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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가을찾기

by 발비(發飛) 2005. 9. 5.
 
 
운 좋은 날!
경복궁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길
이 돌담길...
개인적인 추억이 많은 길이라, 덕수궁 돌담길보다 몇 배는 좋아하는 길이다.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추운 길.
배려가 없는 아주 딱딱한 길이지만, 난 이 길을 좋아한다
오늘도 햇살이 강하게 내려쬐었지만, 맞은편 한국일보 길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난 이 길로 걸었다.
은행나무 도열한 그 길을 걸으면, 나를 위한 근위병같다.
 
 
 
가을 찾기를 해보리라 생각했었는데,
잠시 들른 경복궁에서는 가을을 담기에는 아직 역부족!
내 맘속에서만 가을이 왔나보다 하고 실망하며 걸었다. 이 길을...
그러면서 색깔이 좀은 탈색되지 않았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으로 올려단 은행나무에...
우와~~
노란 은행알들이 저리도 다닥 다닥 붙어있는 거였다,
난 그 아래에서 고개를 90도로 젖히고 서서 일단 사진을 찍었다.
나올까?
나의 이 불성실한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을까.
에고 하면서, 셧터를 눌렀다.
그 담은 집에서  알아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냄새를 맡는다.
은행열매 냄새가 좋을 리가 없다. 당연히 코를 막아야 하는 냄새인데도
난 가을을 찾고 있던 중이었으니, 그 구린 냄새조차 어찌나 반갑던지...
가을 만나기를 포기하는 순간 내가 만난 가을은
처음으로 만난 가을은 풍성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으려나 ... 이 가을에..
그랬음 좋겠다
특별히 원하는 것도 없으면서 그저 좋은 일이 있었음 하는 바램을 해 보았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한 참을 구린내를 맡으며 서 있었다.
목이 뻐근하도록...
가을을 위하여!
 
암나무, 숫나무가 있다더니
암나무 암나무 숫나무 숫나무 암나무 암나무 숫나무 숫나무 숫나무 암나무...
이건 은행나무 도열 순서이다.
가면서 세어보았다
사이좋게 짝짝이 있지는 않았다.
얘들도 남녀간에 내외를 하는지, 사이사이에 끼어있지 않고, 여자끼리 남자끼리..
뭐 그런 형태의 도열이었다.
가끔 초등학교 교실처럼 남자들끼리 짝인 은행나무도 있었고,
개들을 세면서 오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외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째 그러고 줄을 서있는지...
웃겨서 혼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혼자 길가다가 웃는 다 큰 여자... 어디로 실려갈까봐 웃지도 못하고...
그래도 아마 웃음을 어딘가에는 흘렸을 것이다.
 
가을을 찾으려고 했더니, 가을은 이미 와 있더란 말이지.
내가 찾아나선 가을
찾아낸 가을 ... 은행알이 풍성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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