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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보라색에서

by 발비(發飛) 2005. 8. 19.
 
핸펀으로 찍은 사진을 받았다.
기다리던 보라색바다!
이제 난 이 보라색 바다를 보면서 내 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 이렇게 블로그에 사진만 덩그렇지만, 생각할 것이다.
보라색 바다는 왜 나에게 쉬지 않고 말을 걸었던 것인지,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
사방을 조용히 하고 들을 것이다.
이제 곧!
 
 

 

1.어쩌다가

 

친구들은 밤이 늦어지자 그래서 새벽이 다가오자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갔다

 

"난 보라색 바다를 볼거야"

"......"

 

그리고 누가 남아있었지?

바람이 불었다

옆에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바람에 날려 두루룩하고 풀린다

얼른 달려가 잡았다

휴지의 끝은 여전히 펄펄 날리고 ... 그 순간 난 휴지를 잡고 있던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휴지는 마치 연처럼 하늘을 난다

까만 밤에 하얀 휴지가 하늘을 날고 있다

아예 휴지의 가운데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맘껏 풀려보아라 하고

순식간에 휴지 한 롤이 다 풀렸다.

 

그 하얀 휴지는 모두 하늘을 날고 있다

더는 휴지가 아니라 마법의 양탄자였고, 하늘길이었다

눈을 감았다

하얀길을 따라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 나의 머리칼이 날리고 하늘길은 흔들흔들,

난 그 길위에서 중심을 잡기위해 달렸다.

하늘길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바닷가에 서있던 나는 눈을 감고서 하늘길을 달린다

 하늘길을 달리던 나는 하얀길 너머에 있을 세상을 보고 있다

하얀길이 끝도 없이 꽂혀있는 하늘

 

"야! 그거 어떻게 하려고 그래!"

 

그 순간 눈을 떴고, 하얀 휴지는 두루말이에서 끊어져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그리곤 바닷가 어느 곳에 곤두박칠 치고 있었다

잠시 하늘길을 뛰었다

숨이 차다

그건 하늘길을 달리고 있는 동안 난 숨을 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쉬면 길이 끊어질까 숨도 쉬지 않고 달린 길이다

숨이 차다

 

하늘로 놓인 하늘길을 본다는 것

내가 본 하늘길

내가 달린 하늘길

눈을 감아서 볼 수 있었던 길이었다

 

어쩌다가 만난 길이다

난 어쩌다가 그런 길을 만났다

어쩌다가 만난 길에서 난 숨이 멎도록 뛰기도 하였다

 

하늘길로 가려면 항상 숨이 찰까?

아닐거야

천사들은 하늘을 유유히 날아다니던데

곧 다시 하늘길을 만나게 된다면, 당황하지 말고

이번에는 고르게 숨을 쉬면서 날아보아야겠다

무서운 일은 아닐거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난 단지 술에 좀 취한 객기같은 행동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친구들에게는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선명할 수 있을까

내가 본 것은 하얀 하늘길이었다

언제가 내가 보았던 보라색바다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듯, 하얀 휴지로 만들어진 하늘길 또한 나에겐

다시 만나야 할 그런 길이었다

어느날은 그 길을 따라 모두 하늘로 오르겠지

난 봤다

하늘로 이어지는 힘찬 길을....

 

 

 

 

 
 
 
 
 

 


 

 

2. 오래 전 그러니깐  언제라고 말하고는 싶지 않군!

 

그런 날들이 있었다

매일 바다가 보고 싶던 날들이 있었다

바다에 있었던 며칠을 매일 새벽, 난 바다의 보라색을 보았다

때로 보라가 아니라 회색인 적도 있기는 했었지만, 난 보라를 보면서 맘을 가라앉았다

 

왜 보라색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을까

흥분을 한 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니었는데

보라색의 바다를 보면 내가 갖고 있는 희노애락의 감정들이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밖의 색깔인 듯 싶다

 

사실, 사람들은 보라색을 불안정한 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라---흥분의 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자수정,아메티스토스(amethystos)다

술에 취해 생긴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아메티스토스잔에 술을 마신다

보라색 자수정 술잔에다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단다

그랬다

 

 

세상은 술이다

아주 독한 술이다

세상 한 가운데 있으면 절로 취한다

섞어마시는 술처럼, 이사람 저사람이 나를 취하게 만든다

섞어마신 술에 취하면 정신을 못 차리듯 속이 무지 아프듯

 여러사람을 만난 날은 더욱 취한다

취한 내가 오랜 시간 보랏빛 바다를 가기를 원했었다

보라색에 내가 담겨, 세상을 아메티스토스(amethystos)술잔에 담기도 하고

혹은 내가 아메티스토스(amethystos)술잔이 되기도 한다

그 시간 난 그랬다

밤새 한 잠도 자지 않았지만, 난 보랏빛 바다에서 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아주 맑은 정신의 내가 보였다

세상도 보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아메티스토스(amethystos) 보라빛

나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고, 나는 그런 나를 만났다

맑은 내가 맘에 들었다

새벽 보라바다를 기다릴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내가 오랫만에 기특하다

난 항상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3. 공감

 

내가 보라색 바다를 보러 갈거라고 했다

따라나서겠다는 친구가 있다

다행이다(뭐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둘이서 새벽을 맞으러 나갔다

내심 보라색바다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다

5시가 넘어서자 심상치 않다

딱 10분이 지나자, 친구가 소리지른다

"진짜다!!!"

난 사실 보라색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성을 가진 친구는 이 장면을 찍어야 한다며 핸펀을 꺼냈다

 

핸펀, 디카겸용!

난 이번처럼 핸펀이 사랑스러웠던 적이 없다. 비록 나의 것은 아니지만...

그 친구는 나중에 여러자리에서 그 보랏빛을 자랑하기 위해 핸펀을 열었다

좋았나보나

 

내가 다시 본 것도 좋았지만,

친구와 그 장면을 같이 나누는 그 느낌도 아주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는 것

그것을 쓸데없는 감정의 소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같이 감동해주는 것

보라색바다와 함께 그 공감의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공감이다

 

사람은 살면서 사람을 참 많이 만난다

좀 전에도 이야기를 했듯이, 사람에 취할만큼 사람을 많이 만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

내가 느끼고 보는 것을 같이 봐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감히 말한다

 

아름다운 장면, 멋진 순간, 맛있는 것

그것에 감동한다.

누구는 그러더라, 너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다 좋다고 하니까.

(사실 이건 누구가 아니라 할마버지 사장님이다. 맨날 나한테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있더란 말이지.나처럼 감동하면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이즈음에서 조병준이라는 사람이 쓴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이야기를 잠깐!

그 분이 말하는 바다도 그런 것이다

객관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봐 온 바다이다

하지만 '미치게 만든다는 바다'는 그 만의 바다인 것이다.

그에게는 사실이지만, 다른이에게는 오버일 수도 있고 감정의 사치를 부린다고 할 수 있다

우린 누구나 다르다.

난 '나를 미치게 하는 바다', 그 말에 공감했다

바로 난 보라의 바다를 보면서 내 마음은 진정되었고,

바다를 보면서 진정되고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바다가 나를 치유해준다는 사실에 난 또 미친다.

인정한다.

 

나와 바다

다시 그리워 할 바다

함께 나누어서 더욱 아름다웠고, 수다스러울 정도로 멋지다는 말을 남발할 수가 있어서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4.기다림

 

묶어진 배를 보면서 기다림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것은 아주 상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이 배를 보면서 기다림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난 가만히 잘 기다린다

그것은 나의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난 안다

장점이기보다는 단점이라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혼자서 주절거리지 말고 방과 사무실 밖으로 나가 만나면 되는데

난 그냥 기다린다

그것도 잘 기다린다

 

나의 첫 기억은 기다림이다

아마 서너살, 아니면 다섯살

난 기다리고 있었다

양지바른 한옥기와대문아래에서 난 매주 토요일에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집에 살았던 것 같다

오빠가 아팠고, 동생은 어렸다

난 매주 토요일이면 오빠를 데리고 병원에 오시는 아빠를 대문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이 참 따뜻했다

잠이 든 모양이다

그 기다림 다음 순간은 어떤 아주머니가 나를 안아서 방에 눕히는 것이다

난 자는 척을 한 것 같다

그 분은 "ㅉㅉ" 하며 혀를 찼다. 그래서 자는 척을 했다

난 기다림이란 남들이 나를 좀 불쌍하게 보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사실 이야기를 얼마전에 아버지에게 했더니,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단다-

그런데 난 그 기다림의 기억이 내가 아는 최초의 나의 시간이다

 

기다림의 기억을 최초의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나는 운명처럼 기다릴 일만 생긴다

항상 기다려야 한다

뭘 기다리냐고 묻는다면, 기다릴 것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 한다

 

갑자기 딴소리를 한다면.

책들을 보면 나를 닮은 데가 있다

책들도 기다린다

언젠가 주인이 나타나 데리고 갈 날을 기다린다

어떤 책은 좋은 주인을 만나 매일 보듬고 쓸고 하면서

주인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로 남기도 하고

어떤 책은 잠시 스쳐가는 , 그리고는 잊혀져버리는 바삭거리며 책벌레에게나 환영받는

그런 책이 되기도 한다

같은 제목을 달고 나와서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책과 금방 주인을 만나는 책

그렇게 된 후에도 사랑을 받는 삶과 아닌 삶

사랑받지 못하는 삶은 다시 꿈꾼다

사랑받을 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들은 점점 더 잘 기다린다

 

보라색 하늘 아래 묶인 배

그들은 바다를 손길를 기다릴 것이다

파도의 거센 애무를 받고 싶을 것이다

그 순간의 힘을 못 이겨 뒤집히더라고 혹 어느 곳이 부서지더라도 바다로 나가고 싶을 것이다

파도의 손길이 그리울 것이다

기다림의 끝에 바다로 나간 배는 작은 파도에도 온 몸을 맡길 것이다.

그래서 파도의 모양대로 흔들릴 것이다

 

많이 기다린 자는 안다

만남이 순간 자신에게 왔을때 온 몸에 힘을 빼고 무조건 맡긴다는 것을 안다

많이 기다린 자는 안다

내가 가진 힘이 나를 위해 쓸일 것이 아니라

만남의 순간 나의 모든 것을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다 준다. 그리고 맡긴다. 힘을 뺀다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 나의 무게는 '0'

난  기다린다

내가 없어질 날을 기다린다

나를 넘겨줄 날을 기다린다

 

저 배도 나도 아직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모든 것을 넘겨줄 그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5. 씨앗심기-좋은 것을 옆에 두고 싶다

 

수평선에서 출발했다

보라의 씨는 속성으로 자란다

보라의 씨가 수평선에 심기자 말자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하늘을 점령하더니, 어느새 바다다

단 10분도 안되는 사이에 세상을 온통 보라로 만든 것이다

자라고  있는 보라

 

나의 옆에도 보라의 씨 하나 있었으면,

온통 보라로 바뀌어버릴 수 있는 씨앗 하나 심어졌으면,

내 옆 향내 좋은, 사연 이쁜, 그런 씨앗 하나 심어졌으면,

 

저 바다처럼

나도 물들어 내게도 그런 씨앗 하나 떨어져 나도 씨앗 하나 키웠으면

아니 나도 그와 같은 똑같은 씨앗이 되었으면

그렇게 싹을 틔우고 자랄 수 있었으면

 

보라빛 바다를 보는 순간 한 그루 보라나무와 한 톨의 씨앗이 내 눈에 들어왔다

좋은 씨앗 한 알이 내 옆에 떨어졌으면

바라보기만 해도 설레이는 보라의 씨앗 하나 내 옆에 있었으면

 


 

6.그의 그녀

 

그녀의 기척이 들린다

나와 그의 밀회는 끝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녀의 기운을 느끼자 자신의 색을 버린다

그리고 붉은 그의 그녀를 위해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이제 그녀가 나타날 것이다

그는 나에게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눈빛을 보낸다

아니 눈 맞추기를 그만 두었다

안다

이제 그의 그녀가 오면, 나도 그도 모두 자신의 색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난 숨어야 함으로 나의 색을 버려야 하고

그는 그녀와 한 몸이 되기 위해 보라의 색을 버려야 한다

그는 서서히 그의 색을 버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젊고 싱싱한 모습으로 나타날것다

그녀의 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은 그녀의 기운을 느끼자 일렁거린다

특히 그가 일렁거린다

그는 이 새벽에 있었던 나와의 밀회를 영원히 그녀에게 숨길 것이다

언젠가 그와 내가 만났던 새벽처럼, 다시 오늘도 없는 날로 치부 할 것이다

하지만 안다

우리가 만났던 그 순간은 진실이었음을

난  안다

난 인정한다

내일의 그가 아니라 , 미래의 그가 아니라, 그리고 그녀의 그가 아니라

내게 보라라는 세상을 보여준 그 순간의 그를 사랑했음을 난 인정한다

그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언젠가의 기억으로 그를 다시 찾았듯 , 또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찾을 날 그날을 기다릴 것이다

이제 그는 그녀와 하나가 될 것이다

난 나의 색을 버리고 흔적도 없이 투명인간이 되어 그들을 본다

그들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본다

그는 자신의 색을 버리고 그녀는 더욱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그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겐 붉은 색이 없다



 

7.박쥐

 

난 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박쥐를 생각했다

모든 색을 버리고 하늘이 되어버린 보라빛

그 간 자리를 보고 있는 내 모습

뒤돌아보면 나를 찍고 있는 사람이 있을텐데, 좀 더 걸으면 사람들이 미어터질만큼 많을텐데

저 뒷모습을 보아서는 뒤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 듯하다

박쥐

포유류도 조류도 아닌 것이.

밝은 날은 제 모습이 다 보일까 두려워 숨어있으며 새들을 그리워하고

제 자식을 품에 끼고 젖을 먹이고 싶어하고

그래서 항상 외로운 모습

외로움이 지나쳐 어느새 괴상한 모습으로 변한 박쥐

난 나의 모습에서 박쥐를 보았다.

사진을 거꾸로 올리고 싶다

 

 

이번 여행중에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이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일들 중 유일하게 증거자료가 있는 것이다.

물론 협찬이다.

길게 떠들었다.

항상 이렇게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의 안에 있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그 소리가 듣고 싶다

난 내가 궁금하다.

규정되어지지 않는 나의 모습, 퍼즐맞추기를 한다.

(365*??) 조각의 퍼즐맞추기...언제나 다 맞추려나...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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