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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3. 딱 어울림 그 곳...병산서원

by 발비(發飛) 2005. 11. 28.

나에게 안동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병산서원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병산서원은 유성룡선생의 위패를 모신 옛날 공부방 내지는 학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회가 물돌이동, 몰돌아가는 그 안에 있다면,

병산서원은 물굽이 어느 한쪽에 있다.

그 동네 아이들이 한 시간 쯤 걸어서 공부하러 다녔을 것이다.

아직도 비포장구간이 남아있다.

몇 년전에는 하회입구서부터 비포장이어서 맘먹고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냥 잘 남아있는 곳이다.

몇 백미터 남은 비포장구간을 그냥 두었으면 하는 맘이 있다.

평화?

 

 

이 모습때문에 난 평화라고 말한다.

물이 흐른다.

하지만 흐름은 느낄 수 없을만큼 고요하다.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는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수제비를 떠보려해도 손톱만한 돌조차 만나기가 어렵다.

모래는 부드럽고 희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과 산의 그림자가 두텁게 감싸는 듯 한 느낌이다.

어딘가  누군가의 품속에 안겨있는 듯하다.

이 강변에서는 큰 소리로 말하지 않게 된다.

다들 조용하니까... 나무도 풀도 산도 물도 모두가 조용하니깐 저절로 조용하게 된다.

 

 

 

만대루

마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 같다.

타잔의 집이다.

차례로 심어진 나무에 마루를 얹어놓은 듯하다.

기둥으로 서 있는 나무도 자란모양 그래로

깔아놓은 마루도 자란 모양 그대로

천청의 대들보도 나무 자란 모양 그래로

나무들은 제 각기의 갈등을 가지고 집한채가 되어있었다.

그 아래 서있으면 나의 결대로 나무의 흐름대로 그리고 나의 흐름이 그대로 자연스럽다.

내가 갈등한다

난 갈등할 때마다 내 몸의 각이 좌우로 1도씩 움직인다.

나의 몸도 이리저리 남들이 눈치채지 못할만큼 틀어져있다.

그런 내가 그 기둥사이에 서있으니, 난 너무나 자연스러운 존재가 된다.

각진 사각 빌딩안에 서있을 때의 나의 모습은 도드라진다.

티가 난다.

그저 그 꿈틀거리는 마루에 앉아, 뒤틀고 있는 대들보를 바라보면

왜 이리 편하나, 왜 이리도 편하나.

그러다.

달리 뭐가 있겠어

너 자랄 때 갈등해서 뒤틀린 만큼 딱 그 만큼 그 모양으로 틀어진 내가  자연스러우니까

그렇지. 그렇지....

만대루에서 보이는 풍경, 아름답다.

그 곳에서 느껴지는 결들의 흐름.. 더욱 아름답다.

 

 

완벽한 좌우대칭이다.

멋대로 구부러진 나무들을 데리고 대목은 좌우대칭을 끌어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것들이

멀리서 보니 정확한 좌우대칭이다.

기와끝에서 기와끝까지

기둥에서 기둥까지

네모 안에 네모가 반듯이 들어앉았다.

이 곳에서 공부하던 아이는 꿇어앉아 머리를 쳐박고, 잠시 딴 생각을 할 것이다.

마루바닥에 굽이치는 나무결들을 보면서 나도 요렇게 요렇게 삐뚤삐둘거렸으면...

그러다 잠시 헤매다

고개를 들면 사각들 사이에 정리된 사각을 보면서 정신이 들었을 것이다.

헤매다 정신이 들다 헤매다 정신이 들다

그렇게 담금질 하였을 것이다.

반듯함 속에 자유로움.

여기가 바로 그 곳이다.

 

같이 간 애들도 그런다.

도무지 뭔지 모르지만, 너무 평화롭고 너무 좋다고...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낡음들 사이에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있었으니,

이것이 뭘까요?

APEC때문에 한국에 온 부시미대통령이 병산서원을 다녀갔단다.

11월 13일에 와서 기념식수를 하고 갔단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이 곳이 정말 좋은 곳이니까, 자랑할만한 곳이니까.

아무것도 없이 당랑 서원하나인데도 그것이 가득한 것, 그런 곳을 보고 갔으니 다행이다.

하회마을이 난개발에다, 정말 국적불명의 이상한 곳이라서 감추고 싶다면,

병산서원은 너무 귀해서 감추고 싶은 곳이다.

그런 곳을 특별히 보고 갔다니 다행이다. 좀 부러웠을래나?

나쁜 **

 

보디가드들이 키가 하도 커서 만대루에서 서지 못한 애들도 있었다고

문화재도우미가 이야기 해 줬다.

 

근데 웃긴 것!

우리나라의 행정이 이리 빠른 것은 첨 본다.

11월 13일에 다녀갔다는데, 벌써 돌비석에 확실히 부시이름 새겨서 딱 박아두었다.

정말 민첩하다.

아직 덮은 흙도 마르지 않았구만,,,

얄미워!

흥! 그래도 좋은 건 알아가지고 찾아보고 갔네.

 

병산서원, 멋진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 갈 땐 기대를 하고 갈 것이 아니라 맘을 비워야 한다.

그래야만 산의 뼈대가 보이고, 물그림자가 보이고, 손바닥만 메기도 볼 수 있다.

억새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도

마루결이 햇빛에 꾸물꾸물 기어다는 것도,

그리고 바닥에 한 번 누워 대들보를 보면서 살아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랑많이 했더니 손이 아프려고 한다.

 

잠시....

바로 10분도 안되는 거리에 하회도 갔었다.

절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서울촌놈들이 하회를 꼭 가봐야 숙제를 한 듯 할테니까,

안동하면 하회를 생각하니까.

한 동네가 다 식당이 되어버린 먹자골목이다.

추억이 없다면 화가 나지 않겠지.

난 고등학교때 하회탈춤을 배우느라, 여름내내 하회마을 드나들었었다.

그 때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솔밭에서 탈춤을 배웠었다.

그 동네는 조용했었고, 할아버지들은 뒷짐지고 천천히 동네를 걸어다니셨었다.

그래서 떠들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곳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식당주인과 밥을 먹는 손님만 보인다.

그리고 지금도 이상한 집들을 무늬만 한옥의 모양으로 집을 짓고 있었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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