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
이 그림을 올린 것은 아마도 어제 아침.
하룻동안 이 그림을 틈틈이 보았다.
모딜리아니. 길쭉하게 기운 얼굴을 그리는 잘 생긴 화가,
그의 그림이 어제 아침 내게 왔다.
처음 내게 온 그림은 '젊은 하녀'
그 하녀를 따라 그녀와 어울리는 같이 두고 싶은 그림을 찾았다.
"첼로 연주하는 사람"
"나부"
-잠시 딴 소리-
KT에서 모뎀을 바꾼다고 전화가 왔다. 앞으로 10분뒤에 인터넷선을 끊고 공사를 할 것이란다.
갑자기 일하던 중 모딜리아니 그림이 생각났다.
물론 인터넷은 다시 이어질 것이고, 그림들도 그냥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난 이 그림들에게 말을 하고 싶어진다.
선이 끊기기 전에....
젊은 하녀
어릴 적 큰 집에서 좀 지냈던 것 같다. 아마 나의 최초의 기억쯤이니까 4살 정도 아니면 5살?
정확하지 않다.
어쩌면 더 어렸을 수도... 그 이상은 아니다.
그 이후엔 외가에 있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옛날에는 집에 식모가 있었다. 그렇게 불렀다 식모...
큰집에도 식모가 있었는데 우린 모두 그 식모를 '자야'라고 불렀다.
할아버지, 큰 엄마도 언니들도 나도 그저 '자야' 하고 불렀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몸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자야라고만 기억이 난다.
난 항상 자야랑 놀았던 것 같다.
큰 집은 대구였는데, 기와집이었고, 자갈이 마당에 깔려있었고, 담위에도 기와가 있었던 것 같다.
잘 살았나보다...
그 마당을 걸으며 소리가 났다.자야의 발소리와 나의 발소리가 자갈자갈 났었다.
내가 자야에게서 기억하는 것은 소리들이다.
"자야" 하고 부르던 사람들의 소리
자갈마당을 둘이서 부지런히 다니던 소리(그 마당은 자야와 나만 다녔나?)
그리고 담위에 기와를 밟던 자야의 발소리
그 검은 흙기와의 금속성소리... 내 기억엔
그 기와 밟는 소리가 왜 내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지
아마 오랜 뒤 엄마에게서 들은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자야에게 떼를 썼단다.
담위를 걸어보라고.
자야는 내 말을 듣고 담 위로 올라갔단다.
(아마 몇 살이 안되었나보다, 그런 나의 말을 대로 올라갔던 것을 보면)
그리고 그 위를 걸었겠지.
난 걷고 있는 자야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검은 흙기와의 쇠소리같은 그 소리가 기억날 뿐....
내게 그 소리밖엔.
그리고 난 모른다.
놀란 느낌이 지금 전해지는 듯 하기도 한다. 이건 상상인가?
엄마는 자야가 담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그래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했다.
또 얼마 후 저는 다리로 시집을 갔다고 했다.
아무도 모른단다.
자야가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물어본 적도 없다
"젊은 하녀"를 보면서 난 "자야"가 생각났다.
저런 얼굴이 아니기를 바란다.
저렇게 가여운 얼굴이 아니길,,,
"아주 억척스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입은 걸고, 살은 투실하게 찐, 그리고 힘이 아주 센"
그런 여자이길 바란다.
"자야"가 저 젊은 하녀의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내가 엄청 무서워하는 스타일인 억센 여자이기를 바란다
언젠가 무서워서 말도 붙이지 못한 그런 여자이길 바란다
"자야"가 무서워 다시 본다해도 말도 붙이지 못할 그런 여자이길 바란다.
모딜리아니의 "젊은 하녀"의 모습이 아니길...
제발 아니길....
첼로 연주하는 사람
첼로 소리를 좋아한다.
바이올린 소리보다 비올라 소리보다 첼로의 소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첼로의 크기도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예속될 것 같지도. 지배할 것 같지도 않는 동등한 크기.
난 첼로의 소리와 그 크기를 좋아한다
한 남자가 첼로를 켜고 있다.
첼로를 켜는 남자. 이 남자.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비슷한 소리를 가진 첼로를 켜는 남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첼로가 유일할 것 같은 남자.
이 남자 - 턱시도를 입지 않았다. 나비넥타이도 하지 않았다.
눈은 감았고, 손은 길고도 크다. 손끝으로 갈수록 굵어지는 이 남자의 손에서 내 눈이 멈췄다.
이 남자의 방 - 어둡다, 위로 작은 창 하나가 얼핏 보인다.
벽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듯 얼룩덜룩하다.
그가 앉은 뒤로 침대머리인지 소파의 손잡이인지, 침대머리일 것이라 생각한다.
방은 좁다.
화가의 눈과 그가 가깝다. 아마 두 사람만으로 방이 꽉 찼을 것이다.
이 남자의 첼로- 첼로는 어둡다. 현이 없다.
활 만이 유일하게 밝다. 첼로의 곡선과 이 남자의 얼굴선이 닮았다.
그는 무슨 음악을 연주하고 있을까?
이 부분에서 아쉽다. 내가 참 많은 곡들을 알고 있다면 이 남자가 연주할 것 같은 곡을 상상할 수 있을텐데, 무척 아쉽다. 내가 곡을 모른다는 것이 상상을 막아 버렸다.
궁금하다 무슨 곡이길래
그의 눈은 감겨있고, 손은 무거울까.
이 남자의 마른 얼굴과 마른 몸, 그리고 커다란 손
이 남자 오늘 아침 커피 한 잔 마시지도 못하고 아침을 맞은 얼굴이다.
이 남자에게 설탕 프림 듬뿍 든 커피 한 잔을 타주고 싶다. 하얀 김 오르는 커다란 머그컵에...
생크림 듬뿍 올려진 케익이 있다면 더 좋겠지.
그리고 첼로 한 곡을 더 연주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그가 연주할 곡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곧 연주한다.
그는 눈을 가끔은 뜰 것이고, 손은 좀 작아질 것이다.
현의 가는 떨림이 보일 것이고, 방은 좀 밝아 질것이다.
모딜리아니는 주로 여자를 그렸고, 창녀를 그렸다고 했다.
모딜리아니의 수많은 그림 중에 남자의 그림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그림!
이 남자 절대 안 만나고 싶다
내게 "소개시켜줄까?" 라고 말한다면, "아니! 안 만나고 싶어." 이 남자를 난 거절한다.
나부
혹 이 여자가 그를 지독히도 사랑했던 어린 아내 잔느일까?
어리다
젖내가 폴폴 풍긴다
빨개진 얼굴로 화가를 쳐다보고 있다
"빨리 그리면 안되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그렇게 묻지도 못할 것 같은 여자.
난 이 여자를 보면서 모딜리아니가 미웠다.
다른 여자의 그림보다 이 여자의 그림은 좀 그렇다.
아마 모딜리아니는 입가에 흐린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다.
위의 두 그림을 그릴 때와는 다른 표정이었을 것 같다.
나부여서가 아니라, 무슨 색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뭔가 누를 것을 발견한 정복자의 모습을 일것 같다.
아니 정복자라는 어감은 맞지 않다.
회색빛 정복자의 얼굴?
여자에게서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다. 화가는 여자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여자로 보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자신이 누를 수 있는 존재로 그리고 있는 듯 하다.
정복자가 항상 포만감에 있지는 않다.
왜 나에게 정복당한거니? 왜 나같은 것에게 정복당한거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보지 그래? 그러는 것이 좋지 않겠어?"
이런 어투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하다
누군 누군가에게 약하다.
누군 또 누군가에게 강하다.
누군 한 사람인데, 누군가은 여러사람이다.
이 여자와 모딜리아니의 관계는 거미줄일 것 같다.
얽혀있는 듯, 정연하고, 약한듯 강하고 여린듯 독한 거미줄.
거미줄에 걸린 나비 한마리와 마지막 힘으로 거미줄을 만들고 있는 마약중독자 거미
나도 누군가에게,,, 상대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흔들린다. 저 여자의 몸처럼....
Amedo Modigliani
그는 모딜리아니다
딱 한 장의 자화상을 남긴 일찍 죽은, 많은 그림을 남긴, 뜨거운 사랑을 한 중독자이다.
그를 보면 운명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유한 어린시절, 문화적인 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것이 운명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의 사진과 그의 마지막 그림이자 유일한 자화상이다.
그를 보면 그가 그린 그의 모습을 운명을 생각하며 본다.
그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말하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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