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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초겨울밤의 선유도공원

by 발비(發飛) 2005. 11. 23.
LONG

 

 

아무도 없어서 가능한 일을 했다.

네개의 원을 모티브로 한 공원안에는 정수장 배관을 그대로 이용한 놀이터가 있었다.

미끄럼을 탔다.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동그란 밀실에 들어앉았다가 서서히 세상밖으로 나가는 기분이 묘했다.

밖이 어둠인데,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속에서 보는 어둠은 빛이기도 했다.

어둠속에서 더 짙은 어둠으로, 다시 어둠으로 나가면서 본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밝음.

터널밖의 밝음에 눈이 환해졌다.

어둠인데 어둠이 아닌 밝음이라, 그 게임이 재미있어서 세번이나 탔다.

지금 어둡다면, 난 더 짙은 어둠속으로 들어앉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어둠속에서 밖에 살 수 없다면, 더 짙은 어둠을 찾아 들어가야 할 것이다.

어둠이 밝아지리라.

 

 

이렇게 환할수가......

이 사진을 찍을 때 한 마디로 쇼를 했다.

마치 어느 혹성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동그란 건물을 보기가 어디 쉬운일인가?

동그란 건물은 여러가지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학습관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이 사진을 찍기위해, 난 몇 번의 셔터를 눌렀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화단으로 올라갔다.

아마 나의 허리정도의 높이. 상상해봐라.

아무도 없는 공원에 멀쩡한 여자가 그것도 밤에 화단을 오르겠다고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화단의 턱에 올라가, 기둥에다 사진기를 올려놓고 찍었다.

분명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없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저 말갛기만해서 맘에 들지 않는다.

열심히 뛰었는데... 그런 것이다.

아니, 거의 그렇다.

강하게 의지한 것들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흔적이다.

물이 나갔던 곳이 아니면, 들어왔던 곳이겠지.

물이 드나들던 곳은 이제 더는 물이 드나들지 않고, 꽃밭이 되었다.

나란한 관들이 꽃들앞에서 깜빡거리고 있다.

 

"나 여기서 뭐하니?"

"그냥 쉬어"

"그냥 이렇게 너희들만 보고 있으면 되니?"

"뭐 할 것도 없잖아."

"차라리 나도 너희처럼 자라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꽃도 피우고 잎도 키우고... 난 그저 가만 있기만 해야하는 거야."

"너! 몰랐어? 너도 자라고 있어."

"내가?"

"너 빨갛게 자라고 있는데, 그리고 저기 덩쿨도 이젠 너같은데. 아니니?"

"......"

"나 빨갛게 되면 안되는건데. 덩쿨이 나라고?"

"이제 넌 물속에 있는게 아니거든, 넌 빨갛게 다시 타도된다니까. 너가 처음 세상에 왔을때처럼 다시 빨개지는거야. 그리고 덩쿨도 이제 너 없인 안되겠다는데, 너랑 한 몸이래. 너도 자라고 있는거야."

"그럼......, 내가 다시 생명을 가진거구나. 그런거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난 그렇게 들었다.

 

 

 

 

 

 

 

 

 

 

 

 

 

 

선유교위에서 행주대교쪽 풍경이다.

철탑이 가운데 가리고 있었는데, 가운데 가리고 있어서 심심한 느낌이 아니었다.

어둠과 불빛이 조화롭다

 

 

 

 

 

겨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뭐가 들었길래, 한강변에 심겨있으면서, 또 겨울이면 저리 싸주어야 할까?

어떤 보호대상자길래, 대단하다.

보호받고 있는 삶!

 

 

 

양화대교옆에 자리를 잡았다.

저 멀리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내가 다녀온 선유도공원이 보인다.

물빛은 자신의 색도 있지만, 남의 색을 잘 튕긴다.

싫다고 저 멀리 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해서 물위에 색들을 놓아둔다.

제 물결로 색들을 적당히 유혹하며 곁에 둔다.

물이 흔들릴때마다 불빛도 흔들린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내 몸이 흔들린다.

괜히 맘이 울렁거렸었다.

물에 비친 불빛을 보면서.

저 철교위를 달리는 2호선 전철을 보면서.

전철안의 몇 명 선 사람들의 실루엣을 보면서,

그리고 맞은편 남산타워를 보면서.

그 곳에 앉아 물결과 같이 울렁거렸다.

그 울렁거림이 차가운 공기와 함께 그저 좋았다.

 

 

 

3시간정도를 걸었다.

당산역 가까이 한강변에 앉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사람들이 특히나 없었던, 여기가 서울이 맞나 할 정도로 사람구경을 못했던,

한강에 앉아서야 양쪽 옆으로 맥주를 마시는 두 팀이 있었다.

다들, 즐거운 모양이었다.

덜덜 떨면서 마시는 맥주, 참 맛있겠더라,

아마 좀 더 있었더라면, 친구에게서 전화만 안 왔더라면

난 맥주마시러 갔을 지도 모른다.

많이 걸었다,

준비없이 걷느라 발바닥이 아팠다,

역시 신발은 발바닥이 두꺼워야 편한 것이다.

밤늦게까지 걷는 것 좋아하는 주인덕분에 수고한 발을 찍는 것으로

선유도공원 여행을 마쳤다.

항상 내 발이 고맙다.

ARTICLE

조용히 지내자.

차분히 지내자.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아침부터 선유도가 가고 싶었다.

가끔씩 어떤 곳이나 일이 이유도 없이 떠오르고, 마치 나에게 그 길을 인도하는 누군가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일이 있다.

딱 그런 날이었다.

오늘 선유도에 가면 무엇인가 계시라도 받을 것 처럼.

그 곳 밤불빛이 좋다던데, 언젠가 일요일 사람들 무지 많은 시간에 간 기억.

기억뿐인 것을 보면 사람들때문에 힘이 들었었나보다.

 

퇴근을 한 시간은 당연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도 갈까? 아니면 담에 갈까?

집에 가서 쉴까? 다른 공기라도 좀 마실까? 갈등에 갈등, 하기사 시간으로 따지면 5분도 안되지만.....

 

무조건 집과 반대방향의 전철을 탔다. 그러면 결정이 되더라.

-집과 반대방향에 항상 새로운 길이 있다.

 

당산역에 내려서 한강을 따라 선유도공원까지 걸어갔다.

걷는 것에는 이력이 난 처지라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마음' 산울림의 노래 읊으며 걷었지.

 

분명 20분정도라고 했는데, 아마 40분은 걸린 것 같다.

(사실 돌아올 때보니까 20분이 맞는건데, 빙빙 돌아다녔더군. 역시 나야.)

 

하지만, 시간과 상관없이 한강을 걷는다는 게 좋았다.

그 시간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전국민의 식사시간이었으니까....

한강다리들의 조명, 국회의사당, 쌍둥이빌딩불빛, 88도로, 강변북로...

세상은 빛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길을 걸었다. 아주 천천히......(너무 사람이 없어 조금 무서웠다) 

 

선유도공원에 접어드는 한강의 유일한 보행자전용다리인 선유교에 올라서는 순간,

왼쪽으로 철제터널이 눈에 띈다.

영화세트같았다.

메릴스트립과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거~ 무슨다리지? 그 다리옆의 터널.

(방금 기억났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철제다리 앞으로 버드나무가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 있었다.

겨울인데도 버드나무는 촉촉하고 푸르렀다.

물이 많은 곳에 버드나무가 많은거지.

선유도 공원 곳곳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

참 많은 잎을 가진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제 잎들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둔다.

포대기로  업은 아이가 포대기밑으로 삐죽이 발이 빠져나오듯,

버드나무잎들은 나무라는 실루엣에서 뾰족한 잎들이 자꾸 빠져나온다.

동그랗게 그릴 수 없는 나무다.

(사진은 어딨지?)

 

 

한강의 유일한 보행자전용다리, 이곳은 생태공원이라 입장수를 제한한단다.

그래서 이 다리를 통과할 때 사람수가 계산된다.

 

이 다리는 원래 흔들리게 설계했으니, 흔들리더라도 걱정말고 건너라는 팻말이 적혀있었다.

난 흔들다리인줄 알고, 발을 굴러보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칫! 흔들리게 설계했다더니...

 

 

선유도공원의 담(?)에 덩쿨식물을 심어두고 조명발 근사하게 비추었다.

좀 기다리면 조명을 받아 색깔 이쁜 물도 내려온다.

그 물소리덕분에 얼마나 춥던지.

그 물소리 듣고 떨고 싶어서 듣고 있던 엠피에서 이루마의 음악을  껐다.

추워서 달달 떨면서 물소리 들으려 다리 난간에 서있었다. 물소리때문에 더 추워져 완전 덜덜 떨었다.

여기 선유교에 서서 한참을 있는 동안, 눈도 행복하고, 귀도 행복했으나 추웠다. (시청각 중에 각만 불만이었다)

선유도공원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내 몸이 얼음같았다.

스치는 사람도 없었다.

36.5도짜리 난로는 한명도 없었다. 적어도 내가 들어갈 때는......

 

 

처음 마주친 것

빈 의자.

사람이 없어 빈 의자만 덩그렇다.

의자가 무지 많은 공원이었다. 그리고 바닥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어디든 앉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사람이 나 밖에 없으니... 원!

무슨 만화영화더라, 그 만화처럼 내가  엄청 많은 숫자로 복제되어

이 곳 선유도공원 빈의자들에 앉아 있었으면,

생긴 것은 모두 같은데 다른 포즈로 앉아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재미있을 것 같다.

 

빈 의자가 너무 많았다.

사실 난 가는 곳마다 이 빈의자들을 다 찍었다.

어둠 속이라 까만 빈의자도 있고, 후레쉬를 터트려 나무색의자도 있고, 포샵질해서 좀 현란해진

의자도 있고... 의자는 무지 많은데, 사람이 없다.

지금 내 컴퓨터에는 빈의자가 폴더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나올 사진들 앞에는 이렇게 받침이 놓일 것이다.

뭐냐면?

어두운 밤에 사진을 찍는다.

카메라의 설정을 밤모드로 조정해 두었다. 노출시간이 긴가보다.

어제 읽은 김홍희님의 책에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셔터를 누르라두만,

아무리 들숨과 날숨 무중력 무호흡상태에서 셔터를 눌러도 저 불빛은

찍은 뒤 확인하면, 앵글위에다 지렁이모양으로 아주 낙서를 하고 다닌다. 무지 약올랐다.

 

-잠시-

 

내가 사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시도한 방법

 

1. 팔꿈치를 겨드랑이에 붙였다

2. 손바닥위에 카메라를 얹었다

3. 검지손끝으로 누르던 셔터를 손가락 가운데로 눌렀다.

4.무릎위에다 사진기를 올려놓았다.

5.가슴과 멀리 떨어뜨려놓았다.(심장박동때문에)

 

그래도 흔들렸다.

그래서 난 사진기를 얹어놓을 만한 곳만 나타나면 그 곳에 올려놓고 찍었다.

 

 

 

재활용공원.

공원 이전 정수장, 그 이전 일제시대 아마 홍수방지용 둑이래나 뭐래나 그것때문에 섬이 된...

또 그 이전, 선유정 지어놓고 풍류읊던데.

그것들을 그 모습 그대로 두고 다시 공원으로 변신했단다.

 

인생을 바꾸어본다고 나를 완전히 부정하고 확 뒤집어 버리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던 모양, 살아온 무늬를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이다.

정자도 그냥 있고, 당연 섬도 그냥 있고, 정수장 기둥이면 수조며 다 그냥 있었다.

 

팔자 사납다고 확 뒤집는다고 우길일은 아니다.

임자 잘 만나면, 과거의 파란만장함이 이렇게 빛을 발하기도 하니까..

문제는 임자를 잘 만나야 하고, 타이밍도 맞아야 한다는 것이지.

혹 자가발전이 가능한 생명들, 특히 인간!

임자를 만나야 한다면 의타적이 아니거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차피 사회적동물인 것을... 내가 만나는 어떤 환경속에 있느냐가

제대로 된 임자를 만나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는 인간이하인 사람이,

그를 필요로하는 혹은 누구의 말처럼 코드가 맞는 인간들끼리 만나면, 날개를 다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임자를 잘 만나야한다.

나도 누군가의 임자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사회라는 것은 임자를 만나고, 임자가 되기위한 짝짓기 공간이다.

 

선유도 공원,

그도 생명이 있는 유기체라고 생각한다.

임자를 만나서 선유도의 갈 길 정리만 해두었더니,

쑥부쟁이, 오이나물, 갈대, 억새들이 스스로 섬을 두텁게 에워싸고 있었다.

 

선유도, 긍정적인 이름을 가진 보람이 있구만... 축하한다. 인생대역전!

그 곳에 가면 무너지고 패인 콘크리트에 덩쿨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

세상에 시간이 가서 덮히지 않을 것이 없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

먼 훗날엔 콘크리트를 모두 덮겠지. 그럼 후비파며, 과거를 물어야 할 때도 올 것이다.

난 이런 사연을 가졌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이런 모습이거든...

하면서 제 모습을 살짝 공개할 것이다.

 

저 아래에... 숨어있는 사진에도 좀 더 주절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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