 마음

 

조회시간에 태극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마다 꼭 통일이 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통일이 안 온다.

 -5학년 김상은

 

세상살이에서 발전한 우리집

 

우리가 사북으로 이사왔을 때는 세방살이를 하였다.

 나는 우리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셋방 주인집에는 국민학생이 있었는데

 나하고 사이좋게 놀다가도 싸우면은 그 아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그저 세상살이를 하는 주제에"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우리집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버지께서 열심히 돈을 모아 이제는 우리집이 생겼다

. 우리집이 생겨서 남에게 방을 세주고 있기까지 하다.

 나는 그때를 생각하고 세방살이하는 그집을 잘해준다.

-6학년 이효명

 

내얼굴

 

삼학년 때 밥을 안 싸가지고 갔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밥이 없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아무나 때리고 싶었다.

 -5학년 김상은

 

 

밥은 이상하다.

 내가 속이 상할 때는 밥을 먹어도 넘어가지 않는다.

나는 그때 밥이 왜 안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5학년 송만호

 

다 떨어진 양말

 

내가 신은 양말은 다 떨어져서 신기도 싫다.

 싫다고 하면 "맨발로 학교 다녀"하고 하버지는 소리를 지르신다.

 그러면 나는 "다시는 안 그럴께요" 빌으면

아버지는 "다시는 그러면 안돼"하고 또 소리를 버럭 지르신다.

-5학년 정미향

 

 

나는 어머니한테 옷을 사달라고 조른다. 나는 형이 입던 옷만 입는다.

 우리 어머니가 돈이 없어 안 사주는 것도 나는 안다.

-5학년 송만호

 

떨어지지 않는 아버지의 검정고무신

 

우리 아버지께서 어릴때의 일이다.

그때는 검정고무신을 신었다고 한다. 어버지는 좋은 신발이 신고 싶어서 칼로 고무신을 찢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래도 또 검정고무신을 사주시면서 신으라고 하셨단다.

-6학년 김은주

 

우산

 

동생이 우산이 헌 거라고 안 쓰고 간다고 했다.

나는 모른체 했다. 어머니는 동생을 팼다.

 나는 우산을 주면 되는데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5학년 강영춘

 

구멍난 양말

 

오늘도 양말을 신으려고 하는데 구멍이 나 있었다. 내 동생 걸 보니 구머이 나 있지 않았다.

나는 슬쩍 양말을 바꿔신고 왔다.

-5학년 박수용

 

돈 많은 집

 

동생이 어머니보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면 어머니는

 "큰게 머 장난감 놀이를 해"하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또 조르면 어머니는 "돈 많은 집한테 사달라고 그래"하고 말씀하신다.

-5학년 권영숙

 

가장 슬픈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며칠 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중풍에 걸리셔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간경화증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와 할머니가 보고 싶다.

-6학년 김은주

 

어머니의 병

 

우리 어머니는 병에 걸렸다. 매일 아프다고 하신다.

우리 아버지가 있을 때는 아픔을 참고 밥을 한다. 내가 학교 갔다오면 아프다고 잠을 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5학년 김상배

 

아픈 이야기

 

우리 어머니는 숨을 잘 못 쉰다.

 그래서 내가 밥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제가 할께요"하고 말하였다.

 어머니가 "그래. 그럼 자 해라"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1학년 송미경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는데 돌이 떨어졌다.

 어머니가 밤에 갔다.

내 동생이 울었다.

 그래서 내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그래서 내 동생을 울지 말라고 했다.

-1학년 정미현

 

엄마

 

나는 엄마있는 애들이 부러웠습니다.

 엄마의 손으로 만든 맛난  빵을 들고서 놀리듯이 맛있게 먹어대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내게도 나눠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있어서 콧대높은 그애들은 나눠주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그애들이 미웠습니다.

두들겨 패주었죠.

 그러면 그애들은 엉엉 울면서 코밑을 뻘겋게 해가가지고 저희 엄마에게 이르러 갑니다.

 마귀할멈같은 그애들 엄마는 내 머리를 쥐어 박습니다.

 나도 엉엉 울면서 집을 들어서지만 엄마는 없습니다.

 누나가 학교 가느라고 미뤄놓은 설거지통 위로 파리가 윙윙 날립니다.

 코를 손증으로 쓰윽 닦은 나는 팔뒤꿈치를 바짝 세우고 설겆이를 합니다.

에잉! 요놈의 파리가

더러운 파리를 향해 손을 번쩍 쳐드는 순간

 설겆이통이 와르르 땅으로 무너집니다.
-6학년 이정우

 

어머니의 거짓말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나는 땅에서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한식아, 이리와, 뭐 줄께" 해놓고 가면

 안주고 나를 꼭 붙들어놓고 달랬다.

-5학년 김한식

 

형이 아팠을 때

 

우리 형이 아팠을 때 어머니가 요구르트도 사주시곤 했다. 형은 안 먹고 나를 주었다.

그러면 나는 "형아 먹어"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5학년 김한식

 

우리 형의 생일

 

우리 형들은 서울에서 일한다.

 우리 작은 형, 큰 형 모두 생일을 안한다.

 지난 겨울 방학때 서울 형들한테 갔다.

 그런데 우리 작은형 생일이었는데 알면서도 그냥 지나갔다.

. 나는 잠자리를 펴고 잘라고 하니 그 생각이 나서 잠이 안 왔다.

-5학년 김한식

 

 

아버지의 산소

 

지금 밖에는 비가 세차게 쏟아진다. 그런데 나는 비가 안 오는 거이 좋다.

비가 오면 아버지 산소가 젖는다.

그리고 잔디도 조금 심어서 흙이 파헤져진다.

-5학년 윤종원

 

하늘 나라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갑갑하다.

나는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하늘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늘 나라에는 사람이 살고 있을까.

 사람이 산다면 어떻게들 살고 있을까

-5학년 이순자

 

조세희 작가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분이 쓰신 앞 뒤의 어떤 산문보다도 이 사북아이들의 글들이 나를 붙든다.

조세희 작가님은 이 글들 뒤에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그 분이기에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조세희작가가 아니라,

이 나라에 한다하는 높고 많이 가지신 분들이야 이 글들을 본다고 잠을 설치겠어.. 싶었다.

높고 많이 가지신 분들이야 그러겠지.

"다 알어. 안다니까"

좀 나은 사람들은 내일 뭔가 처리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면서 이불을 끌어당길 것이고,

그 보다 못한 사람들은 한 숨 한 번 길게 쉬면서 이불을 끌어당길 것이고,

그 보다 더 못한 사람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하품을 할 것이다.

 

내 생각을 빗대고 싶지 않다.

그저 몇 번 읽는 것으로... 그리고 그들이 이젠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5학년이었던 한식이. 순자

6학년이었던 정욱이

그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잠시... 비나이다... 그 아이들의 아픔이 이것으로 끝이었길.....

 

 

 

 

많이 변했구나.

사람이 변한 것인지, 세상이 변한 것인지.

조세희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을 읽을 때의 울컥거림이 없다.

여러 편의 산문에 힘이 실려있는 ... 초지일관 서민들보다 더 못한 서민들의 눈높이에게 앉아있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데도  왜 그 울컥임과 분노같은 것이 없어진건지.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그 아픔을 나누기보다는 마치 말초를 자극시키고 떠나버리는 어떤 홍등문학같은...

이 느낌.

시간 탓을 하고, 인간 탓을 하고, 세월 탓을 하고

그러다가도 많이 좋아져서 그런 것이겠지.. 그러다

책이라는 것이 생명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는 교과서같은 책들이 지금은 아닌.. 그렇다고 그것의 유행에 편승된 것도 아닐텐데

지금 살고 있는 환경에 젖어살다보면 본질까지도 다르게 느끼게 되는가 보다.

오랜 책들...

또 시간이 지나야 할 듯 싶다.

역사라는 것의 유효기간에 맞물려.. 좀 전의 것은 퇴색

좀 더 좀 더 오랜 전의 것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읽혀질 날이 있겠지.

삼국유사처럼...그럴 날이 있겠지 싶다.

그 땐 그런 나라였었어 하고 읽히는 날이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1970년 즈음에는 그랬었지.

그런 나라였었고, 그렇게 사람들이 살았고, 아팠고... 자랐다고....

역사로 생각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읽힐 책!

 

ps 조세희작가의 사진

가깝다. 아주 가깝다.

피사체와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 마치 아들 딸 부모 형제를 찍은 듯이 아주 가깝다.

그의 사진은 본다가 아니라 "있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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