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호의 "문장" 1. 2권을 샀다.
(담에...전체를 ...)
짧은 글들이 좋은 것은 자유로움이다.
어디서건 읽던 곳을 찾지 않아도 손가락이 갈라주는대로 그대로 거기부터 읽으면 된다.
그래서 읽었던 곳을 다시 읽기도 하고, 며칠을 읽었음에도 처음 읽게 되는 낯선 곳도 나타나고
시집이나, 단상을 적은 짧은 글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입은 하나의 의상입니다. 자연은 신의 의상이며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은 신이 의상을 갈아입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상, 제도, 이데올로기 등은 의상에 붙어 있는 단추처럼 있지도 않은 가상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최인호의 "문장 2" 101쪽, 칼라일의 "의상철학"에서
-잠시 딴 소리-
키위소주-호! 맛있습니다. 색깔은 더 맛있었습니다.
과즙이 유리잔 안에서 가라앉으면 흔들어 가면서 유리잔을 흔들어가면서 마셨습니다.
복숭아소주- 오판! 한 번 더 생각하기...
지금은 복숭아가 나오는 계절이 아닌 것을,
복숭아는 보관하지 못하는 과일인 것을 한 잔을 마시고야 꽂혔습니다.
아마 복숭아 통조림을 갈아놓은 듯.
포도주- 스페인산 ***포도주, 17도라는데 포도주가 아주 굿이었다.
목넘김 이후의 입 안 가득한 향 혹은 여운 딱 한 잔 마셨습니다.
막걸리- 산행을 하지 않은지 꽤 되어 막걸리를 마신지 또한 꽤 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마시는 패트병 막걸리는 처음입니다.
패트병 막걸리는 따는 법이 참 재미있더군요.
청하-
원래 제 전공주종입니다. 부드러움, 달달한 맛.... 뭐 그런겁니다.익숙한 것을 할 말이 없습니다.
주종이 참도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어제는 ... 그러니 지금 제 속이 제 속이 아닙니다.
그럼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그러시겠지요.
이 여자 완전 술꾼아니야?
족보있는 술꾼입니다.
멋진 아버지를 둔 덕분입니다.
"너 또 술 마셨구나? " -아버지
"아버지도 한 잔 하셨네요."- 나
"참 희한하다. 어쩜 부녀가 꼭 같은 날 술을 마시니? "-엄마
우린 코드가 맞는 부녀입니다. 엄마? 딱 한 잔 마시면 기절입니다.
전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여러 DNA 중 알코올에 관해서는 아버지의 DNA에 낙점된 것은 행운입니다.
-잠시 딴 소리 끝-
속이 말이 아닌 날, 그리고 오늘 저녁차로 부모님께로 가는 날, 그 전철 안에서
"에고 머리 아파"
그러면서도 멍청하게 있기가 싫다.
오랜만에 집으로 가는 날은 그득한 맘이 싶다.
선물꾸러미가 아니라, 지난 번 집에 갔을 때보다는 좀 더 채워진 모습이고 싶다.
집으로 간다는 것은 비우고도 가야하지만,
내가 내 안에 차곡히 쟁여둔 곳을 내려놓고도 오는 거니까,
객지에다 널부러져 있는 것들을
내가 처음 왔던 엄마네 창고에다 차곡히 쟁여두고 오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한 줄을 읽던 아니면 한 글자를 읽던 뭐 그런 급한 맘이 생겼다.
그리고 손가락을 가른 곳에 칼라일의 '의상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의 육체는 영혼이 입은 하나의 의상입니다. 자연은 신의 의상이며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은 신이 의상을 갈아입은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상, 제도, 이데올로기 등은 의상에 붙어 있는 단추처럼 있지도 않은 가상존재에 불과한 것입니다."
자연은 신의 옷이다.
육체는 인간의 옷이다.
계절이 바뀌고 자연현상이 바뀌는 것은 신이 옷을 갈아입는것이다.
인간도 자연안에 들어간다.
신의 옷중에 한 조각 인간이 또 옷을 입고 있다.
옷을 입고 거기에다 각종 장치를 만든다.
옷보다 더 큰 장치들이 옷에 매달려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옷이 무거우니까, 그럼 인간의 영혼이 무거워진다.
인간이 무거워지면 인간이라는 자연을 입은 신도 무겁다.
어느날 너무 무거우면 신이 옷을 벗을 수도 있다.
신이 인간이라는 옷을 벗어버리면,,,어쩌지?
가는 바람에도 산들거리는 얇은 옷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이 가장 밀접할 수 있도록 얇은 옷을 입어야 한다.
얇은 옷에는 아주 작은 단추하나면 충분하다.
그런데 우린 이미 너무 많은 단추를 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겁지. 그 무거움은 걸음을 걸을 때나 타인을 만날 때나 놀 때나.. 항상 움직임을 둔하게 만든다.
다시 술
어제 술을 마셨다.
낯선 이들 그것도 많은 낯선 이들, 그리고 익숙한 이들. 그리고 좋은 이들
그런 이들을 만남이 있던 자리에 난 무지 많은 단추를 단 옷을 입고 갔었다면,
타인이라는 자연이 내 피부에 닿을 수 있었을까?
내 무게를 감당하느라 아마 내 옷만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약간의 알코올기운이 있는 상태에서 그런 이들과의 대면은 단추 몇 개쯤은 떨어뜨린 것이 되었고,
좀 더 추가된 알코올은 또 단추 몇 개를 떨어뜨렸고,,,
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난 단추가 달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그래 자연스러움... 단추를 달지 않은 그냥 내 영혼에 육체라는 옷만 입고 있었다.
그럼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그랬다.
때로 인간은 가볍게 달리고 싶고, 날고 싶다.
단추를 다 떼어내면 혹 날 수도 있다.
그때 하는 일이 알코올을 마시는 일일것이다.
어느 분의 말처럼 알코올이 아니라 명상수련을 해서 나를 버리고 비우면 가벼워지겠지만,
아직은 용기가 없는 못난이.
단추들을 우주 어디에 버리는 것은 좀 무섭고,
언젠가는 필요할 듯 하여 단추통에 모셔두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 명상수련은 좀 겁난다. 단추를 찾으로 우주로 날아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
알코올은 단추를 떼어냈다가.
알코올이 해독되고 나면 단추를 다시 달았다가... 인간이니까...
신은 인간의 이 단추변덕을 크게 무리 하지 않는 한 봐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속이 말이 아닌 날...
아직 어제 흘려놓은 단추를 다 줍지 않아 좀 가벼운 날이기도 하다.
하나쯤은 줍지 말고 모른 척 빠트리고 주워야겠다.
토마스 칼라일(1795~1881)역사학자. 비평가
또 다른 말
-인생은 항해하는 선박-
95%에 달하는 사람은 조타기가 없는 선박과 같다.
'언젠가는 풍요로운 항구에 도달하겠지'라는 막연하고 달콤한 희망만을 갖고,
바람과 조류가 흐르는대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조타기가 없는 사람이 일생동안 항해하는 거리 이상을 단 2~3일만에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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