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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뭉크] 베르겐의 자화상

by 발비(發飛) 2006. 1. 17.

 

 

에드바르드 뭉크 -베르겐의 자화상

 

그의 이야기

 

그저 참 꿀꿀한 날이었다. 어쩔수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이 보인다.

그는 그의 자식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이며...

버스는 택시보다 크고 택시는 버스보다 빠르며...

뭐 세상이 다 보인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는 후지고, 중국보다는 좀 낫고,

프라하는 이탈리아보다는 좀 춥고 이탈리아는 프라하보다는 더 이쁘다.

모짜르트는 베토벤보다는 더 역동적이고 베토벤은 모짜르트보다는 평화롭다.

LP는 CD보다는 낭만적이고 CD는 LP보다는 편하다.

옆집 주인은 오늘도 돈을 걷으러 가는구나. 걸음걸이에서 보인다.

뭐 그런 그가 봐야 할 세상은 다 보인다.

그저 오늘은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꿀꿀한 날이다.

다 보이는 세상안에서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화가 난다.

뻔한 일이다. 그의 외로움은 뻔한 일이다.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앞으로 만날 사람같지가 않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무슨 일 있으세요' 라고만 묻는다. 왜 그녀에게 전화를 했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는 그저 외로워서 전화를 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럼 저랑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한다.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손으로 술을 마시면서...

말을 하기를 좋아하지 않은 그인데, 의지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인데

그저 외로운 느낌이 드는 것이 꿀꿀해서 말을 시작한다.

말을 해도 해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집으로 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녀는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의 집으로 갔고, 술을 마셨고, 이야기를 했고 쓰러져 잤다.

그녀는 왜 왔느냐고도 묻지 않았고, 그는 왜 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잠에서 깨면 술을 마시고, 술이 마셔서 취하면 잠을 잤다.

그는 잠을 참 많이 자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잤다.

그와 그녀가 한 말이라고는 앞으로 꼭 10년 뒤까지 살아있자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그 사이에 영원히 자고 싶어지면, 그녀에게 오라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꼭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밤이나 자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기억 속에 없었던 일이다.

그가 창가에 앉았을 때 잘 아는 세상의 색이 좀 환해지고 선명하게 그의 등 뒤에 있다.

거울에 비치는 그의 얼굴이 그의 등 뒤에 보이는 세상보다 어둡다는 것을 그는 처음 보았다.

 

 

 

 

 

에드바르드 뭉크 -다리 위에 선 소녀들-

그녀의 이야기

 

그냥 집에 있었다.

일을 하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그녀는 참 편하다.

그녀는 세상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항상 생각한다.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뚫어져라 봐도 세상은 항상 보이지 않는다.

길을 아는데도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다.

그녀는 집에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

집은 어떤 것도 낯설지 않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은 너무 피곤한 일이라며 긴 숨을 쉬면서도,

사람들 사이에 남아있을 걸 괜히 빠져나왔나 하는 미련이 남는 것이 좀 꿀꿀했다.

그런 꿀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그녀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런 것은 묻지도 않았다.

안녕하냐고 물어서 안녕하다고 했고,

어디냐고 물어서 집이라고 했고,

외롭다고 말해서 그럼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그녀는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을 때 말을 하지 못하면,

석회석처럼 굳어 가슴 속에 남는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단지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처럼 가슴 속에 석회석을 쌓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건 참 무거운 일이다.

그와는 다섯 번도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지만, 전화로는 그 백배만큼의 말을 했다.

그는 그녀의 집으로 가도 되냐고 했다.

그녀는 그저 그러라고 했다.

그가 왔다.

그녀와 그는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한 그는 계속 욕만 했다. 욕을 하러 온 그였다.

욕만 하던 그는 잠을 잤고 또 자고 ...또 자고 참 많이 잤다.

그가 잘 때면 그녀도 잤다. 아주 오랜 시간 잠을 잤다.

그는 참  잘 잤다고 말했고, 그녀도 그에게 자신도 참 잘 잤다고 말했다.

그는 잠을 잘 자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고 그녀도 그에게 잠을 잘 자게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그에게 혹시 다음에도 다시는 깨지 못할 만큼 잠이 오면 와서 자도 좋다고 말했다.

다시 오면 영원히 자지 않도록 그 때는 그녀가 깨워줄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다시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그녀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갔고 친구들을 만났다.

그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 기억 속에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처음 알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강물은 전보다 더 짙게 흐른다.

괜히 그녀에게만 해가 비추는 듯 눈이 부시고 세상은 너무 환하다.

눈부신 날이 거슬려서 그녀는 친구들을 두고 집으로 갈 궁리를 하며 서 있었다.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 중 유난히 닮은 표정의 남녀를 발견했다.

한 그림은 뭉크 자신의 자화상이고 하나는 소녀의 그림이다.

뭉크는 저 그림을 그릴 당시 50살이 넘었다고 했다.

그런 뭉크 자신의 모습과 소녀의 표정이 비슷하다니...

그건 뭉크 자신이 아직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체화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

 

뭉크 뒤로 보이는 베르겐 시가지 모습이나 사람들은 밝고 활기찬 데 자신만이 컴컴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

 

소녀는 어떤가?

다른 친구소녀들은 다리 아래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며 재잘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혼자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무슨 생각에 빠져있다.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나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선천성 외로움. 선천성 고독을 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세상을 다 알며, 세상 속에 살면서도 영원히 세상과는 유리막을 두르고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뭉크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며,

뭉크가 그린 저 소녀도 자신과 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서로를 아는 것은 오랜 시간이야기를 나눈다고 더 알게 되는 것도

앞으로 오랜 시간을 나눈다고 더 알아지는 것도

영원히 함께 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아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같은 부류는 그저 같은 부류인 것이다.

간혹 같은 부류의 인간을 만나면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면 되는 것이다.

더도 덜도 없이 그러면 되는 것이다.

 

뭉크는 저 소녀에게 그림을 보여주면서 소녀의 어깨를 두드렸을 것이며,

어린 소녀는 뭉크에게 웃어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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