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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映畵

[영화] 토니 타키타니

by 발비(發飛) 2006. 1. 4.

 

 

  

 

요즘 일본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토니 타키타니

남자의 이름이다.

토니라는 이름을 쓰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이름이 그가 속해있던 사회에서 격리되었듯 그도 그렇게 격리되었다.

그는 말한다

"특별히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래 인정한다.내가 영화를 보면서 토니를 따라가보니 그렇더라

분명 특별히 외롭다고 느끼는 것 같지 않았어.

그저 혼자인 것이 자연스러웠어

그래서 사람을 모르지.

체온을 모르지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묘사를 아주 잘 한다.

하지만 해석이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그림이라는 것은 보는 인간에 대한 보인 것에 대한 그린이의 해석일텐데...

그래서 그는 기계 일러스트만 한다.

성공한다

 

혼자

그냥 혼자

언제나 혼자

그저 혼자

 

그런 그에게 바람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난다.

15살이 어리고.. 어쩌고... 이런 것은 사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여자와 결혼을 하고,아내의 쇼핑벽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행복하다.

그러다 아내가 사고로 죽는다

아내를 닮은 여자를 구해 아내의 옷을 입히려 한다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저 혼자서 다시 지낸다.

 

혼자. 그냥 혼자. 언제나 혼자. 그저 혼자

 

아내를 닮은 여자를 다시 생각해낸다.

 

이제 혼자 그냥 혼자 언제나 혼자 그저 혼자가 되지 않나 보다

끝이다

 

 

혼자로 지낸다는 것, 혼자인 것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성과 같은 것이다.

차곡 차곡 혼자라는 벽돌을 쌓아 높이 벽을 만든 성이다

그 안에 들어앉아있으면 조용하다.

그런데 그 성이 무너진다

(영화에선 여자와 결혼을 한다)

 

무너진 채로 세상과 완전히 소통을 하면 그걸 누가 뭐라나?

그런데

그런 사람은 항상 그렇다

성을 차곡 차곡 ... 혼자 지낸다는 것을 특별히 외롭지 않다고 느낄만큼 단단히 쌓았는데

어느 날 딱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잠시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다가 그저 사라져버린다.

(영화에선 아내가 사고로 죽는다)

 

허물어진 성만 다시 남는다.

허물어진 성에는 자신이 처음 혼자가 된 기억들을 하나 하나 햇빛 아래 들추어내고 만다

허물어진 벽돌에서 오랜 시간의 일들이 다 들추어진다.

성안에 들어앉았을때보다 더 아프다

주체할 수 없어진다.

다시 그것들을 덮고 묻어야 한다

그리고 또 긴 시간 동안 벽돌을 쌓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천막을 가지고 와서 좀 덮어달라고...

(영화에선 아내를 닮은 여자를 찾는다)

 

하지만 천막으로 가린 성에는 바람이 들어친다. 몸이 바람을 이길 수 없다

천막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 벽돌을 쌓아가야 한다.

벽돌을 쌓기 시작한다.

혼자 혼자 혼자를 포개어 벽돌을 쌓는다

한단 두단 세단 단을 높이 높이 쌓아가면서 세차던 바람이 어느 정도는 막아진다.

이제 다시 익숙해진다.

쭈그리고 몸을 말고 있으면 바람을 피할 수도 있다.

온 몸을 말고 그 안에 있다

( 영화에선 드레스룸에서 아내의 옷을 치우고, 아버지의 LP판을 치우고 거기에 누웠다)

 

하지만 바깥 세상을, 사람을 구경하고 난 뒤...

인간은 메모리가 가능한 동물이다.

발돋움을 해서 혼자벽돌위를 내다보게 된다

누구를 쌓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바람냄새를 맡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경험했던 온기를 찾아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영화에선 아내와 싸이즈가 같은 여자에게 전화를 한다)

 

성 바깥은 이제 그를 잊는다

그는 언제나처럼 성안에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메모리되었다.

그 안에서 그가 메모리를 지우지 못한 채 혼자 벽돌을 쌓고 있다.

(영화에선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한다)

 

천천히 움직이는 영화였다.

하늘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다

주인공 남자의 미세한 연기가 햇빛 아래 꽃잎처럼 그 결이 잘 보였다

그의 성은 단단하지만 영화에서 그의 집은 유리벽으로 만들어져 있다

 

슬픈 영화라고 볼 수 없다.

아픈 영화라고도 볼 수 없다.

그럼 이 영화는 뭐지?

그냥 마른 눈물이 좀 나는 ... 결국은 눈물이 나지 않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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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40분간의 텀을 두고 이터널 선샤인 이라는 영화를 봐야했다.

황인숙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를 읽었다.

고독이라는 주제를 가진 영화를 본 뒤에 읽는 시집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 분의 시가 고독한 인간을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는내내 슬프지 않았는데, 아픈 것도 아니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아파오는 것이다.

마치 사고를 당한 뒤 하룻밤을 자고 나면 여기저기 쑤시듯이 아파오는 것이다

가슴이 뽀개져 왔다.

 

이 시집에 있던 긴 시 하나를 옮긴다.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황인숙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 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동굴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나는 툇마루에 졸지 않으리라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가시덤풀 속을 누벼누벼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배가 고프면 살금살금

참새떼를 덮치리라.

그들은 놀라 후닥닥 달아나겠지

아하하하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 발로 툭 건드려

놀래주기만 하리라

그리고 곧장 내달아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는 훈훈하겠지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겠지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나는 꿈을 꾸리라.

놓친 참새를 쫓아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

 

이 시는 마치 '토니 타키타니'가 읊는 듯 싶을 정도였다.

비바람앞에 치더라도 다시 태어나면 들판에 있고 싶단다. 담을 쌓지 않을거란다.

지금은 이 생에서는 길들여진 자신을 어쩌지 못하므로,,, 담에는 그러고 싶단다.

이 시를 읽으면서 많이 아팠다.

참 많이 아프더라,,,,분명 아깐 그 남자가 아프지 않았는데, 고양이를 생각하니 많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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