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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누리장 나무이야기

by 발비(發飛) 2005. 9. 5.
 
대전 동학사 길을 걷다보면 왼쪽 계곡아래로 누리장나무가 있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씨들이 여물고 있었다.
 
 
 
블루사파이어였다.
사진에는 좀 옅게 나왔지만, 해질녘 동학사 그늘길에서 본 누리장 나무에 열린 씨는
분명 블루사파이어!
인디언핑크 기운이 도는 짙은 분홍위에 청블루...그건 광물의 색이었다.
식물에서 그런 배합을 이룰 수 있다니.
+++
 
 
어찌 꽃과 씨가 그리도 닮지 않았을까?
마치 꽃 같은 씨를 보고서 아예 꽃이라고 생각해버려서 일까?
하앟게 덩이 덩이 피어있는 누리장꽃.
길게 올라와 있는 꽃술.
(누리장 하얀 꽃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 아니라, 빌려온 것이다.
이미 꽃은 한 풀 꺾여 있었으므로...)
그 아래에 숨겨놓은 비밀 주머니에 블루 사파이어가 들어있겠지?
 

여리고 보드라워보이는 꽃이다.
보라빛으로 길게 드리운 꽃술이 마치 어느 공주가 갖고 노는 인형의 발 같다.
머리를 꽃 대궁에 쳐박고 다리만 내어 놓고 있는 공주의 인형.
발바닥을 간지러주고 싶을 만큼 예쁜 색깔!
이런 꽃이 동학사길에 피어있다.
잘 봐야 한다. 왜냐면 길 아래에 있으니깐.
 

그런데... 그런데...
이 꽃의 냄새가 이상하단다.
우린 누리장 나무라고 해서 너무 안 어울린다. 왠 여관이름!!! 그랬구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누린내가 나서 누리장나무란다.
이리도 아름다운 꽃에서 동물성 냄새인 누린내가 나다니...
그 아름다운 칼라(ㅋ)에서 누린내가 나다니, 난 인정할 수 없지만,....
그래고 전설따라 삼천리가 나와야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에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누린내가 나더라도 이뻐해줘야지 그랬다.
그럼 전설따라 삼천리 시작이다.
 
 
 

-누리장나무의 슬픈전설-

옛날 어느 고을에 가축을 잡아 고기를 파는 백정이 살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 백정에게  총각아들이 하나 있었지.
비록 백정의 아들이었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잘 생기고 매우 똑똑한 청년이었겠지?

하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마땅한 혼처가 없어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글쎄 이 총각은 남몰래 이웃 마을에 사는 양가집 처녀를 사모하고 있었던거지.

우연히 마을 잔치 집에서 일을 거들다가 그 양가집 처녀와 눈이 마주친 후로
그 처녀를 잊지 못하는 에고! 정말 처절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단다.

고리적 이야기니깐 말이 안되는 거였지.
총각은 누구에게 말도 해보지 못하고 속만 끓이며, 상사병을 앓았더란다.
백정 내외는 초췌하게 야위어가는 아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유를 알아내려고 하였지만
아들은 소심했는지, 입을 다물고 말하려 하지 않았단다.
직업상 터프할 수도 있었을텐데... 아무튼 외모와 성격은 다르다니깐..예나 지금이나.

백정총각은 가끔 처녀의 집 근처를 배회하며
얼굴이라도 보려고 하였지만
처녀의 바깥출입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열 번을 찾아가도 한 번 보기가 어려워 총각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겠지 뭐.
그러다가 처녀의 집 근처를 자주 맴도는 총각을 수상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소문이 처녀의 집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처녀의 부모는 불같이 노하여
지방 관가에 고발을 하는 지경에 이르러
총각은 처녀에게 말 한번 붙여보지 못하고
관가에 끌려가 심한 매질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럴수도 있는건데,,, 아무튼 그런 거 따지는 게 제일 싫다니깐(주절주절... 중얼중얼)

관가에서 모진 매를 맞고
백정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서
담 너머로 밖을 내다보던 처녀와 백정 총각의 두 눈길이 딱 마주쳤지 뭐야!

처녀의 연민어린 눈길을 바라본 총각의 눈에서 눈물만 흘렸지. 바보!
나같으면 보쌈해간다. 이그 바보!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총각은
그날 밤 못 이룬 슬픈 사랑을 가슴에 안고 죽고 말았단다.
(그만큼 죽을만큼 좋아할 수도 있지. 난 이해한다)

백정부부는 자식의 슬픈 사랑을 이젠 알았기에
처녀가 사는 이웃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가에 묻어주었더란다.

몇 달 후
그 양가집 처녀가 친척집에 다녀오는 길에 총각의 무덤 곁을 지나게 되었는데
무덤 곁을 지날 때 발길이 얼어붙고 말더란다.
도무지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던 것이지.
같이 간 동생이 아무리 잡아끌어도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무덤 곁에 주저앉아 버리지 뭐야.
  
놀란 동생은 할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이웃사람들을 모시고 나왔지만, 그땐 이미
처녀는 총각의 무덤 앞에서 이미 죽어있었단다.
처녀의 부모는 백정부부와 의논하여 처녀의 시신을 총각의 무덤에 합장하여 주었다.
(치~ 죽은 다음에 하면 뭐하노?)

그런데 이듬해 봄
그들의 무덤 위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 꽃을 피웠는데
나무와 꽃의 향기가 누린내 같기도 하고 된장냄새 같더란다
사람들은 그 나무와 꽃의 냄새가 백정의 냄새와 같다고 수군거렸단다.
 
그래서 그 나무의 이름을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누리장나무라고도 불렀고
누리개나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왕 좀 냄새가 나더라도, 스토리에 포인트를 맞추던가
이쁜 꽃에다 포인트를 맞추던가
블루사파이어씨에다 맞추던가 해서
이쁜 이름을 지어주지... 아쉽다. 내가 붙이면 뭐라고 붙이지?
모르긴 해도... 사랑은 이쁜데 냄새는 여전한가보다.
양가집처녀는 그 냄새가 괜찮을라나?
 
마구 주절거렸지만, 참 이쁜 꽃! 신기한 색의 씨! 아마 잊지 못할 그런 나무였다.
동학사오르는 길에 핀 누리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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