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야산을 올랐다.
속리산 줄기 용추계곡 윗쪽에 있는 대야산
이름이 웃겨서 바가지산으로 놀린기도 하면, 대야산에
도착한다.
大耶山
이렇게 적혀져있으면, 가야와 상관이 있는 산인가?
산이 좋다기보다, 계곡이 환상인 그런 산.
그 산 입구에서 만난 그릇들이다.
단지도 그릇인 것이고, 가마솥도 그릇이다.
좀은 큰 그릇, 그리고 그릇에 담기기위한 전단계에 필요한
그릇
그릇전에 그릇들.
이 그릇들 이야기이다.
단지와 가마솥,,,, 그릇들을 위해 받쳐주는 것들인데, 이 곳에서 만난 그릇들의
어머니는
불구이거나, 너무 늙어있다.
내가 만난 그들이야기
큰 항아리이다.
거의 내 키만한 항아리가 찌그러져있다.
깨진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찌그러져 항아리로 한번도 사용되지 못했을 듯
싶은
그 항아리가 좀 작은 항아리 위에 올라 앉아있다.
절묘하게도 그 위에 물항아리가 항아리 입에 딱 맞게 포개어져
있다.
얼마나 딱 맞은지 난 사방을 뺑 둘러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둘은 너무나 달랐다.
실패한 항아리 위에 얹힌 물항아리는 유황칠도 되지 않았고, 재벌구이도
하지 않은 듯 싶었다
그러니 당연히 색깔도 촉감도 찌그러진 항아리와는 달랐다.
당연 모양도 다르다
간장이나 된장을 보관하기 위한 항아리가 아니라, 물을 옮겨담기
위한 항아리니깐
처음부터 다른 것들이다.
모든 것이 다른데, 그들은 딱 맞았다.
찌그러진 입에 딱 맞게 끼어서 둘은 마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아마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하나는 미숙아이고
또 하나는 불구자였을 것들이
둘이 만나서 마치 예술작품인 듯 내 발목을 붙들었다.
다르다는 것
맞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았다면, 둘은 포개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달라서 포개어질 수있었던 것이고, 달라서 그 곳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들중 하나가 온전한 모습이었다면,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달랐고, 사회적으로 모자랐으며, 유용하게 쓰일 일이
없었다.
그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모든 것이 맞지 않고 부족한 것이 둘이 만나 나를 붙든
것이다.
난 둘 중 어느 것일까?
미숙아? 아니면 불구자?
난 나를 생각하기를 사회적으로는 그냥 한 쪽 구석에 버려져
있는 ...
저 항아리들을 보면서 난 나를 생각한다.
미숙아이든 불구자이든 나에게 맞는 어떤 것을 만난다면,
그것은 완전할 필요가 없다. 부족한 어떤 것을 만나서 꽉 끼워 줄
수 있다면.
미숙아가 아니고 불구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내가 만나야 할 것이 그렇다면, 사람?
그건 아니다. 사람일 필요는 없을 걸... 내가 온전하게 보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겠지.
대야산 풍기식당 마당에 높인 항아리를 보면서,
미숙아인 나와 불구자인 내가 한 가닥 희망을 잡아왔다.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이유이다
색이 참 이쁘다.
녹슬은 가마솥 색깔도 이쁘고, 단지색깔도 이쁘고, 초록풀들의 색도
이쁘고
어쩜 저리도 잘 어울릴까?
내가 저기 서서 나도 잘 어울렸으면, 착한 것들인데...
튀지 않고 잘 어울렸으면, 저기 서서 한 컷 찍어보고
오는건데...
풍기식당 마당에는 빨깧게 녹이 슨 가마솥이 있습니다.
용추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마솥으로 쌓은 탑에 끼어 들어 가마솥을 흔들어댑니다.
탑으로 쌓여져 있는 가마솥은 빨간 바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속의 바람, 그 바람은 빨간 불길이었습니다.
빨간 바람이 불때마다 가마솥은 바람과 함께 오던 빨간 불을 생각합니다.
빨간 불길이 바람을 타고 오면 가마솥은 어쩔 줄 몰랐습니다
자꾸만 달아오르는 몸을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낯을 가린 가마솥은 천천히 그러나 결국은 몸을 내어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타오르는 빨간 불길과 항상 같은 뜨거움이 되었습니다.
후끈 달아오르는 뜨거움
그 즈음이면 가마솥에서 품어져 나오는 하얗고 뜨거운 입김
가마솥에게는 불과 함께 자신을 덮치던 빨간 바람의 기억이 있습니다
풍기식당 부엌에서 나와 가마솥탑이 되어 높이 올라앉아 있으면서
가마솥에게는 빨간 바람이 불지 않았습니다.
며칠 사이 한바탕 소나기에 내린 뒤 불어오는 빨간 바람
이 바람이 빨간 바람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가마솥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 바람이 온 뒤 가마솥의 몸이 빨갛게 변해가고 있으니깐요
지금 불어대는 빨간 바람은 가마솥의 살갗을 구석구석 파고 듭니다
바람이 파고 든 자리는 부풀어 오릅니다
불길보다 더 드거운 빨간 바람이 불면,
가마솥은 화상을 입은 듯 살갗이 벗겨지고 부풀어 오릅니다
온 몸이 뜨거워지는 황홀경을 기억하는 가마솥은
이번에는 하면서 자신의 몸 한 겹 한 겹 바람에게 내어줍니다.
빨간 불길의 기억처럼..
이제 곧 돌아갈 것이다.
그가 왔다. 나를 찾아 그가 왔다.
흙이었다.
붉은 흙이었다.
내 난 포근했으며, 따뜻했었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난 안아주었었다.
특별히 내가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아도, 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은 힘든 일도 아니었다.
다가오는 것들을 내치지 않으면 내 안으로 저절로 들어온다
나에게 오는 것들은 모두 내게서 싹을 틔웠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열매는 다시 씨를 내게
맡기고,,,
난 그저 내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랬었다.
때로는 아름다운 꽃이, 때로는 튼실할 열매가, 때로는 푸른 풀들이 나를
번갈라가면서 방문해주었다.
난 모두 다른 그들이 말해주는 세상이 재미있었다. 함께
있었다.
어느 날 내가 그 곳을 떠나기 전까지는
난 물에 담그어졌고,
내 속에 함께 있던 숨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하나도 남김없이 밖으로 내
보내어졌다.
난 물레위에서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졌다.
그들이 내 속을 텅비게 했다.
그리고 나의 색이 아닌 좀 짙은 색, 나를 알아보지 못할 색으로 나를
덮어버렸다.
그래도 남아있을 내 속의 숨을 보내기위해 가마로
들여보내졌다.
어쩔 수 없는 고문아래 난 내 속에 있던 한 가닥 숨까지 모두 내 보내고.
난 누구도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안아주기만 한 것인데...
키웠다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데...
난 견딜 수 없다. 가만히 안아 줄것이 없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안아 줄 것들.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내 속으로 품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없게 된
것
난 그립다.
그립다는 것, 그것 이상이다.
난 하루마다 내 숨이 끊어지는 것을 경험한다.
매일 매일 내 숨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반복한다.
오늘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안겨있었던 듯, 싹이 된 그들이 나를 알아보고 내게로
왔다.
내게 가만히 볼을 비비고 나의 냄새를 맡는다.
나도 그들에게 볼을 비비고 그들의 냄새을 맡는다.
단단히 굳어있던 몸이 그들의 기운을 맞자 움찔하더니, 툭! 하고
갈라졌다.
내가 금이 간 것이다.
순간 고통을 느꼈지만, 그건 문제 되지 않는다
나에게 틈이 생긴 것이다.
내 틈으로 그들이 달려든다.
지금은 이미 단단해진 그때의 부드러움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내게
안긴다.
단단해진 몸으로 나도 그들을 안는다.
서로의 몸이 빛난다. 아픈데 아린데, 몸이 아픈지 마음이 아린지,
이제 귀엣말로 속삭인다.
"나의 뿌리 힘을 키워 당신의 안으로 들어가겠어요"
난 대답해준다.
'안아줄 수 있을만큼은 꼭 안아줄께."
그들과 나는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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