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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사진작가신미식님의 머문자리

by 발비(發飛) 2006. 2. 4.

http://blog.naver.com/sapawind.do

 

'구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고흐'를 좋아하지만, 고흐는 이 세상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요.

'구름'이며 저에게는 '강남제비'이신 그 분이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사시는 분이라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사진을 보기 위해 찾은 그 분의 전시회에서 싸인을 받느라 뵈었지만,

혼자서 뵌 것이지 그것을 만남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더랬습니다.

 

신미식 사진작가님께서 살고 계시는 양평의 '머문자리'를 다녀왔습니다.

그리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항상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그냥 꿈꿀 수있는 낯섬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그 분의 사진을 좀 더 가까이 느끼기위해 그 분을 만나뵈러 가야 하는 건지 고민했습니다.

전 부딪혀보기로 하고 '머문자리'를 가 보기로 했습니다.

 

'머문자리'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네이버 신미식님의 블로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맨 위)

전 그저 제 맘에 머무는 것들로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머문자리'에 받은 첫 선물은 '소리'였습니다.

 

그 곳은 목조건물입니다.

LP컨테이너에서 연주되는 음악소리가 나무결 사이사이로 스며들어 나무 결안에서 휘감고 노닐다가 또 나무틈새로 빠져나와 소리로 내 귀에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는 것일텐데, 음악소리는 사방에서 이리저리 흘러들어왔습니다.

일층의 스피커와 이층의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가 나무들 틈으로 스몄다가

또 나무 틈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울렸습니다.

작고 가는 소리들이 만나 스피커 이후에 다시 연주되는 그런 음악소리를 들었습니다.

'머문자리'교향악단의 편곡이 가미된 새로운 음악소리.

 

소리는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 사이로 울리면서 진동이 같이 느껴집니다.

파장이 큰 소리, 작은 소리에 따라 발끝 손끝으로 전해지는 진동,

몸으로 소리를 듣을 수 있다는 것.

책상위에 손을 얹어도 소리는 움직이고, 신발을 신은 발끝에서도 소리는 움직이고,

회벽에 손을 갖다 두어도 소리는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머문자리' 들어서자 받은 첫 선물은 듣고 만질 수 있는 소리였습니다.

 

 

일층의 한 벽은 신미식작가님께서 찍은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있었습니다.

그 옆에 '머문자리'를 방문하신 분들의 명함이 또 빼곡히...

전 제가 만든 빨간 명함을 기둥 붙여두었습니다.

뭐 그리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머문자리'에선 스스로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즐기고 싶었습니다.

 

나무기둥, 빨간 명함, 파란 압핀,

 

이미 사진으로 너무 익숙해진 '머문자리'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욕심을 내어서 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세상인 것은 알지만,

욕심이라고 말하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보다는 욕심을 내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곳에 뭔가 남긴다는 것.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거기 남겨놓고 온 자신에게 주문같은 것입니다.

 

만약 고흐가 살아있고, 그 분의 집을 방문했고 그 분의 집에는 명함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난 아주 작은 존재이지만, 그 곳에 명함 한 장을 붙임으로 좀 더 근접한 존재가 되고,

근접한 존재로서 스스로 책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살다 힘이 들면, 내가 붙여놓은 빨간 명함을 생각하면서,

나의 천진할 수 있는 본심을 생각하고, 본심이 다치지 않도록 다시 길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몸을 추스리는 기준은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내가 머물 세상을 다시 만들어 갑니다.

 

전 그 곳에 빨간 명함을 붙였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명함을 기억하며,

스스로 원했던 삶의 진정성을 생각하는 표지로 생각할 것입니다.

 

 

 

주물난로에는 참나무 장작이 타고 있습니다.

고구마도 떡도 냄새를 폴폴 풍기면 지글지글...

서툰 만남이지만,

그래서 몸을 사리며 눈치만 슬슬 보게 되지만 한 번 내어주기 시작하면,

불이 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참나무가 타고 있는 주물 난로가 머문자리의 일층에 있습니다.

참나무 타는 냄새가 고구마 냄새 떡냄새에 배경이 되었습니다.

 

주가 되고 부가 되는 것.

주물난로의 쓰임새는 난방입니다.

주물난로가 쓰이고 있는 것은 난방과 직화구이용입니다.

주물난로가 미치는 것은 난방과 직화구이와 난로를 둘러싼 만남입니다.

그래서 주물난로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만들어주고, 뭔가 먹을 거리를 마련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지를 머무르게 하는 공간입니다.

 

난로을 마주 하고 서 있으면서 세상에 대한 '역할'을 떠올렸습니다.

원래 어떤 물건의 만들어진 주요한 쓰임새로 그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중요한 쓰임이 아니더라도

배고픈 이에게 군고구마를 주기도 하고,

사람이 그리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주가 아닌 것,

나를 다 태워버리고 세상에 남겨지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그건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문제입니다.

 

지금의 삶이 끝이 아니라고 믿기에

남김없이 소진시키고 태워없애고 가야 할 것이라는 좀 먼 생각을 하였습니다.

난로에서 타고있는 참나무 불길을 보면서 '쓰임'에 생각을 했었습니다.

 

 

낡은 영사기,

돌아가지 않겠지요. 상영되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빈 영사기를 손가락으로 뱅뱅 돌려보았습니다.

혼자서 뱅뱅 돌아갑니다.

원래의 온전한 것이라면 두 동그라미가 마주 돌면서 넘어간 필름은 감고,

감긴 필름은 영상이 되겠지요.

뱅뱅 돌아도 돌아도 상영되지 않는 빈영사기를 돌리며, 차라리 나의 삶을 돌려보았습니다.

한쪽만으로 돌아가는 삶

헛바퀴를 돌고 있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삶

 

누구는 무의미한 생활이다.

누구는 이득이 남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누구는 무책임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세상과 마주 돌아야 남는 삶입니다.

마주 도는 삶, 저 끊어진 영사기처럼 마주 도는 삶을 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머문자리' 이층 계단을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돌지 않는 영사기가 반가웠습니다.

한참을 그 옆에 앉아 뱅뱅 돌리면서, 좋았습니다.

 

반갑고 좋은 것이 영사기 뿐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나처럼 헛바퀴를 도는 삶이 많을 것입니다.

헛바퀴,

그건 그저 세상의 主들이 아니 세상의  主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의 내린 것이라고 치고

헛바퀴 도는 이들이 한데 모여 사는 삶.

내가 빈 영사기 앞에서 잠시 좋았던 것처럼 헛바퀴 도는 틈에 끼어 있으면

헛바퀴처럼 가벼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담에도 '머문자리'를 방문하게 된다면,

헛바퀴도는 영사기 옆에서 뱅뱅 돌리면서 잠시 좋은 세상에 있을 것입니다.

 

 

밤 늦게까지 머문자리 이층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미 몇 번 본 것이지만( 아마 맘대로 보는 영화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개의 cd중 저는 '피아니스트'를 골랐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멋진 풍경, 그 옆에서 '녹턴'을 듣고 싶었습니다.

 

-잠시 딴 소리-

 

'녹턴'

언젠가 주절거렸듯, 봉화 밤나무길 신부님의 성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적에

들을 수 있는 것은 나의 숨소리 밖에 없었을 적에

그렇게 지낸지 열흘쯤 지났을 적에

캄캄한 밤이었을텐데, 나의 숨소리외에 다른 어떤 것이라도 듣고 싶었습니다.

티비도 라이오도 사람도 없는 곳에서

전 핸드폰을 열었습니다.

물론 터지지 않는 곳이었지요.

벨소리에서 '녹턴'을 켰습니다.

아마 밧데리가 다 닳을 때까지 난 핸드폰의 폴더를 열어놓고 그 음을 즐겼습니다.

저에게 녹턴은 위로같은 것입니다.

 

-잠시 딴 소리 끝-

 

영화 이야기는 여기서 하는 것이 아닌데...

영화로 옮겨야 겠습니다.

 

아무튼...

어쨌든...

밤 늦도록 영화를 보고,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양수리 물결 위로 떠오르는 그림자를 흐린 창 건너 보았습니다.

 

흐음~

휴우~

 

온갖 종류의 숨을 쉬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잔잔하고 평화로움을 내 속에 들어앉히기 위해서.

한참을 머문자리 이층 창에 앉아있었습니다.

 

몇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후루룩.... 원성스님이 어머님과 인도여행을 한 책(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네요.짧았는데,바보)

후루룩2.... 여행에 미친 어떤 이쁜 여자분의 여행기(제목은 역시,, 길었는데)

후루룩3.... 프랑스 사진작가의 사진집 (.....)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헤밍웨이, 파리에서 보낸 7년'

이 책은 후루룩4를 하기에는 너무 컸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읽었습니다.

 -이것도 나중에 활자와 캔퍼스에 올리겠습니다.

  이 책이 재미있다고 신미식님께 말씀드렸더니, 머문자리에 와서 이 책 읽는 사람은 첨 봤다면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려고 했는데....  좋았지요. 멋진 기념품!

 

창가 푹신한 소파에 앉아 태양광선 아래 책을 읽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마치 프랑스의 어느 귀족이 된 듯한 기분으로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책을 올려두고..

좋더라.

 

 

일행은 아니었지만, 그 곳을 방문했던 분들과 돌아갈 작정이었습니다.

맘이 변했습니다.

밤에 남덕유산 종주를 할 계획이었지만, 최대한 이 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늘이고 싶었고

즐기고 싶었습니다.

한 무리가 떠나고, 마침 남은 한 분이 계셨고, 그 분은 신미식작가님과 잔 일들을 하셨습니다.

평화로워진 '머문자리'

 

난 한가해진 머문자리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더욱 코드가 맞아졌습니다.

마당에 나가 이 곳 저 곳을 살핍니다.

크게 찍지 않았습니다. 머문자리님의 네이버 블로그에 가면 참 많은 풍경사진이 있습니다.

 

애지?

방금 검색에서 찾으니, 지선애자랍니다.

유리컵처럼 전봇대 위에 얹혀진 애자가 햇빛에 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요즘 전봇대에는 하얀 도자기 애자들이 대부분인데,

'머문자리'의 애자는 투명라고 좀 두꺼운 것이 보드카잔 같습니다.

신미식작가님이 어느 곳에서 얼마를 주고 사오셨답니다.

세상 모든 것에 촉수를 열어놓고 있는 사진작가는 행복할까 아니면 반대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했더랬습니다.

어떤 사물에서든 덤덤히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 세상이 그리 대수롭지 않는 것 그런 평화의 모습도 있을텐데.....

세상 모든 것을 지나칠 수 없는 것,

처음에는 발견의 기쁨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짐이 되기도 할텐데...

'머문자리'의 애자를 보면서 누구에게든 아름다움이 짐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맑은 빛을 한 애자를 가진 전봇대를 발견하고 느꼈을 기쁨의 수위를 항상 갖고 살아가시길..

 

 

도끼 머리의 나무에 못이 세개 박혀있었습니다.

나무는 몸이 다 마르기도 전에 도끼 자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축축한 나무가 무거운 도끼와 함께 축축한 나무를 패었을 것입니다.

난로에 들어가 빨갛게 타들어갈 나무를 나무자루가 찍어냈을 것입니다.

시름시름 말라갔을 것입니다.

도끼 자루의 몸이 말라가면서 도끼는 한 방에 나무를 잘라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무자루에 못 세개가 박히고서야 나무자루는 무심히 나무를 팰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머문자리 신미식작가님의 가족입니다.

 

페루여행중에 새끼를 낳았다고 한 것 같은데... 저래뵈도 작은 님은 새끼고 큰 님은 어미랍니다.

이 시간 전에 산책을 다녀왔거든요.

운동 후엔 꼭 잔답니다.

 

나도 엄마 옆에서 저렇게 자고 싶다. 지금은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나도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

 

왼쪽 아래를 보세요.

장군이의 밥그릇에 누가 와 있는지... 참새가 장군이의 밥그릇에 와서 장군이의 밥을 먹습니다.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닙니다.

잠자기를 기다렸다가 나타난 참새.

 

 

신작가님!

안에 계시다가 모녀인지, 모자인지.. 아무튼 그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시곤,

마치 어린 아이 자는 모습을 찍는 듯이 몰래 뒷문으로 돌아나가 사진을 찍으십니다.

그들, 알기나 하듯 포즈를 이리저리 바꿉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하기전에 사물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그 분의 말씀이 생각났지요.

"감동 받기 전에는 셧터를 누르지 마라."는 그 분의 말씀이 생각났지요.

 

처음 머문자리를 방문하려고 했을 때 좀 망설였습니다.

꿈 혹은 환상이 깨어질까봐, 사람에 대해서는 유난히 자신이 없는 ......

처음에는 좀 놀랐지만, 벙어리가 아니어서

 

그렇지만, 진정성!

 

그저 누구나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인간의 수위가 낮건 높건, 천박하던 고상하던간에 그것은 타고난 천성에 맡깁니다.

 

그저 천성의 진정성을 가지고 산다면,

낮은 물에서는 물장난을 치고, 깊은 물에서는 배를 타고

천박한 사람과는 와이담을 하고, 고상한 사람과는 클래식을 즐기고...

그런 진정성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저 저의 몫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 머문자리 견문록입니다.

몫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미식작가님께 감사했습니다. 꿈과 현실이 그리 멀지 않음을 보여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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