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하고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극장을 나오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가늘고도 하얀 눈이 적당한 바람에 날린다. 적당하다는 것은 약간 간지러운 정도....
따뜻한 눈이다.
살살 녹는 눈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맘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시사회를 본 것이므로 내년에 개봉을 한단다. 강추다. 별 다섯개)
요즘 영화가 그래 저래 사람 김을 빠지게 하더니, 반전이다.
핀이다.
왜소증이다. 흔히 난장이라고 하지.
당연 세상과는 소통을 하지 않은 채 맘에 문을 닫고 친구인 헨리와 장난감 기차를 조립하는 일을 한다. 갑자기 헨리가 죽었고, 헨리는 뉴저지에 있는 작은 역을 유산으로 핀에게 남겼다.
도시에서 핀은 친구도 소통할 대상도 없었으므로 헨리가 남겨준 작은 역으로 떠난다.
핀은 말하지 않는다. 혼자만 있는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에게 상처이니까...
그렇게 혼자인 게 편해보인다.
정지한 삶
그 역사 옆에는 핫도그트럭이 있다.
조는 활발한 청년, 아버지가 아파서 대신 핫도그트럭에서 일을 한다.
핀에게 선입견없이 친하게 대하려 그의 방식대로 무대뽀로 들이댄다.
그런 조를 핀은 거북하고 귀찮고 힘들다.
인간다운 인간이 드물다고 생각하는 조.
아버지의 병때문에 항상 짐을 지고 사는 조는 핀에게 친구이고자 한다.
참 넉살도 좋게 붙으려고 하는 조와 그것이 익숙하지 않는 핀
그렇지만 인간은 붙어사는 것이 원래의 본성인가보다.
열심히 들이댄 조 덕분에 핀은 맘에 문이 조금씩 열리고
또 한 사람
올리비에, 2년전 아이의 죽음으로 현실과 멀어지고 싶어 이곳으로 들어온 화가.
남편과는 이혼했다.
올리비에는 아이의 죽음때문에 불안하고 슬프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발이 땅에 딛지 못하는 그런 아픈 여자다.
이 세 사람이 만난 것이다.
무대뽀지만 정이 많은 조
아들의 죽음때문에 아픔이 있지만 사랑이 많은 올리비에
자신의 장애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상처인 핀
세 사람이 서로 공유하기 시작한다.
철길을 걸으며,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달리는 기차를 따라가서 비디오를 찍으며
그들은 지금 진행중인 어떤 것에 대해 감정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올리비에가 빌려 준 캠코더를 가지고 달리는 기차를 찍는 핀과
그 옆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조. 그들은 달리는 기차를 향해 공유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함께 파티를 한다.
셋이서 찍은 달리는 기차를 보며, 서로 덮어준다.
뭐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덮어준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꼭꼭 덮어준다.
올리비에의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서, 올리비에의 생활에 대해 다그치자.
올리비에는 어쩌면 아물어가던 상처에 더욱 큰 상처가 된다. 그리고 처음처럼 문을 닫아버린다.
셋은 서로에게 맘이 향하지만, 다시 긁힌 상처때문에 각자의 아픔을 달래기에도 벅차다.
핀은 처음으로 술에 취한다.
마시고 마시고 취해서 술집의자에 올라가서 소리지른다.
"실컷 봐라"그리고 넘어지자 의자보다 작아졌다.
철길을 따라 걸어가던 핀, 마주 기차가 달려온다.
그는 피하지 않는다. 순간 기차를 똑바로 마주 보고 웃는 듯 했다.
핀은 죽지 않았고, 그가 아끼던 철도기관사용 시계만 깨어졌다.
그의 시간이 깨어졌다.
그는 올리비에를 찾아가 약물과다복용을 한 올리비에를 치료받게 하고 조와 함께
다시 모인다.
이제 그들이 함께 있게 되었다.
조는 여전히 밝게 요리를 하고, 올리비에는 크게 행복할 수는 없지만 잔잔해졌으며,
핀은 일상적인 표정이 되었다.
우리들이 하고 있는 그런 표정이 되었다.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이 영화가 개봉이 되면, 같이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생각났다.
물론 나를 포함한,
우린 누구나 다같이 좀은 외롭고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 쓰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생각났다.
한 장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핀과 조가 다같이 올리비에의 집에서 자게 된 날.
핀은 올리비에의 아들방에서 자게 된다,
죽은 아들 샘의 사진을 보면, 올리비에는 아들을 생각하고, 핀은 그런 올리비에를 위로한다.
그리고 굿나잇키스를 한다.
친구임에도 그들은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건 남녀간에 할 수 있는 굿나잇키스였지만, 위로의 키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뭐랄까?
때로 누군가에게 키스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건 사랑해서라기보다,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을 때
힘을 얻고 싶을 때 그렇게 하기도 한다.
혹 그럴 때 난 내가 헤픈 생각을 하는 여자인가 하는 그런 맘이 들었다.
그리고 자책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답을 얻은 느낌이다.
그건, 그런 것이다.
사랑의 모양은 남녀의 사랑이 있지만,
측은지심이라고 하는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색욕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의 아름다운 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웠다.
굿 나잇 키스..
그 키스를 받은 핀의 얼굴과 키스를 하고 방을 나가는 올리비에의 얼굴이 서로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가득함이 보였다. 따뜻함 이상의 어떤 치료같은 그런 느낌....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참 단순한 구도의 스토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한번도 슬프지 않았다.
잠시 맘이 아프긴했지만, 웃으면서 낄낄거리면서 보았다.
왜냐면, 그건 '나도 아는데...., 나도 그런 적 있는데..'하는 그런 느낌때문이었다.
혹 내가 왜소증이 아니더라도, 아들이 죽지 않았더라도,
아버지가 아픈 좀 시끄러운 애가 아니더라도,
2005년에 이어 2006년을 살아가야하는 우리는 소통하지 못해서 답답하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서 답답해한다.
그리고 포기해버린다.
입을 다물어버리고, 혹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을 원하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통을 원하면서....
소통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겁내하는 것 또한 인간이다.
지금이라도 통하기 신청을 하고, 정말 통하는 사람과 잘 굴러가는 톱니바퀴처럼 살았으면
참 좋겠다.
셋이서 아픈 사람이지만, 이제 덜 아플 것 같아 차라리 부러운 맘이었다.
간만에 참 아름다운 멋진 영화를 봐서 요즘 좀 가라앉았던 기분이 업되었다.
역시 인간은 인간을 걷어올리는 힘이 있단 말이야.
좋았다.
내가 꼭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같이 보려고 할런지 모르겠다.
그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올리비에가 핀에게 굿나잇키스를 하듯
딱 그 기분으로 이 영화를 같이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ps:
이 영화의 장면들은 (ㅎㅎ)영화를 보면서 디카로 몰래 찍은 것들이다.
멋진 장면을 기다렸다가 찰칵하고 찍었다.
그 재미도 참 좋았다. 카페 뤼미에르 볼 때 했더니 ㅋㅋ, 재미있어서 또 그랬지.
그거 들키면 안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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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침,
눈을 뜨자 소통에 관한 시 한 편이 생각났다.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담긴 짧은 시 한 편
기억에 대하여. 1
조현석
너덜너덜한 개인수첩
속의 얼굴들이 전화번호들이
자음. 모음. 숫자 가리지 않고
말끔히 표백되어 날아가고
빛바랜 종이 위에
마른 가래침보다 더 누렇게 뜬
영양실조의 이름들
모두
떠오르는, 가라앉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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