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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映畵

[영화] 텐미니츠 첼로

by 발비(發飛) 2006. 1. 16.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클레르드니, 마이크 피기스, 장 뤽 고다르, 지리 멘젤, 마이클 래드

포드, 폴커 슐렌도르프, 이스트반 자보. (감독을 쓴 이유: 단지 기록)

 

이번에도 입을 떼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텐미니츠 첼로'와 '텐미니츠 트럼펫'을 보았었다.

일기장을 찾아보아도 봤다는 말만 있지. 아무런 말도 없다.

역시 어제 이 영화를 보았지만, 난 봤다는 이야기만 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그랬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면서 장면들만 떠오르는 것.

어떤 상황에서 이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것.

사실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본 것도 어제의 상황에서 이 영화의 장면이 몇 번이나 중복되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도대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마치 엄마의 바느질함속에 들어있는 조각보처럼 너덜거리는 작은 조각이지만,

한 벌의 옷이되고, 커다란 이불이 되고,

가지고 싶었던 꽃무늬 새 옷감으로 보이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했었다.

 

다시 본 텐미니츠 첼로' 하지만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쳐다보고 있는...느낌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는 물리책이나 화학책의 기호들을 보는 느낌. 그렇게 보았다.

또 그렇게 한 편을 다 보았다.

 

가끔 딴 짓을 해가면서,...

가끔 거울에 내 얼굴의 티를 털어가면서,

몇 코 뜨다만 대바늘뜨기도 하면서,

동전을 세면서, 달력을 보면서...

영화는 끝이 났고, 난 이 영화를 세번째 본 것이다.

 

아침 출근길,

전철을 타려고 철로 앞 올록볼록한 안전선 위에 발을 놓고 있었다.

전철이 들어온다.

올록볼록한 노란 안전선으로 떨림이 전해왔다.

저 멀리서 누군가를 잔뜩 태우고 오는 시간이 내게로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시간들이 순식간에 내 발을 통해 들어온다는 느낌이었다.

 

10분이 아니라,

1.2분 사이로 수 백 수 천 시간이 될 시간상자가 내게로 오고 있다는 그런 생각.

그와 동시에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났다.

영화의 감독이 누군인지 배우가 누구인지 그런 것은 나에게 관심 밖이다.

그저 또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탈리아로 노동이민을 간 인도남자의 찰나(刹那)이면서 한 생(生)인 시간

행복한 여자의 전형인 삶이 단 10분만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죽게 한 시간

수 백억 이방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기차 안에서의 철학자와의 대화시간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시간

우주여행을 하고 온 뒤, 아들은 90살이 되고 자신에게는 10분간의 시간만 지난 우주인의 시간

 

우리에게 시간이란?

10분이라는 시간과 10분 이상의 시간

혹 순간이라는 것과 영원이라는 시간

내 삶 전체라는 것과 지금 현재의 내가 선 시간

우리에게 시간이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으면서 시간이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에게서 시간

나무에게서의 시간

풀에게서의 시간

파리에게서의 시간

거북이에게서의 시간

 

토요일 일요일을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뭐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금과는 너무 다른 시간을 보냈다.

마치 첫번째 이야기의 인도남자처럼 순간이면서 영원인 듯한 그런 시간을 보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그것은 내가 책속에서 살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실타래를 바늘로 엮어가는 뜨게질 때문일 수 있고,

무엇이라도 먹기 위해 내가 털었던 동전저금통에서 수없이 많은 그걸 세었던 긴 시간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지금 사무실에서 엑셀파일을 열다가, 대차대조표의 숫자를 보다가...

다시 이 곳에서 뭔가 두드려야 할 것 같은 다른 종류의 시간의 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옆 바탕이미지로 있는 벽돌위의 풀들

신미식작가가 캄보디아에서 찍었다는 저 사진이 또 시간임을..

시간의 모순을 보여준다. 눈이 간다...그렇게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아침이다.

뭔지 알 수 없지만,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그저 내가 어떤 영화를 세번이나 보았는데 내가 살았던 어느 날에 그랬었는데,

그때 중구난방(衆口難防)

으로 내 시간들이 쏟아져 나왔다가 사라졌다가...

남의 시간이 내게 들어왔다가 나왔다가... 그런 날이 있다.

 

내게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중에는 상자 속에 담겨 꽁꽁 묶여진 시간도 있으며

열어놓고 사방으로 날아 다녔으면 하는 시간도 있으며

지금도 시간을 종류별로 모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에 대한 떠오르는 온갖 것들을 두드려본다.

내 속의 시간이 이 영화의 여러감독이 보는 그 시간과 비교한다거나 찾는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내게 우연히 시간이라는 단어를 문득 떠오르게 만든 시간에 대한 나의 성실한 반응을 통해

내가 보낸 시간과 내게 보내야 할 시간,

그리고 담아놓을 시간과 흘러보내야 하는 시간.

시간의 서럽정리!

난 이 영화를 통해서 마구 흐트러진 나의 시간 서랍을 좀은 정리한다.

그것으로 무심히 본 영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던 영화, 또 언젠가 찾을 것 같은 영화

그리고 정리된 말을 할 수 있을 즈음의 내 삶이 가진 환경.

그런 것들에 대한 기대 혹은 희망을 가지며, 나에게 다시 온 이 영화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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