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뭉크. 카를 요한의 봄날 1890
에드바르드 뭉크. 카를 요한의 저녁 1892
한 사람의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가 같은 거리를 2년차를 두고 그린 그림이다.
오늘 밤,
뭉크를 생각했다.
사진에 관한 책을 두 권 연달아 주절거리고 난 뒤,
오래된 영화 두 편을 보고 난 뒤,
뭉크의 굵은 선이 몰아치는 그림들을 생각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영혼을 연구하는 일이다. 나 자신은 영혼의 해부에 사용되는 표본이다."
뭉크가 한 말이다.
사진과 영화를 보고 난 뒤 떠오른 화가 뭉크
자신이 그림안으로 완전히 들어앉은 화가이다.
사진은 나 이외의 것에서 나를 접목시켜내는 것이라면
그림은 그 안으로 들어간다.
특히 뭉크의 그림에는 뭉크 자신이 등장한다.
내가 이 안에 있단 말이다.
너와 닮은 내가 이 곳에서 속을 열어둔 채 있으니, 너 자신을 보고 싶으면 나의 그림을 보라한다.
뭉크가 1889년에 파리로 와서 화가로서 지원을 받기 시작한다.
행복한 화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그 당시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카를 요한의 봄날'을 그린다.
그 사이 많은 전시회와 화가로서의 인기도 누린다.
정신질환자.
그들은 어쩌면 자신의 얼굴에 씌워진 가면의 두께가 얇은 사람들이지 싶다.
그는 카를 요한의 봄날 같은 그림을 연이어 그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표본으로 삼아 영혼을 연구하겠다 했다,
불안한 인간의 영혼을 연구하겠다 했다.
솔직한 자신의 눈으로 본 카를 요한의 거리는 파스텔톤의 온화한 거리
-두 등을 돌리고 눈을 맞추기를 거부하는 따뜻한 거리- 아니다.
솔직한 모습으로 눈을 맞춘 거리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창백한 사람들인 것이다.
"더 이상 실내에서 책이나 읽고 뜨게질이나 하는 사람들은 그리지 않겠다.
......
차라리 숨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그리겠다."
인간은 고통속에 있을 때 인간임을 느끼게 된다.
뭉크의 그림을 보면 내가 인간임을 느끼게 된다.
딱 인간임을 ....
나도 인간임을....
아름다움에 지친,
따스한 이야기에 지친,
일요일 밤 나는 뭉크 스스로가 재물이 된 그림들을 보면서 아야! 하고
정신을 차린다.
난 고통속에 질척거리는 것이 당연한 인간이다.
흐음!
고통속에서 인간임을 느끼는 인간의 전범이다.
평화에 지친 일요일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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